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전 장관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청와대 관계자들에게선 100일 넘게 이어진 검찰 수사에 제동이 걸릴 것이란 기대감이 감지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4일 중국 쓰촨성 청두 세기성 박람회장에서 열린 제7차 한중일 비즈니스 서밋에 참석해 기조발언하는 모습. 사진=청와대 제공
지난 12월 26일 조국 전 장관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청와대 관계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범죄가 소명됐다’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100일 넘게 이어지고 있는 검찰 수사에 제동이 걸릴 것이란 기대감도 감지됐다. 12월 27일 일요신문과 통화한 청와대 한 비서관은 “영장 신청 자체가 무리수였다는 게 확인됐다. 지금까지의 행태로 봤을 때 아마 검찰은 다른 건으로 계속 영장을 신청할 것”이라면서 “일단 조국을 넘어 청와대를 치겠다는 윤석열의 전략에 차질이 빚어진 것만은 분명하다”고 했다.
그동안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 내에선 검찰 수사를 진두지휘하는 윤석열 총장에 대한 불만과 원성이 끊이질 않았다. 조국 전 장관 일가를 겨냥한 수사에 또 다른 속내들이 숨겨져 있을 것이란 이유 때문이었다. 검찰개혁을 저지하기 위한 노림수도 그중 하나였다. 최근엔 윤 총장이 개인적 ‘보복’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2019년 7월 검찰총장 인사 때 민정수석실이 윤 총장에게 불리한 자료들을 수집, 보고한 것에 대한 반격 차원이라는 것이다. 당시 민정수석은 조국 전 장관이었다. 이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는 한 친문 의원 설명이다.
“문 대통령 결단이 없었다면 윤 총장 임명은 불가능했다고 본다. 윤 총장과 관련해 부정적인 내용이 담긴 보고서와 세평들이 청와대로 올라갔다. 거의 확실시됐던 윤 총장이 물을 먹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돌았다. 하지만 문 대통령 선택은 윤석열이었다. 이 과정에서 민정수석실이 특정 후보를 밀기 위해 윤 총장을 견제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었다. 윤 총장이 나중에 이를 알고 크게 화를 냈다고 들었다. 조국 전 장관 수사를 지켜보면서 이 장면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진위 여부를 떠나 이러한 얘기들이 나오는 것은 윤석열 총장, 그리고 검찰을 향한 여권의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한다. 한 친문계 의원은 사석에서 “윤 총장이 설마 개인적인 복수심 때문에 이런 수사를 하겠느냐”고 반문하면서도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다. 나뿐 아니라 청와대나 당의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한다. 정의감이나 이런 것은 아닐 테고.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여권 일각에선 윤 총장의 정치 입문 가능성과 연관 지어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여권의 고민은 조국 전 장관이 끝이 아니라는 데 있다. 검찰은 유재수 감찰 무마, 청와대 하명 수사, 우리들병원 대출 의혹 등에 대해 전방위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김경수 이호철 양정철 백원우 등 이름이 거론되는 인사들 모두 하나같이 친문 실세들이다. 현직 청와대 수석급들도 포함돼 있다. 검찰 내부에선 문 대통령 친인척이 수사선상에 올랐다는 얘기까지 파다하다. 사실상 문재인 정부를 정조준하고 있는 셈이다. 임기 중반을 넘어선 문재인 대통령에겐 최대 악재다. 친문 핵심부가 윤석열 해임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기로 결단한 배경이다.
앞서의 친문 의원은 “검찰 개혁 저지건 윤석열 총장 복수건 지금 일련의 수사들이 부적절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검찰이 마음대로 칼을 휘두르는 것을 내버려뒀다간 정권이 끝장나게 생겼다. 더 이상 밀릴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윤석열 총장 해임은)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긴 하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지지층 사이에선 오히려 진작부터 논의됐던 사안”이라고 했다.
윤석열 검찰총장. 사진=최준필 기자
윤석열 총장 해임 검토는 여권의 일부 친문 인사들이 주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지난 12월 초부터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검찰이 조국 전 장관 구속영장을 신청한 12월 23일 직후에도 회동을 갖고 속도를 내기로 결론을 냈다. 이들 중 몇몇은 “대통령이 추진하는 검찰개혁에 반기를 든 윤석열 총장을 바로 해임해야 한다”는 강경한 목소리를 냈다고 한다. 법무부 외청인 대검찰청의 수장이 현직 대통령 공약인 공수처 설치 등에 반발하는 것 자체가 바로 해임 사유가 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는 검찰총장 2년 임기를 보장한 법적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지금까지 대통령 해임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한 검찰총장은 없었다. 모두 자진 사퇴하는 형식이었다. 검찰 반발은 물론 정치적으로도 논란이 뜨거울 수밖에 없다. 대신 거론되는 안은 윤 총장에 대한 징계를 밟는 절차다. 법무부 장관은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징계위원회 결정에 따른 징계를 대통령에게 제청할 수 있다. 최종 결정은 대통령이 한다. 해임은 징계절차 중 가장 높은 수위의 징계로, 엄중한 비위 사실이 적발돼야 한다. 요건이 까다롭긴 하지만 절차만 놓고 봤을 땐 하자가 없다는 점에서 부담은 덜하다는 분석이다.
앞서 언급한 친문 모임 참석 인사는 “추미애 장관 후보자와 교감을 나눈 부분이 있다. 바로 조국 수사 전반에 대한 감찰이다. 수사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등을 면밀히 들여다볼 것이다. 그리고 대검찰청 조직에 대한 감찰도 이뤄질 것”이라면서 “추 후보자가 처음 단행하는 인사에서 검찰의 감찰 파트에 누구를 임명하는지 주목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추 후보자 측과 가까운 한 민주당 의원도 “추 후보자는 검찰이 조국 일가와 김기현 전 울산시장 수사 등을 무리하게 밀어붙였다는 문제 인식을 갖고 있다”면서 “장관으로 지명된 직후 이 부분을 시정하겠다는 뜻을 밝힌 적이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와는 별개로 감사원에서도 출격할 채비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 등 주요 검찰 조직에 대한 감사를 위해서다. 사실상 윤석열 총장을 염두에 둔 감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사정당국의 한 고위급 인사는 “특수활동비를 포함한 검찰의 예산 사용 실태, 내부 징계 처리 등이 대상”이라면서 “청와대를 중심으로 감사원 감사에 대한 시기 등이 논의되고 있다. 김조원 민정수석이 감사원 출신이라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와 관련해 복수의 감사원 관계자들은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면서도 “대검찰청 감사를 위한 준비는 어느 정도 끝난 상태”라고 입을 모았다. 감사를 위한 기초 작업이 이미 이뤄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윤 총장을 향한 법무부와 감사원의 ‘투트랙’ 움직임은 향후 청와대와 검찰 간 전쟁의 새로운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우선 검찰의 강한 반발은 불 보듯 빤하다. 이는 정권에 대한 수사가 더욱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을 중도에 해임하려는 것에 대한 비판도 거셀 수밖에 없다. 자유한국당 한 중진 의원은 “윤 총장을 흔드는 것이 과거 채동욱 전 총장의 중도하차와 뭣이 다르냐. 윤 총장은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댄 죄밖에 없다”면서 “윤 총장 해임 시도는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친문 진영에선 실보단 득이 크다는 계산이다. 또 다른 친문 의원은 “검찰개혁 완수는 차치하고서라도 윤석열 총장 임기가 2021년 7월까지다. 총선, 그리고 대선이 남아 있는데 이런 식으로 검찰에 주도권을 뺏기면 앞으로 힘들어진다. 언제 또 제2의 조국 사태가 일어날지 모른다. 더 늦기 전에 (윤 총장 해임을) 밀어 붙여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우리 여권의 선거 전략은 ‘집토끼’ 사수다. 윤 총장 해임은 지지층과 검찰개혁을 원하는 중도층으로부터 박수를 받을 것이다. 오히려 선거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