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은 ‘비례 위성정당’ 창당을 공식화하는 등 연동형 비례대표제 후속 대응책을 내놔 범여권을 압박하고 있지만 여론상으론 ‘꼼수’ 논란이 이어지는 양상이다. 정공법이 없는 한국당의 현 상황과 황 대표의 모습을 두고 급기야 ‘황당무계’(황 대표 당에 계책이 없다)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2월 22일 농성에 참석한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4+1 협의체가 도출한 선거법 개정안이 지난 12월 23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자, 한국당은 곧바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돌입했다. 3일에 걸친 필리버스터가 마무리되자 한국당 내에선 ‘할 만큼 했다’ 등의 자찬이 잇따랐다. 하지만 동시에 선거법 개정안을 실질적으로 막지 못한 지연전술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일반 여론의 주목도가 떨어졌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한국당 한 중진 의원은 “성탄절 연휴가 겹치다 보니 여론의 관심이 예상보다 더 없었던 것 같다”며 “지난 2016년에 필리버스터 대상이 된 테러방지법은 직접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을 주지만, 선거법은 밥그릇 싸움이라는 인식이 강한 것이 아쉽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한국당 당직자는 “밤낮 없는 근무체계가 이어지다 보니 일단 체력이 모두 소진된 느낌”이라며 “그럼에도 예산안은 날치기 당하고, 선거법은 통과됐기 때문에 허망할 따름”이라고 지적했다.
범여권과의 연말 정국 대전에서 사실상 밀렸다는 비판의 화살표는 결국 황교안 대표를 가리키고 있다. 그 역시 단식 투쟁에 이어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2주일간 진행한 농성으로 내상을 입은 상태다. 필리버스터 이틀째인 지난 12월 24일, 피로누적과 복숭아뼈 염증 등의 이유로 병원에 돌연 입원했다. 이에 예정됐던 장외투쟁과 농성도 일단락됐다. 일각에선 선거법 저지 과정에서 논란이 됐던 전략 부재와 지나친 투쟁 정치를 숙고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황 대표 리더십은 원내외 모두에서 입방아에 오른 바 있다. 대표적으로 ‘군기 잡기’와 ‘국회 묶어두기’ 등에 대한 불만이 가장 들끓었다. 군기 잡기는 지난 12월 17일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황 대표 발언이 발단이 됐다. 그는 졸고 있는 한 의원을 향해 “절절함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졸고 계신 분이 있다”고 공개 면박을 줬다.
또 황 대표는 “의원들과 단일대오가 된 느낌을 못 받았다”, “당 대표가 정치를 잘 모른다고 뒤에서 말이 많은데 할 말 있으면 찾아와서 해라”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원총회에 참석한 한 의원은 “마치 부하직원 다루듯이 하는 모습에 많은 의원들이 기분 나빠했다. 나중에 황 대표가 자기가 친한 측근 의원이 졸고 있는 것을 보고 한 얘기다, 농담이다 라고 해명했지만 믿는 의원들은 없었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등이 12월 20일 오후 국회 본관 앞 에서 열린 공수처법·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황 대표 지휘 하에 한 주 내내 반복된 ‘의원총회-국회 앞 장외집회’는 의원들의 발을 국회에 묶어놓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한 초선 의원은 “총선 예비후보 등록 후에는 지역에 가서 직접 발로 뛰어야 하는데 투쟁 일정 때문에 쉽사리 움직일 수도 없었다”며 “경쟁자는 저만큼 뛰어 초조한데, 대표가 전당대회만 해봤을 뿐 현장 선거를 겪어보지 않았으니 잘 모른다고 뒷말들이 많이 나왔다”고 했다. 이 밖에 투쟁 국면이란 이유로 총선 전 ‘몸 풀기’ 일환인 출판기념회를 황 대표가 자제시킨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무엇보다 당내에서 우려가 제기되는 것은 ‘우경화’다. 12월 17일 ‘공수처법·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에 당원과 지지자 수천 명이 국회로 몰려와 아수라장을 만든 게 결정적 장면이 됐다. 황 대표는 “우리가 이겼다, 승리자다”며 불을 지피기도 했다. 이후 국회는 외부인 집회를 금지시키며 경계를 강화했다.
중도 표심이 급한 수도권 의원들 사이에선 ‘맙소사’ 등의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한 수도권 의원은 “이렇게 할 거면 우리당과 우리공화당의 차이가 무엇인가, 총선에서 중도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직 지도부가 현실 인식을 못하고 있다. 이대로 태극기 세력만 바라보면 수도권은 전멸”이라고 우려했다.
황 대표가 의원총회에서 “보수 유튜버에게 입법보조원 자격을 줘 국회 출입 기자와 비슷한 자격을 부여하자”는 제안을 한 것도 지지층 결집만 바라보다 논란을 일으킨 사례로 평가된다. 입법을 보조하기 위한 자격을 당에 우호적인 보수 유튜버에게 부여하는 ‘불법’을 대놓고 제시했다는 지적이다.
최근 한국당 사무처 팀장급 핵심당직자가 SNS에 작심하고 올린 글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제1야당의 총선 준비 전략이 무엇이냐”, “구도·인물·정책 하나 없이 극우화된 모습만으로 한 표라도 가지고 올 수 있겠느냐”, “지금의 당은 마치 검사동일체 조직인 것처럼 굴러가고 있다” 등의 문제를 제기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황당무계’라는 신조어가 당내에 떠돌기도 했다. 황 대표의 당에 별다른 계책이 없다는 뜻이다. 황 대표가 강력한 투쟁 기조로 당을 끌고 갈수록, 물밑에선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의문점이 더욱 커진 셈이다.
당내 리더십이 흔들릴 뿐만 아니라, 최근 분열이 가속화되는 보수진영 흐름과 맞물려 황 대표가 더욱 위기를 맞았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통합 파트너로 지목된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은 ‘새로운보수당’ 창당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무소속 이언주 의원은 ‘미래를 향한 전진 4.0(전진당)’ 신당을 준비 중이며, 무소속 이정현 의원 역시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이 밖에 친이계 원로와 비박계 등이 뭉친 ‘국민통합연대’,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이끄는 ‘새한국의 비전’, 박형준 전 의원 등이 속한 ‘자유와 공화’까지 보수가 ‘각자도생’을 하는 형국이다. 보수대통합을 강조했던 황 대표의 입지는 더욱 줄어드는 모양새다.
황 대표의 진짜 승부처는 패스트트랙 이후라는 관측도 나온다. 패스트트랙 국면에서는 당내 불만 목소리가 있더라도 범여권에 대항해 뭉쳐 싸웠지만, 패스트트랙 안개가 걷히고 난 후에는 황 대표를 향한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다는 얘기다.
황 대표가 2020년 총선에서 정치 1번지 ‘종로’에 도전할 수 있다는 전망과 함께 한국당의 비례 위성정당에 직접 파견돼 지휘할 수도 있다는 관측은 그래서 나온다. 당내 충격파를 줄 반전 카드를 던져 총선 체제에 있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에 황 대표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병원에 입원한 황 대표는 위성정당 전략을 공식화하는 등 패스트트랙 강력 대응 메시지를 내면서도 그 외에 발언은 아끼고 있다. 한 측근은 “워낙 신중한 성격이기에 뭐라고 조언을 해도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않아 참모들이 답답해 할 때가 꽤 많다”며 “정치 초보에서 이만큼 했으면 정치적으로 많이 겪고 배운 것이다. 다만 중도 확장과 통합 의제는 쉽게 풀어갈 문제는 아니기에 좀 더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권준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