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예능 제작에 불을 댕긴 건 종합편성채널 JTBC ‘뭉쳐야 찬다’다. 사진=JTBC ‘뭉쳐야 찬다’ 공식 포스터
스포츠 예능 제작에 불을 댕긴 건 종합편성채널 JTBC ‘뭉쳐야 찬다’다. 왕년의 스포츠 스타들이 조기 축구팀을 꾸린 뒤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 이 프로그램은 2019년 6월 첫 방송된 이후 JTBC 간판 예능으로 자리매김했다. 국가대표 축구선수인 안정환을 필두로 이만기, 이봉주, 양준혁, 김병현, 진종오 등 각 종목에서 ‘전설’이라 불리는 이들이 공 하나를 두고 대동단결했다. 특히 농구 스타 출신인 허재 전 감독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서장훈, 안정환에 버금가는 ‘스포테이너’(스포츠+엔터테이너)로 주목받으며 연예기획사와 전속계약을 맺기도 했다.
새해 1월 7일에는 KBS 2TV ‘날아라 슛돌이-뉴 비기닝’이 시작된다. 유소년 축구를 소재로 삼은 이 예능은 벌써 7번째 시즌을 맞는다. 발렌시아 CF 소속인 이강인이 유년 시절 이 시리즈를 통해 소개된 바 있고, 토트넘 손흥민 등의 큰 성공으로 자녀들을 축구선수로 키우겠다는 부모가 늘고, 축구선수의 꿈을 가진 아이들도 증가하고 있다. 그만큼 ‘뭉치면 찬다’에 버금가는 축구 예능으로 거듭날 것이란 기대감도 높다.
특히 KBS는 태백과 금강, 경량급 씨름 선수들을 전면에 내세운 ‘태백에서 금강까지-씨름의 희열’도 편성해 스포츠 예능으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빼어난 외모와 기술 씨름으로 이미 유튜브에서 스타가 된 황찬섭, 손희찬 선수 등을 섭외한 ‘씨름의 희열’은 재미뿐만 아니라 민속씨름의 부흥도 이끌며 의미까지 챙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SBS는 1월 10일 농구를 재료로 꾸리는 ‘진짜 농구, 핸섬타이거즈’를 선보인다. 스포테이너로 각광받고 있는 국가대표 농구선수 출신 서장훈을 비롯해 연예계에서 ‘농구 좀 한다’고 소문난 배우 김지석, 김승현, 강경준, 줄리엔강과 아이돌 가수 차은우, 조이 등이 참여한다.
‘진짜 농구, 핸섬타이거즈’는 최근 출연진의 경기 모습이 공개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연출을 맡은 안채철 PD는 “첫 녹화 때 멤버들도 모른 채 ‘시크릿 경기’를 해 모든 스태프가 긴장했는데, 선수들이 너무 재미있게 경기를 펼쳐 관객 모드로 ‘핸섬타이거즈’를 응원했다”면서 “이날 처음으로 만나는 멤버들도 있었는데 같이 샤워하고, 몸으로 부딪히니 금방 친해지더라. 예정에 없던 회식도 했다”고 전했다.
‘진짜 농구, 핸섬타이거즈’는 스포테이너로 각광받고 있는 국가대표 농구선수 출신 서장훈이 이끈다. 사진=예고편 화면 캡처
tvN 역시 이런 흐름에 동참한다. 마라톤 예능 ‘런(RUN)’을 1월 2일부터 편성한다. 배우 지성, 강기영, 이태선 등이 이탈리아 피렌체 국제 마라톤 대회에 도전하는 과정을 담는다.
#왜 스포츠일까?
스포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항상 높았다. 주52시간제 시행에 맞춰 여가 시간이 늘어난 이들이 건강을 챙기기 위해 각종 생활체육을 시작하면서 단순히 스포츠를 보는 것을 넘어 직접 몸으로 즐기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런 환경이 스포츠 예능의 탄생을 부추겼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각 방송사 예능 PD들은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많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국가대표 출신으로 각 영역을 대표하는 스포츠 스타들이 은퇴 뒤 혹은 현역 활동을 유지하며 예능 출연이 자유로워졌다는 의미다. 강호동(씨름)을 시작으로 안정환(축구), 서장훈과 허재(농구), 김요한(배구), 진종오(사격), 이봉주(마라톤), 김동현(이종격투기) 등 각 종목을 대표하던 이들의 활약을 예능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흥밋거리다.
한 예능국 PD는 “강호동과 이만기가 다시 샅바를 잡고, ‘슛도사’ 이충희와 ‘농구대통령’ 허재가 이끄는 농구팀이 대결을 벌였다. 또 안정환과 신태용이 축구로 다시 붙었다”며 “과거 그들의 전설적인 활약을 기억하는 팬들이 예능 코드와 버무려져 다시 자웅을 겨루는 스포츠 예능에 재미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스포츠 예능이 육방이나 먹방처럼 장기간 사랑받으며 트렌드를 선도할지는 미지수다. 과거에도 스포츠를 소재로 내세운 예능 프로그램인 ‘천하무적 야구단’(2009), ‘김연아의 키스&크라이’(2011), ‘우리동네 예체능’(2013), ‘스타 다이빙쇼 스플래시’(2013), ‘청춘FC 헝그리 일레븐’(2015) 등이 방송됐지만 성공한 예능은 소수다. 2019년 10월 막을 내린 KBS 2TV ‘으라차차 만수로’와 SBS플러스 ‘다함께 차차차’ 등 축구 예능도 ‘뭉쳐야 찬다’와 비교할 때 별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마라톤 예능 tvN ‘런(RUN)’은 지성, 강기영, 이태선 등이 이탈리아 피렌체 국제 마라톤 대회에 도전하는 과정을 담는다. 사진=tvN ‘런(RUN)’ 공식 홈페이지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 불린다. 대본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능의 특성상 수준 높은 스포츠 경기보다는 그 주변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경향이 많다. 게다가 출중한 실력을 갖춘 현역 선수들의 실제 스포츠에 길들여진 대중들에게 예능 형식의 스포츠는 눈높이에 맞지 않을 수 있다. 육방, 먹방을 비롯해 다양한 관찰 예능이 새로운 출연진을 투입시키며 변화를 꾀하는 데 반해 스포츠 예능은 새로운 출연진 투입 등 원활한 변화가 어렵다는 것도 장기간 트렌드를 이끌어가지 못한 이유다.
또 다른 방송 관계자는 “‘뭉쳐야 찬다’는 다른 종목에서는 전설적인 선수였으나 정작 축구에서는 모자란 실력을 드러내는 이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결국 스포츠 자체보다는 예능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것”이라며 “2020년 1월부터 다양한 스포츠 예능이 등장하는데 과연 대중이 어떤 부분에 흥미를 느끼게 될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