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단순히 수치만으로 디지털 성범죄가 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정확히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지원하는 건수가 늘었다는 의미다. 삭제지원 인력이 9명에서 16명으로 증가했으며 삭제지원 경험이 축적된 까닭에 피해 지원이 더 효율적으로 이뤄졌다. 또한 경찰청 직통회선(핫라인) 개설과 지원센터 내 전문 변호사 배치에 따라 수사‧법률지원 연계는 두 배 이상 늘었다. 이런 수치가 적어도 최근 들어 디지털 범죄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웹하드 카르텔의 붕괴로 일반인들이 불법 촬영 영상(몰카)과 리벤지 포르노(보복성 음란물) 등 피해 영상물을 접할 기회만 줄어들었을 뿐이다.
사실 이런 디지털 성범죄를 위한 삭제지원 현황을 보면 웹하드의 비율은 2018년에도 그리 높지 않았다. 2018년에는 317건으로 1.1%였으며 2019년에는 더 줄어 190건으로 0.2%에 불과했다. 2018년까지만 해도 일반인의 디지털 성범죄 피해영상물 유통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진 곳이 웹하드였음을 감안할 때 1.1%는 매우 낮은 수치다.
한 성인 콘텐츠 전문가는 “이번 수치는 삭제를 지원해준 현황으로 웹하드에서 유포된 수치와는 다르다”며 “2018년까지는 워낙 웹하드 카르텔이 탄탄해 한 번 웹하드를 통해 유포되면 삭제가 쉽지 않아 1.1%라는 수치가 나온 것으로 보이고 2019년에는 웹하드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과 카르텔의 붕괴로 유포되는 수치 자체가 급락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가장 많은 삭제지원이 이뤄진 곳은 개인과 개인이 직접 파일을 공유하는 P2P로 무려 2만 9090건(32.3%)이나 됐다. 여성가족부와 한국여성인권진흥원는 이번 자료를 통해 2019년의 가장 큰 특징으로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삭제지원 비율 급락과 P2P 삭제지원 비율 급증을 손꼽았다. P2P는 2018년에 7.5%에서 2019년 32.3%로 급증했고 SNS는 2018년 35.7%에서 2019년 4.4%로 급락했다.
2018년 가장 많은 삭제지원이 이뤄진 SNS가 4.4%로 급락한 까닭은 피해영상물이 주로 유포되는 텀블러(Tumblr)에서 2019년부터 자정 노력을 했기 때문이라는 게 여성가족부와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분석이다. P2P에 대한 삭제지원 비율이 급증한 이유 역시 P2P를 통한 유출이 더 늘어났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지만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가 피해영상물이 주로 유포되는 토렌트 사이트에서 피해영상물 삭제가 가능한 ‘삭제 요청 창구’를 확보한 게 더 결정적인 이유였다.
꾸준히 높은 비율을 보이는 곳은 성인사이트로 2018년에 28.6%였고 2019년에도 27.8%를 유지했다. 여전히 가장 강력한 유통 플랫폼은 성인사이트임을 알 수 있다.
배우자와 전 배우자, 애인과 전 애인 등 ‘친밀한 관계’가 가해자인 비율이 24%나 됐다. 사진=MBC ‘시사매거진 2580’ 캡처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는 역시 여성이 87.6%(1695명)으로 압도적이었다. 특히 20대 여성이 25.8%(438명)로 가장 많았고 10대 여성 피해자도 15.2%(258명)이나 됐다. 연령을 밝히지 않은 여성 피해자가 모두 807명으로 전체 여성 피해자의 47.6%나 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20대와 10대 여성 피해자의 비율은 훨씬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상 가해자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은 가해자가 확인되지 않은 경우(31.1%)와 가해자가 확인됐지만 모르는 사람인 경우(17.9%)였다. 가해자 특정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전체 가해자의 49%나 됐다.
매우 잘 아는 사람이 가해자인 비율도 만만치 않았다. 배우자와 전 배우자, 애인과 전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가해자 비율이 24%(464명)나 됐다. 학교와 직장, 기관 등 사회적 활동을 하며 알게 된 ‘사회적 관계’의 가해자 비율 역시 10.9%(211명)이나 됐다. 0.2%(5명)로 수치는 높지 않지만 가족이 가해자인 경우도 있었다. 최근 몸캠피싱 범죄가 급증하면서 채팅을 통해 알게 됐거나 일회성으로 만난 이가 가해자인 비율도 15.9%(307명)나 됐다.
다만 이번 결과는 전체적인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통계 자료가 아닌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의 지원 실적이다. 다크웹과 같이 아직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서도 활발하게 피해영상물이 유포되고 있다. 더욱 적극적이고 효율적인 피해자 지원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또한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 역시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