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와의 계약을 앞둔 류현진이 메디컬 테스트를 위해 아내와 함께 지난 25일 출국했다. 사진=연합뉴스
엄청난 금액이다. 류현진은 토론토 구단 사상 가장 큰 규모의 FA 계약을 한 투수로 기록됐다. 이전까지는 2006년 A.J. 버넷을 영입하면서 5년 5500만 달러를 쓴 게 최고 지출이었다. 류현진의 계약은 총액(8000만 달러)과 평균 연봉(2000만 달러) 모두 버넷의 계약을 넘어선다. 토론토에 소속됐던 선수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러셀 마틴(5년 8200만 달러)과 버논 웰스(7년 1억 2600만 달러)에 이은 역대 세 번째 규모에 해당한다.
류현진은 또 역대 한국인 투수 FA 최대 규모 계약 기록도 새로 썼다. 종전 최대 금액은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거였던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2001년 12월 텍사스와 계약하면서 받은 5년 6500만 달러다. 역대 한국인 FA 가운데 연 평균 금액으로는 최고액이기도 하다. 종전까지 FA 최대 규모 계약은 외야수 추신수가 2013년 12월 텍사스와 계약하면서 받은 7년 1억 3000만 달러(1년 평균 1857만 달러)였다.
#한국인 빅리거 FA 역사 새로 쓴 류현진
2006년 한화 이글스에서 데뷔한 뒤 7년간 KBO 리그를 평정한 류현진은 2013년 LA 다저스와 6년 최대 4200만 달러에 계약하고 빅리그 무대를 밟았다. KBO 리그 출신 선수가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역대 최초 사례였다. 다저스가 한화에 이적료 격인 포스팅 비를 약 2573만 달러나 지불했을 정도로 성공적인 출발이었다.
류현진은 첫 두 시즌 동안 연속 14승을 올리면서 단숨에 빅리그 정상급 투수로 발돋움하는 성과를 올렸다. 다만 이후 2년간은 어깨와 팔꿈치 수술을 잇달아 받고 재활하느라 제대로 마운드에 오르지 못하는 아쉬움도 맛봤다. 2018 시즌 종료 뒤 FA 자격을 얻었지만, 시장에 나오지 않고 다저스가 제시한 퀄리파잉 오퍼를 받아들여 1년 1790만 달러에 재계약했다.
결과적으로 최고의 선택이 됐다. 올해 14승 5패, 평균자책점 2.32라는 눈부신 성적으로 한국인 선수로는 첫 평균자책점 개인 타이틀을 수상했고,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투표에서 2위에 오르는 기염도 토했다. 메이저리그 개인 통산 성적은 54승 33패, 평균자책점 2.98이다.
FA 시장에서도 주가가 더 높아졌다. 게릿 콜,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와 같은 초대형 FA 투수에 이어 매디슨 범가너와 댈러스 카이클까지 계약을 마치면서 마지막 A급 FA 류현진의 선택에 관심이 집중됐다. 당초 원 소속구단 LA 다저스와 같은 지역 팀 LA 에인절스를 포함한 캘리포니아 지역 팀들이 유력 행선지로 꼽혔다.
특히 선발진이 약한 에인절스는 지역 언론과 팬들이 모두 나서 “류현진을 데려와야 한다. 마지막 기회다”라고 목소리를 높일 정도로 꾸준히 이름이 오르내렸다. 미네소타 역시 류현진에게 관심이 많은 팀으로 끊임없이 거론됐다.
그러나 류현진에게 가장 적극적으로 구애한 팀은 토론토였다. 토론토는 원정 경기마다 국경을 넘어야 하는 캐나다 연고팀이고 LA와는 시차도 가장 많이 나는 정반대 지역이라 류현진으로서는 이적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래도 류현진에게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했고, 당장 에이스로 활약할 수 있는 팀이라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류현진은 계약 내용에 트레이드 거부권을 포함시켰고, 옵트아웃은 넣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류현진은 그렇게 한국 야구선수의 역사를 다시 쓰는 대박 계약으로 최고의 시즌에 걸맞은 최고의 선물을 받게 됐다. 물론 에이스 부재로 고통받던 토론토에도 류현진과 계약은 선물이나 다름없다. 취약한 선발진 탓에 한숨을 내쉬던 토론토 팬들은 구단이 류현진을 영입했다는 소식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고 두 팔 벌려 환영했다.
반대로 류현진을 떠나보낸 LA 다저스는 현지 언론과 팬들에게 지탄을 받았다. 다저스 소식을 전문으로 다루는 다저스네이션은 “류현진이 다저스 구단 역사에 한 획을 긋고 떠났다. 류현진이 다저스가 아닌 다른 팀과 계약했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우리에겐 많은 감정이 휘몰아쳤다”며 “우리는 사랑하는 ‘코리안 몬스터’를 잃었다. 류현진의 이적으로 다저스의 야구가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다저스 역사의 한 부분이 마감됐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고 아쉬워했다.
#빅리그 FA, 5년 375만 달러에서 10년 3억 달러까지
류현진을 비롯한 메이저리그 FA들이 천문학적 금액의 계약 소식을 연이어 전하면서 KBO 리그보다 훨씬 자유로운 빅리그 FA 제도에도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아졌다. 유서 깊은 메이저리그는 한국보다 훨씬 먼저 FA 제도를 도입해 시행해왔다. 물론 리그 역사에 비해서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보는 편이 맞다. 1975년 12월에야 처음으로 FA 제도 시행이 승인됐다.
1970년 세인트루이스 외야수 커트 플러드가 필라델피아로의 트레이드를 거부한 사건이 발단이 됐다. 플러드는 가족과 함께 사는 세인트루이스를 갑작스럽게 떠날 수 없다는 이유로 트레이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메이저리그 규약은 구단의 독과점을 인정하고 선수의 자유 이적을 금지해놓은 상황이었다. 플러드는 “비인간적인 처사”라고 항변하면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플러드는 패소했다. 현역 선수들은 자신들이 받을 불이익을 걱정해 법정에서 플러드의 편을 들지 않았다. 연방대법원도 구단과 사무국의 손을 들어줬다. 플러드는 결국 1970년 한 시즌을 통째로 날린 뒤 1971년 13경기만 뛰고 은퇴했다. 하지만 당시 투쟁은 규약을 바꾸는 데 중요한 디딤돌이 됐다.
이후 앤디 매서스미스와 데이브 맥널리가 ‘보류 조항이 지속된다면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겠다’고 반발했고, 1975년 선수노조 위원장 마빈 밀러도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플러드의 사례를 들면서 불합리한 법을 바꾸는 데 앞장섰다. 그 결과 1976년부터 메이저리그에서 6시즌을 뛴 선수는 FA가 돼 자유롭게 다른 팀과 계약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됐다.
다만 사상 처음으로 FA 계약을 한 선수는 아이러니하게도 FA 제도가 공식적으로 시행되기 전인 1974년 12월 31일에 나왔다. 이날 뉴욕 양키스와 5년 375만 달러 계약서에 사인한 캣피시 헌터다. 그해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수상자였던 헌터는 원 소속구단인 오클랜드와 시즌 종료 후 2년 20만 달러에 먼저 계약했다.
그러나 오클랜드가 연금 보험을 따로 지불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헌터는 중재 재판을 통해 자유계약선수로 풀려 양키스에 새 둥지를 틀었다. 이후 5년 뒤인 1979년 말 놀란 라이언이 휴스턴과 4년 450만 달러에 계약해 최초의 연봉 100만 달러 돌파 기록을 세웠다. 또 이듬해 외야수 데이브 윈필드는 양키스와 10년 2300만 달러 계약을 성사시켜 최초의 1000만 달러 고지를 훌쩍 넘었다.
이후에도 FA 시장 규모는 가파르게 성장해 투수 케빈 브라운(1998년 다저스·7년 1억 500만 달러), 내야수 알렉스 로드리게스(2001년 텍사스·10년 2억 5200만 달러), 내야수 매니 마차도(2019년 샌디에이고·10년 3억 달러)가 각각 1억 달러, 2억 달러, 3억 달러 벽을 넘어선 최초의 역사를 썼다.
#등급제에서 진짜 ‘자유계약’으로 진화
FA 제도는 더 진화했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FA 자격을 얻으려면 25인 로스터에 한 시즌 172일 이상 등록돼 총 6년의 서비스 타임을 소화해야 한다. 부상자 명단이나 출전정지 명단에 등재되더라도 마이너리그에 내려가지 않는 한 서비스 타임은 인정된다.
FA 시장은 월드시리즈 종료 다음 날 바로 문을 연다. FA 자격을 얻은 선수들은 5일간 원소속팀과 우선 협상을 할 수 있고, 이 기간이 지나면 모든 팀과 협상을 개시할 수 있다. 4년의 재취득 기한이 정해져 있는 한국과 달리 메이저리그에는 FA 자격 재취득 기한이 따로 없다. 정해진 계약 기간이 종료되면 곧바로 다시 FA가 된다.
과거 메이저리그는 FA 등급제를 실시했다. 엘리아스 스포츠뷰로의 성적 평가에 따라 선수들의 상위 20%에는 A등급, 차상위 20%에는 B등급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FA를 내준 팀은 ‘보상’ 개념으로 이듬해 신인드래프트 지명권을 받았다. 보상은 FA 등급에 따라 달라졌다. A등급 선수가 이적하면 1라운드 드래프트 지명권을 받았고, B등급 선수를 잃으면 1·2라운드 사이의 특별지명권(샌드위치 픽)을 얻었다.
그러나 특정 업체인 엘리아스 스포츠뷰로가 평가한 선수의 등급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느냐가 늘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결국 2012년부터 퀄리파잉 오퍼가 새로 도입됐다. 구단이 FA 자격을 얻은 선수에게 메이저리그 상위 125명의 평균 연봉을 기준으로 1년 계약안을 제시할 수 있는 제도다. 선수당 1회로 제한된다.
선수가 퀄리파잉 오퍼를 받아들이고 팀에 남으면 1년 뒤 FA 자격을 다시 얻을 수 있지만, 선수가 제안을 거부하고 시장으로 나갈 때는 구단이 드래프트 지명권을 보상으로 받는다. 류현진도 2018시즌을 마친 뒤 다저스의 퀄리파잉 오퍼를 수락해 FA 자격 취득을 1년 미뤘다. 메이저리그에는 이 외에도 선수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가 있다. 경력이 3시즌 이상 되면 연봉조정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게 대표적이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