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12일 서울 여의도 모처 카페에서 ‘정치 휴지기’를 선언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사진=박은숙 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연말 들어 장외투쟁에 열을 올리며 우향우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또한 주류 강경파의 집토끼 사수 목소리가 주를 이룬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원은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대립이 극과 극, 강대 강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중도의 틈이 넓어진다. 거대 양당 대립에 피로감을 느끼는 유권자들이 제3정당으로 몰릴 수 있다. 지난 20대 총선 국민의당처럼 제3정당이 횡재하는 장면이 연출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그러자 정치 세력들의 중원 깃발 꽂기 속도는 더욱 빨라지는 모양새다. 그 중에서도 안철수 전 의원 행보가 초미의 관심사다. 미국에 체류 중인 안 전 의원은 최근 정국에 대한 구상을 마무리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바른미래당 안철수계 의원들 사이에서도 “안 전 의원 정계 복귀가 카운트다운에 돌입했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안 전 의원이 예전과 같은 파괴력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여전히 안 전 의원을 중도 진영의 ‘블루칩’ 중 하나로 꼽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안 전 의원 복귀설이 가시화하자 각 정파들도 움직이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지난 12월 15일 “안 전 의원이 복귀할 경우 대표직을 내려놓을 것”이라고 했다. 사실상 안 전 의원에게 러브콜을 보낸 것으로 읽힌다. 12월 22일 국회 정론관에선 바른미래당 친안철수계 김삼화 김수민 신용현 이동섭 이태규 의원이 안 전 의원 복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지난 12월 22일 국회 정론관에서 ‘안철수 전 대표 복귀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한 바른미래당 친안철수계 의원 5인. 사진=박은숙 기자
친안철수계 의원들은 “안철수 전 의원이 정치를 조속히 재개하고 복귀를 결정할 수 있도록 바른미래당이 필요한 후속조치를 진행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태규 바른미래당 의원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에게 “안 전 의원이 복귀해서 역할을 하려면 손학규 대표 체제는 물러나야 한다. 그래서 최고위 해체와 비대위 구성을 제안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안 전 의원 복귀 전제조건으로 손학규 대표 사퇴를 거론한 것이다.
그러자 손학규 대표가 반발했다. 손 대표는 12월 2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안 전 의원 측에서 ‘돌아올 길을 열어달라’고 해서 제안한 것”이라면서 “이 양반(친안철수계 의원)들이 ‘손학규 사퇴해라’,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자’는 것은 기본적 도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안 전 의원을 둘러싸고 바른미래당 내부에서 공방이 벌어지고 있지만 정작 안 전 의원은 기존 정당 참여보다는 신당 창당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채진원 연구원은 “제3정당 흥행 여부의 키플레이어는 안철수”라면서 “안철수 복귀가 흥행에 성공한다면 극단정치에 싫증을 느끼는 유권자들이 안철수 신당으로 ‘저항투표’를 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엔 안철수의 존재가 필수적”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12월 23일 국민통합연대 창립기념행사에 나란히 앉은 이재오 창립준비위원장과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사진=연합뉴스
지난 12월 23일 창립기념행사를 연 국민통합연대는 중도로의 ‘외연 확장’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국민통합연대는 친이계 좌장이었던 이재오 전 의원이 주도해 만든 단체다. 창립기념행사엔 주호영 권성동 김성태 장제원 등 친이-비박계 현직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참석해 관심을 모았다. 이재오 국민통합연대 창립준비위원장은 12월 22일 “국민 갈등과 분열을 통합하고, 정치판을 객토해 새판을 만들고,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려 (국민통합연대를) 창립한다”고 밝혔다. 창립기념행사 당일 이재오 위원장은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와 나란히 앉아 시선을 모았다.
국민통합연대가 외연 확장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엔 물음표가 붙는다. 일단 그 참석자 면면들이 지나치게 보수 일색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중도층을 껴안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제3지대 신당 창당에 있어서 국민통합연대가 과연 목소리를 낼 수 있겠느냐라는 회의론도 팽배하다. 정치권에선 또 다른 보수 신당에 그칠 것이란 얘기도 뒤를 잇는다. 한 자유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는 “국민통합연대가 신당 창당으로까지 이어갈 만한 동력이 있겠느냐”라며 창당 가능성에 대해선 고개를 저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12월 27일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국민통합연대를 중심으로 한 신당 창당설’에 선을 그었다. 홍 전 대표는 “국민통합연대는 절대 신당으로 가는 조직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홍 전 대표는 “(국민통합연대는) 보수우파 통합이 목표고, 친북좌파 문재인 집단을 뺀 국민들이 모인 시민단체라고 들었다”면서 “만약 정당 조직이 돼 국민분열을 지향한다면 우선 나부터 탈퇴를 하겠다”고 했다.
국민통합연대 측 역시 “창립기념행사에서도 신당 창당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는 입장이다. 국민통합연대 강연재 대변인은 “우리 단체는 기본적으로 범중도보수진영 외연을 확장해서 힘을 합치자는 목소리를 낼 예정”이라면서 “문재인 정부를 저지해야 한다는 것에 뜻을 모을 것”이라고 밝혔다. 강연재 대변인은 “통합을 통해 ‘빅 텐트를 구성하자’는 이야기다. 주축은 자유한국당이 돼야 한다. 앞으로 자유한국당에도 범중도보수 대통합과 관련 제안을 하려고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 12월 2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로운보수당 창당준비위원회 비전회의. 사진=박은숙 기자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바른미래당 비당권파 의원들이 주축이 된 새로운보수당은 “개혁중도보수 깃발을 들고, 중도층 표심을 공략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새로운보수당은 지난 12월 27일부터 시도당 창당을 시작, 2020년 1월 5일 전까지 중앙당 창당 작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새로운보수당은 12월 26일 당로고와 상징색(하늘색)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하늘색의) 정무적 의미로는 바른정당을 뿌리로 확장해나가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새로운 보수”라고 밝혔다. 바른정당은 20대 총선 이후 새누리당 의원들이 탈당해 2017년 1월 출범한 당이다. 바른정당은 창당 1년 만인 2018년 2월 국민의당과 함께 바른미래당으로 출범했다. 당권파와 비당권파 사이 벌어진 내홍 끝에 바른미래당 소속 ‘바른정당계 의원’들은 새로운보수당으로 다시 분리독립했다.
바른정당 시절 당직자는 “바른정당은 출범부터 해산까지 큰 선거를 한번도 치러보지 않았다”면서 “새로운보수당이 21대 총선에서 중도보수 유권자들에게 의미 있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당직자는 “바른정당의 가장 큰 무기가 ‘신선함’이었다면, 새로운보수당의 경우엔 바른미래당 내홍을 겪으면서 신선함을 많이 잃었다. 추진 동력을 상실한 것은 일정부분 사실이다. 여기다 당명에 ‘보수’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은 외연 확장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처럼 안철수계, 국민통합연대, 새로운보수당은 중도 진영 공략을 위한 시동을 걸었다. 채진원 연구원은 “앞으로 제3지대에서 중도를 노린 싸움이 펼쳐질 것으로 본다. 이때 키워드는 ‘흥행과 횡재’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두 거대정당의 극한 대립에 지친 유권자들이 ‘다 싫다’는 식으로 분풀이 투표를 하면 흥행몰이에 성공한 정당이 의외의 횡재를 할 수 있다. 분노하는 소시민이 제3정당으로 결집할 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