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이 창립 31년 만에 금호그룹을 떠나 HDC현대산업개발 품에 안기면서 옛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사진=연합뉴스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현산 컨소시엄)은 12월 27일 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과 각각 주식매매계약과 신주 인수계약을 체결하며 아시아나항공 인수 계약을 마무리했다. 인수 규모는 총 2조 5000억 원이다. 현산 컨소시엄이 금호산업 보유 아시아나항공 지분(구주) 31.05%를 3228억 원에 인수하고, 2조 1772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할 예정이다. 아시아나항공이 현산 컨소시엄을 대상으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기내식 관련 과징금 등 우발채무에 대한 금호산업의 책임 범위인 손해배상 한도는 구주 매각 가격의 9.9%(약 317억 원)로 합의했다.
#인력 감축에 노선 정리, 과감한 군살빼기
업계에서는 아시아나항공 재정 상황이 매우 열악한 만큼 현산이 인수 직후 공격적인 재무구조 개선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첫 번째로 현산이 유상증자를 통해 투입할 2조 1772억 원을 재무구조 개선에 활용한다. 올해 3분기 기준 아시아나항공은 부채 9조 7680억 원에 자본 1조 2096억 원 규모로, 부채비율이 807%에 달한다. 현산이 신규 자금을 투입하면 부채비율은 300% 수준으로 줄어든다.
부채비율 감소에 따라 신용평가사가 아시아나항공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하면 아시아나항공은 자체적으로 시장에서 투자 자금을 조달하기가 용이해진다. 아시아나항공은 낮은 신용도로 은행대출이나 회사채 발행에 실패하면서 고금리 차입을 늘렸고, 이자 부담이 늘어나 재무구조가 악화하는 악순환을 겪었다. 이번 유상증자가 마무리되면 부채비율 감소와 함께 이자 부담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현산은 이와 동시에 인력 감축과 노선 축소 등 비용 절감을 위한 구조조정을 단행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매년 지출하는 고정비용에서 인건비 비중이 큰 만큼 인력 감축은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이미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5월에 이어 12월 23일부터 근속 15년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또 희망퇴직을 접수하고 있다.
비수익성 노선을 정리해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방안도 거론된다. 아시아나항공은 올 하반기 인천에서 출발하는 러시아 하바롭스크·사할린, 인도 델리, 미국 시카고 노선을 운휴했다. 모두 저조한 탑승률로 정리 대상 1순위로 꼽히던 노선들이다. 앞으로도 일본 미야자키·치토세나 중국 톈진·구이린 등 탑승률 낮은 국제노선이나 수익성 떨어지는 지방공항 국제선이 정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항공업 특성상 인건비에 가장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에 인력 감축이 가장 먼저 단행될 전망으로, 희망퇴직 접수가 일종의 신호탄”이라며 “앞서 항공업 구조조정이 일어난 미국은 1978년 항공운송업 규제 완화로 공급과잉이 발생한 뒤 1980~1990년대 항공사 구조조정을 겪을 때 인력 감축이 가장 먼저 이뤄졌다”고 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비수익 노선은 휴무하고 추후 경영이 안정되면 필요성을 다시 판단해 없애거나 재개할 것”이라며 “에어서울·부산 등 LCC(저비용항공사)와 겹치는 중복 노선은 알짜 시간대가 아닌 이상 과감히 정리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아시아나항공 자회사 매각 가능성도 언급된다. 인수작업이 끝나면 현산 컨소시엄은 아시아나항공 자회사 에어부산과 에어서울, 아시아나IDT, 아시아나에어포트, 아시아나세이버, 아시아나개발 등을 함께 거느린다. 이때 아시아나항공과 에어부산은 각각 현산 모회사인 HDC지주사의 손자회사이자 증손회사로 편입된다.
공정거래법상 지주사(HDC)가 증손회사(에어부산)를 편입할 경우 지주사의 손자회사는 증손회사 지분을 100% 확보하거나 2년 내 처분해야 한다.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에어부산 지분은 44.17%다. 현금화가 시급한 현산이 공정거래법 규제를 피하는 동시에 매각 대금을 부채 상환에 쓰기 위해 에어부산을 매물로 내놓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장기적 측면에서 국내선을 담당하는 자회사 LCC들은 끝까지 안고 갈 것이란 의견도 적지 않다. 앞의 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은 에어서울·부산과 국제노선과 국내노선을 분담했기 때문에 국내선이 적다”며 “LCC를 매각하면 다시 국내 노선을 확보해야 하므로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함께 가는 방향을 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현산 측은 이에 대해 “에어부산 등 자회사 매각과 관련해서는 현재 드릴 말씀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아시아나항공이 HDC현대산업개발 품으로 들어가면서 앞으로 공격적인 재무구조 개선이 단행될 전망이다. 범 현대가 계열사 및 미래에셋과 시너지에 대한 기대와 동시에 인력 감축에 대한 노조 반발 등 우려가 제기된다. 사진=연합뉴스
#확보한 실탄으로 경쟁력 끌어올린다
현산은 재무구조 개선 및 유상증자를 통해 마련한 실탄으로 아시아나항공 자체 경쟁력 강화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은 국내 항공사 가운데 노후 항공기 비중이 가장 많은 곳으로, 2018년 기준 전체 운영 항공기 중 22.9%가 20년을 초과했다. 따라서 안전성을 강화하면서도 노선 다각화를 위해 노후 항공기 정비와 신규 항공기 도입, 부품 교체 등 기자재 투자에 나설 것이라는 게 업계 전망이다.
항공업계 다른 관계자는 “신규 투입하는 2조 원은 기종별 엔진을 더 구매하거나 새로운 기종의 항공기 도입, 정비사 등 전문 인력 충원을 통해 안전성 강화에 투입하지 않겠느냐”며 “아울러 그간 드러나지 않았던 고금리 차입금이나 여행사 등 관련업계와 거래시 있었을 미지급금을 처리하는 등 업계 내 신용도 개선에도 자금이 투입될 것”이라고 봤다.
재무적 투자자로 함께 한 미래에셋대우와 협력도 기대 요인이다. 미래에셋대우가 최근 항공기 리스업에 진출한 만큼 아시아나항공 입장에서는 기존 고비용 리스 계약을 해지하고 미래에셋을 통해 낮은 리스 계약으로 항공기를 공급받는 등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 미래에셋의 탄탄한 금융권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해외 투자 시장에서 자금 조달도 더 원활해질 수 있다.
범 현대가 차원에서도 결합 시너지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현산이 보유한 항만, 리조트, 쇼핑몰, 면세점 등과 연계 가능하다. 범 현대 계열사로는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 등 물류 도움이 필요한 계열사들이 많은 만큼 아시아나항공의 상용 수요를 높일 수 있다. 현대카드와 현대백화점, 현대해상 등 계열사들이 보유한 대규모 고객 기반을 통해 영업 시너지 효과도 누릴 수 있다.
황용식 교수는 “항공업 수익 절반 이상은 물류에서 나오는 만큼 범 현대가 계열사와 시너지가 기대된다”며 “아시아나항공은 그간 낮은 신용도로 투자금 조달이 힘들었는데 미래에셋을 파트너로 삼으면서 취약점을 보완했다”고 판단했다.
우려할 점도 적지 않다. 우선 인력 감축과 같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조의 반발과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일본 반일감정에 일본 노선 수요 급감, 국내외 경기 침체에 따른 세계적인 항공업 성장률 하락 등으로 현재 항공업황도 밝지 않다. 최근 취항한 플라이강원과 취항 준비 중인 에어프레미아, 에어로케이 등 신규 LCC들의 유입으로 공급 과잉에 따른 과열경쟁과 항공업 구조조정 칼바람도 이겨내야 한다.
앞의 업계 관계자는 “재무구조 개선의 핵심은 구조조정으로 인력 감축은 불가피한데 이를 어떻게 원활하게 하느냐가 관건”이라며 ”노동친화적인 현 정부나 사회 분위기상 과감한 구조조정이 어려워지면 재무적 여건이 좋아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