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 암호화폐거래소 빗썸이 안팎으로 시련을 겪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빗썸 거래소 전경. 사진=고성준 기자
빗썸 최대주주 비덴트는 지난 12월 27일 공시를 통해 “국세청이 빗썸에 대해 외국인 고객의 소득세 원천징수와 관련 803억 원의 세금을 부과키로 한 것을 지난 11월 25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법적 대응을 계획하고 있어 최종금액은 추후 변동될 수 있다”며 “가능한 민형사상 법적수단을 강구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비덴트가 이처럼 강경한 입장을 밝힌 것은 국세청 과세의 법적근거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국내거주자가 아닌 비거주자(외국인)의 암호화폐 거래이익에 대한 세금을, 소득을 지급한 자(빗썸)가 원천징수해야 한다고 보고, 원천징수 의무자인 빗썸에 과세를 부과했다. 사실상 외국인 투자자의 이익에 대해 세금을 부과한 것이지만, 형식적으로 빗썸이 과세를 받게 된 셈이다.
국세청이 빗썸에 대해 암호화폐거래소 최초로 세무조사를 실시해 처음 세금을 부과하면서 암호화폐가 제도권 안으로 편입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지만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크다. 국내외 암호화폐 투자자들에 대한 과세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투자자 이탈 가능성 또한 높아졌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암호화폐가 열거주의 및 조세법률주의에 따라 법률에 규정되지 않은 대상이므로 과세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빗썸을 시작으로 다른 거래소들에 대해서도 세무조사를 할 것으로 보인다”며 “암호화폐에 대한 법적 지위와 과세 근거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과세를 먼저 하게 되면 여러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국세청이 과세 부과 방침을 정한 가운데 기획재정부의 움직임도 주목할 부문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내국인 과세에 대해서는 국세청과 이견이 없고, (이번 과세에 대해서) 기재부가 입장을 내놓을 만한 사안이 아니다”고 말했다. 기재부 또한 과세기준 마련을 준비 중이었던 데다, 이미 국세청의 과세가 이뤄졌기 때문에 심판이나 쟁송을 통해 가려질 문제라는 설명이다.
기재부는 2020년도 세법개정안을 통해 암호화폐에 대한 과세 방안을 담을 계획이다. 기재부의 암호화폐 과세 방안 마련은 지난 11월 25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개정안이 통과되면서 힘을 받았다. 늦어도 2020년 2월 안으로 본회의 통과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금법 개정안에서는 암호화폐, 가상화폐, 가상통화 등 제각각으로 불렸던 용어를 ‘가상자산’으로 통일하며 암호화폐 거래를 자산거래로 규정했다.
국세청의 과세에 대해 빗썸 최대주주인 비덴트는 법적분쟁을 예고한 가운데 빗썸은 내부적으로 소명 기회를 통해 충격파를 최대한 줄여보겠다는 입장이다. 빗썸 관계자는 “아직 권리구제 절차가 남아있는 만큼 충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빗썸은 과세가 이뤄지면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여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실제 빗썸을 운영하는 빗썸코리아는 지난해 영업수익 3916억 원, 영업이익 2560억 원을 기록했지만 현금흐름표를 살펴보면 상황이 좋지 않다. 2017년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이 1조 4654억 1768만 원이었던 것에 비해 2018년에는 마이너스 1조 532억 7450만 원으로 전환됐다.
2017년 5348억 8987만 원이었던 당기순이익 또한 같은 기간 마이너스(-) 2054억 9830만 원으로 전환됐다. 암호화폐평가손실을 보면 2017년 7억 8300만 원에서 2018년 2268억 2000만 원으로 급증했다. 암호화폐의 시세 하락 때문이다. 자회사들의 사정 또한 좋지 않다. 빗썸코리아는 자회사 루프이칠사사와 B.Buster PTE. LTD에 대여한 13억 원과 16억 원 전액을 대손충당금으로 설정했다.
해킹 피해도 있었다. 빗썸이 보유 중이던 140억 원 규모의 암호화폐가 탈취된 것. 빗썸 측은 자체점검 결과 외부 해킹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내부자의 소행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임직원 가운데 누군가 횡령을 한 셈이다. 빗썸 사정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는 “사건 당시 내부에서도 말이 많았던 횡령 사건이다. 금액이 140억 원보다 훨씬 크다는 말이 있다”고 귀띔했다.
더욱이 빗썸은 인수 후유증에도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100억 원 규모의 BXA토큰 집단소송에서 빗썸 또한 자유로울 수 없는 데다, 최대주주인 비덴트가 이정훈 빗썸 고문에 대해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비덴트는 지난 12월 27일 공시를 통해 “기망을 이유로 한 주식매매계약의 취소 및 피고의 매매대금 반환”을 취지로 이 고문에 소송을 제기했다(관련기사 죽 쒀서 남 주고 남은 건 소송뿐? 김병건 SGBK 회장 빗썸 인수 실패 후폭풍).
비덴트 측의 설명에 따르면 전체매매대금은 1200억 원 상당에 이르는 거액으로 인지돼 부담 등 실무적 이유로 우선 200억 원 만을 일부 청구하고 추후 매매대금 전체에 대해 반환 청구할 예정이다. 김병건 SGBK그룹 회장의 인수 시도 과정에서 ‘빗썸 토큰’으로 불리던 BXA토큰이 발행됐고, 인수가 무산되자 BXA토큰 투자자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안게 됐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토큰 발행 주체였던 김 회장과 이정훈 빗썸 고문에 대한 사기혐의를 주장하고 있는 투자자들은 BXA토큰을 홍보했던 빗썸에 대해서도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빗썸 주요 임원들은 물론 빗썸까지 소송에 휘말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투자 피해자들은 법무법인 선임 절차를 끝내고 마무리 작업을 진행 중으로, 오는 1월 말 소장을 제출할 계획이다.
한편 앞서의 업계 관계자는 “과세 건은 빗썸과 국세청이 이미 3년 정도 과세 성립 유무를 놓고 대립해오던 것이라 빗썸 측에서도 뒤집을 카드를 마련해놨을 수 있다”고 전했다. 또 빗썸의 재무 악화에 대해 “국세청의 과세와 투자 피해자 집단소송을 합한 1000억 원 규모의 피해가 당장 빗썸을 뒤흔들 정도는 아니”라면서도 “그간 빗썸이 불필요한 지출을 많이 해온 데다 코인 활성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고, 인수 후유증이 앞으로 더욱 증폭될 가능성이 커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