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회장. 사진=연합뉴스
태광실업 내부를 잘 아는 한 관계자에 따르면 박연차 회장은 한 달 전쯤부터 지병인 폐암 악화로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있는 삼성서울병원 VIP 병동에 입원했다. 이전까지는 간헐적으로 서울성모병원에서 진료를 받아 왔다고 알려졌지만 최근부터는 삼성서울병원에서 집중 치료를 받고 있다. 박 회장은 보통 베트남에서 지내왔다. 74세인 박연차 회장은 2019년 여름부터 건강이상설에 휩싸였다.
폐암 말기지만 병세는 일반적인 말기 암환자보다 심각하다고 전해졌다. 신체 기능이 대부분 노쇠해 사람의 얼굴을 거의 인지하지 못하고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태로 알려졌다. 스스로 일어서거나 걷는 게 불가능해 휠체어에 의지한다고 한다. 최근 이사회 등 주요 의사결정 때문에 태광실업으로 이따금 나가고 있지만 주변에서는 이런 박 회장의 행보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지난해 마지막 날에도 어렵사리 외출을 했다고 알려졌다.
박연차 회장이 이런 건강 상태에도 태광실업으로 발걸음을 끊지 못하는 이유는 2019년 중순부터 태광실업이 준비해 온 상장 막바지 작업 때문이라는 게 설득력을 얻는다. 태광실업은 7월 상장 주관사를 선정하며 희망 기업가치를 정하는 등 상장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태광실업의 현금 창출력이 워낙 좋은 까닭에 상장 준비가 알려지자마자 박 회장의 건강 이상설이 재계에 빠르게 퍼졌다. 후계자는 박 회장의 아들 박주환 부사장(36)이다.
박연차 회장의 건강 악화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는 건 베트남이다. 북베트남의 ‘패왕’이 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라면 남베트남의 패권은 박 회장이 쥐고 있는 까닭이다. 태광실업은 1994년 베트남 동나이성에 첫 국외 법인을 설립했다. 호찌민공항에서 나오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광고판에 태광실업이 붙어있을 정도다.
한국에서는 흥국생명 등으로 유명한 태광그룹의 인지도에 밀려 정치권과 가까운 중견기업 정도로 인식되지만 베트남에서는 국빈 대우를 받는 박연차 회장이다. 태광실업의 국내 인력은 1000명 정도다. 이에 반해 베트남 등 동남아에서 고용하는 근로자는 7만 명 수준이다. 매출 대부분도 동남아에서 나온다.
박연차 회장은 단순한 기업인이 아니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세부 일정을 조율하고 베트남 정부와 문 대통령 사이 의견을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도 도맡았다고 알려졌다. 박 회장의 고향이 경남이고 고 노무현 대통령과의 각별한 관계 때문에 문 대통령의 베트남 관련 정책에도 늘 일등공신이었다고 한다.
태광실업은 박연차 회장의 건강 악화에도 별다른 문제 없이 순탄한 승계 작업에 한창이다. 박 회장이 창업 이후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줄곧 경영을 일선에서 진두지휘한 까닭에 아들 박주환 부사장의 경영 능력은 베일에 가려 있지만 최근 태광실업의 움직임은 안정적이다. 한 달 전에는 인도네시아 공장을 2배 이상 키운다고 발표했고 계열사인 정밀화학소재기업 휴켐스도 새로운 공장 신축을 알렸다.
실적은 더욱 좋다. 해마다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2018년 연결재무제표 기준 매출은 처음 2조 원을 넘긴 2조 2688억 원이었다. 영업이익은 10% 이상이다. 2016년부터 내리 3년 연속 영업이익은 10%를 넘겼다.
나이키의 성장세가 꺾이지 않는 이상 태광실업이 흔들릴 이유는 없다. 태광실업 자체의 매출 대부분이 나이키 신발 생산에서 나오는 까닭이다. 나이키 전체 신발의 10% 넘는 수량을 태광실업이 소화하고 있다. 증권가는 늘 봉제산업이 사양산업이라고 분석 자료를 내왔지만 최근 5년 동안 세계 신발 업계는 우상향 성장을 해 왔다. 나이키의 신발 판매량도 해마다 늘어간다. 게다가 중국의 신발 산업이 인건비 상승 등의 이유 때문에 동남아로 대부분 이전해 당분간 태광실업이 맞닥뜨려야 할 위기도 없다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이와 관련, 태광실업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태광실업 관계자는 “회장님 개인사라 아는 바 없다”고만 짧게 답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