12월 19일 옛 광주교도소 부지에서 법무부 기록에 없는 신원 미상의 유골 40여 구가 발견됐다. 사진=5·18 기념재단 제공
지난 12월 19일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 부지에서 법무부 기록에 없는 유골 40여 구가 발견됐다. 당초 법무부에서는 교도소 내에서 사망했으나 연고가 없는 사람을 무연고자로 분류해 그 유골을 별도로 관리해 오고 있었다. 법무부가 관리하고 있는 무연고자 유골은 총 111구. 이 가운데 50구는 개인묘로, 41구와 20구는 각각 1971년과 1975년에 합장해 관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법무부가 옛 광주교도소 부지를 솔로몬 로파크 사업에 이용하기 위해 기존의 무연고자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신원 미상의 유골이 40여 구가 추가로 발견된 것이다.
#법무부 기록에 존재하지 않는 유골
40여 구의 유골은 이중매장의 형태로 발견됐다. 현장 관계자와 5·18 단체 관계자에 따르면 1971년 만들어진 합장묘 1기에서 총 80여 구의 유골이 나왔다. 원래대로라면 41구의 유골이 콘크리트 상자 안에 들어있어야 했다. 그런데 상자가 모습을 채 드러내기도 전에 수십 개의 뼈가 흙더미에서 먼저 발견됐다는 것이다. 특히 발견된 뼈 가운데에는 어린아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크기의 유골이 있었다. 여기에 동그란 구멍이 난 유골도 2구 발견돼 5·18 당시 총상을 입은 희생자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실제로 옛 광주교도소 부지는 5·18 희생자들의 암매장지로 꾸준히 지목되어왔다. 5·18 당시 3공수여단 일등병으로 광주에 투입됐다고 밝힌 이 아무개 씨는 1989년 1월 12일 자신이 직접 광주교도소 구내에 시위대 사망시체 5구를 매장했다고 신고했다. 5·18 당시 3공수여단 소속 김 아무개 씨도 1995년 5월 29일 전두환 씨의 내란목적살인 혐의에 대한 검찰조사에서 명령에 따라 12구의 시체를 광주교도소 내에 가매장했다는 진술을 한 바 있다.
이렇게 들어온 제보 및 신고는 2017년 11월까지 75건. 총 28명이 옛 광주교도소에 암매장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11구의 시신은 실제 광주교도소 인근에서 발견됐다. 이 때문에 아직 수습되지 못한 17명의 행불자의 유골이 이번에 발견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앞서 2017년 11월에도 제보 내용을 토대로 광주교도소 발굴 조사를 진행한 바 있으나 당시에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한편 발굴 작업은 2018년 2월 ‘5·18 진상 규명위원회 구성을 위한 특별법’ 통과를 앞두고 그해 1월 중단됐다.
5·18기념재단 차종수 조사관은 “옛 광주교도소 내 5·18 행불자가 암매장돼 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곳이 또 있다. 교도소 내 나무 밑에 사체를 묻었다는 제보를 토대로 조사를 시작했으나 5·18 진상위 출범을 이유로 발굴 작업이 중단돼 현재 나무 밑동 부분이 보일 정도다. 하루라도 빨리 진상위가 출범해 작업을 재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도소 내 사망자일 수도
일각에서는 이번 유골 발견과 5·18 행불자와의 연관성을 속단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아직까지 유골의 정확한 상태나 묻힌 시기 등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까닭이다. 이장 공사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12월 23일 “개인적 소견이지만 발견 당시 유골들은 육안으로 보기에도 꽤 오래 되어 보였다”는 말을 전했다.
1차 육안 감식에 참여한 전문가도 유골 상태에 대해 5·18 이전인 50년 이전의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박종태 전남대학교 법의학과 교수는 25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구멍 뚫린 두개골에 대해 “총상일 가능성은 떨어진다”며 “5·18과 연관성을 확인하려면 정밀감식을 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5·18기념재단도 신중을 기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5·18기념재단 관계자는 “과학적 검증 절차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5·18과의 연관성을 언급하기는 힘들다. 다만 지금까지 많은 제보가 있었던 만큼 이에 대한 가능성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12월 23일 자체 진상조사단을 꾸려 발견된 유골에 대한 정밀 감식 작업에 들어갔다. 유골은 원주에 위치한 국립과학수사원 본원으로 옮겨졌다. 사진=5·18 기념재단 제공
어떤 결과가 나오든 교정 당국인 법무부는 관리 미비라는 지적을 받게 됐다. 당초 법무부에서도 합장묘 이장 준비 과정에서 5·18과의 연관 가능성을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5·18 단체 관계자는 23일 일요신문과 만나 “솔로몬 로파크 조성을 위한 이장 공사에 앞서 지난 9월 법부무 관계자가 ‘111명의 무연고자 기록 가운데 5·18과 관련된 자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했다. 기록을 살펴본 결과 5·18과 관련된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공사를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장 공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예상하지도 못한 유골이 발견됐다. 교도소 내 사망자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약 정밀 감식 결과에서 40여 구의 유골이 5·18과 무관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법무부 입장은 더욱 곤란해진다. 이 경우 교도소 혹은 교도소 출입 권한을 가진 기관에 유골 발생의 원인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서다. 옛 광주교도소는 부지 특성상 외부인이 몰래 들어와 유골을 암매장하고 도망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실제로 유골이 발견된 부지는 교도소 정문을 기준으로 가장 안쪽에 위치한 곳으로 수용시설 등 다른 건물과는 100여m 떨어진 외진 곳으로 확인됐다.
관리 주체인 광주소년원의 허가가 없으면 일반인의 출입은 불가능에 가까운 곳이기도 했다. 2017년 광주교도소 발굴조사에 참여했던 관계자는 “2015년 교도소가 광주 북구 삼각동으로 이사한 이후 옛 교도소 건물은 광주소년원이 관리하고 있다. 2017년 발굴조사를 할 때에도 매번 광주소년원 소속 직원이 문을 열어줘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경찰 역시 데이터를 전산화하는 과정에서 서류상 누락된 교도소 내 사망자가 있을 수 있다고 보고 광주교도소에 사망자 현황을 재조사할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현재 법무부 조사단은 과거 무연고자 관리 사항과 기록을 찾고 있다. 그러나 두 번에 걸친 교도소 이전과 시간 경과 등으로 일부 자료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법무부는 12월 23일 자체 진상조사단을 꾸려 정밀 감식에 나섰다. 그러나 발견 당시 유골이 워낙 뒤죽박죽이었고 보존 상태도 좋지 않아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최소 6개월 이상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광주=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5·18 행불자 356명 “유전자 정보 재조사부터” 정부가 옛 광주교도소 부지에서 발견된 유골 40여 구와 5·18 행방불명자의 연관성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가운데 행불자에 대한 유전자 정보를 재조사하지 않으면 반쪽짜리 조사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목격자가 없다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한 행불자가 356명이나 존재하는 까닭이다. 만약 이번에 발견된 40여 구의 유골 가운데 356명의 유골이 포함되어 있다면 이에 대한 유전자 정보가 없어 5·18과는 무관하다는 잘못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5‧18 보상심의위원회의 행방불명자 신청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1990년부터 2015년까지 총 7차에 걸쳐 행불자 신청을 받았다. 25년 동안 신청자는 총 448명으로 이 가운데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5‧18 행불자는 84명에 불과했다. 356명이 1980년 5월 20일을 전후로 사라졌지만 끝내 행불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들이 5‧18 행불자로 인정받지 못한 이유는 ‘자료 미비’였다. 다시 말해 사라졌다는 증거가 없다는 말이었다. 5‧18 행불자는 5‧18민주화운동 기간 동안 그 사건으로 인해 스스로의 의사에 관계없이 행방을 모르게 되어 버린 사람을 의미한다. 심사위원들은 행불자 가족에게 객관적인 증거를 요구했다. 결국 정부가 인정하는 행불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시위 현장이나 길거리에서 보았다는 인우보증을 해 줄 목격자를 데려와야만 했다. 이에 대해서는 5월 단체 관계자도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행불자로 인정받은 사례를 보면 함께 시위에 나간 친구, 혹은 지인들이 증언을 해 준 경우다. 그런데 이들 말고도 그냥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사람도 많다. 시위를 하러 가는 길에 혹은 그냥 등하굣길에 없어졌으면 증인을 찾기 쉽지 않다. 증거부족이라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한 행불자 가운데 실제로 계엄군에 의해 살해되거나 상이 후 사망에 이른 사람이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5·18 행불자회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5·18 유족회, 부상자회와 구속자회 등 여러 5·18 관련 단체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행불자로 인정을 받은 이들의 유가족인 회원들은 남은 회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모임을 떠나고 남은 회원들은 계속되는 심사 과정에서 큰 상처를 받고 활동을 더 이상 이어나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나마 활동을 이어오던 5·18 행불자 가족회도 2015년 김정길 회장 사망 이후 5·18 유족회에 흡수되며 사실상 사라졌다. 5·18 행불자 가족회의 손미순 당시 사무처장은 12월 23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행불자 가족들과는 거의 연락이 끊겼다. 이 가운데에는 20년째 아들의 연락을 기다리며 이사도 못가고 기다리고 있는 아주머니도 계셨다. 대부분 정부 심사 과정에서 큰 상처를 받고 포기하셨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 행방불명이라는 것인데 정부 심사위원들은 ‘사라졌다는 증거를 가져오라’고 한다. 여든을 앞둔 노인에게 30년 전 일에 대한 진술을 요구하면서 ‘일관성’이 없다고 거절한다. 그러는 사이 주변 사람들에게는 ‘가족으로 돈벌이 하려고 한다’는 손가락질을 받는다. 이들이 상처를 안 받을 수 있겠나”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의 심사과정은 형식적이고 불공정한 경우가 많았다. 특히 광주시 소속 공무원들이 신청자와 면담을 하지 않고도 면담을 했다고 허위 보고서를 올리거나 사실 관계 파악 없이 서류를 작성한 사실이 2000년 국정 감사를 통해 대거 드러났다. 허위로 만들어진 사전조사 자료에만 의존해 신청자의 당락 여부를 결정한 심사위원도 적발돼 공정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결국 2명의 심사위원이 심사위원직을 반납하고 양심선언을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한 심사위원은 신청자에게 “앞서 여러 차례의 신청 기회가 있었는데 이번에서야 신청하는 이유가 뭐냐. 일관성이 없다”며 신빙성을 문제 삼은 사실이 현장 조사 결과 드러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보상 문제와는 별개로 정부가 지금이라도 행불자로 인정받지 못한 356명에 대한 유전자 정보를 수집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 나왔다. 심사 과정에서 크고 작은 문제가 있었던 만큼 추후 진행될 5·18 행불자 조사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손미순 사무처장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5·18 행불자 문제가 다시 주목을 받아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렵다. 그러나 5·18 행불자에 대한 정확한 조사를 위해서는 당초 신청자인 448명 전원의 유전자 정보를 토대로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전남대학교 법의학교실에서 갖고 있는 5·18 행불자 가족의 유전자 정보는 130가족 정도로 이 역시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행불자가 대부분이다. 최희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