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의 대규모 배터리 공급계약 체결로 자금 조달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전지사업부 분사설에 무게를 실리고 있다. 서울 여의도 LG 트윈타워 모습. 사진=연합뉴스
LG화학이 오는 7월을 목표로 전기차 배터리 독립법인을 세울 예정이며 새로운 법인은 LG화학의 자회사가 된다는 ‘배터리 분사설’이 확산되고 있다. LG화학 측은 “전지사업의 경쟁력 강화와 사업 가치 제고를 위해 다양한 전략적 방안을 검토 중이나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는 없다”며 말을 아꼈다.
LG화학 전지사업부의 분사설이 제기된 데는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먼저 꼽힌다. LG전자는 지난 12월 초 미국 최대 완성차 업체인 GM과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해 배터리 생산 시설을 짓기로 했다. 투자금만 1조 원, 역대 최대 규모로 알려졌다.
또 볼보자동차그룹과 리튬이온 배터리 장기 공급 계약도 체결했다. 이는 세계 최대 배터리 제조사 중국 CATL과 함께 하는 사업으로 구체적인 공급 규모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CATL이 향후 10년 동안 수십억 달러 규모의 배터리 공급 계획을 밝혔다는 점에서 LG화학의 공급 규모도 수조 원대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규모 배터리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생산 시설을 갖춰야 하므로 막대한 자금이 투입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 LG화학은 자체적으로 이만한 자금을 투입할 여력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 게다가 화학 업황이 전체적으로 ‘다운턴(하강국면)’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전지사업부의 광폭 행보는 오히려 향후 LG화학, 특히 석유화학 사업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 LG화학의 기존 사업에 부담을 줄 수 없다는 판단 때문에 전지사업부를 분할한 후 기업공개(IPO·상장)를 통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것이다.
전지업계 관계자는 “LG화학은 올해 볼보자동차그룹에서 수주한 배터리 물량과 GM과 합작 등 굵직한 사업 계획을 알렸는데, 이를 위한 수조 원 단위의 투자금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LG화학의 재무구조로는 이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이런 이유에서 LG화학이 전지사업을 분사시킬 것이란 예상은 이미 나왔지만, 다소 급해진 감이 있다. 현재 수주한 사업들을 급하게 준비하려다보니 앞당겨질 것 같다”고 말했다.
분사설이 나오는 또 다른 이유로 석유화학 사업이 거론된다. 석유화학부문은 LG화학의 주력이었다. LG화학은 지난해 3분기 누적 약 21조 1638억 원을 매출을 거뒀는데, 이중 석유화학부문이 53.1%에 달하는 11조 2470억 원을 기록했다. LG화학이 전지사업에 투자하는 과정에서 주축이던 석유화학사업은 그동안 출혈을 감내해야 했다. 석유화학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전지사업의 부채를 메우는 데 일부 사용한 탓이다. 석유화학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라도 전지사업부를 독립시키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석유화학부문의 부채는 2019년 2분기 3조 3649억 원에서 3분기 3조 664억 원으로 줄었다. 반면 전지사업부문의 부채는 2분기 4조 8646억 원에서 3분기 6조 3875억 원으로 확대됐다. 게다가 LG화학의 전지사업부는 아직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전지사업과 석유화학사업은 근본적인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사업 효율성을 위해서라도 두 사업부의 분리 가능성이 점쳐진다. 앞의 업계 관계자는 “화학업계에서 전지사업을 많이 하는 추세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화학-전지 사업은 다르다. 분리해서 봐야 한다”며 “투자 성향은 물론 캐시플로(현금흐름)가 다른 측면이 있는데, 이런 이유에서 LG그룹 내에서도 이질감이 있다는 반응이 많았고, LG화학보다 LG그룹 지주사에서 분사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LG화학의 전지사업이 전기차용 배터리를 만드는 사업이니만큼 향후 자동차 때문에 발생하는 사고에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차량 화재 사고를 겪은 BMW가 대규모 리콜을 겪으며 경제적인 부분은 물론 브랜드 가치에도 큰 흠결을 남긴 사례처럼 LG화학의 전기차 배터리에 문제가 터지면 석유화학사업까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우려다. 즉 LG화학의 석유화학사업을 위해 전지사업부를 분리하자는 뜻으로 해석된다.
LG화학의 전지사업부 분리가 구본준 LG그룹 고문(사진)의 계열분리를 위한 포석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일각에선 구본준 LG그룹 고문이 전지사업 분리의 선두에 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내놓는다. 구본준 고문은 지난해 2월 LG그룹 부회장직을 내려놓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가 가진 그룹 지주사 (주)LG의 지분은 7.72%다. 최대주주인 구광모 LG그룹 회장(15%)에 이은 2대 주주다. LG 안팎에선 LG가 ‘구광모 체제’로 전환된 만큼 구본준 고문은 구광모 회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라도 LG를 떠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LG그룹의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새 총수가 선임되면 선대 회장의 형제들은 독립하는 것이 그동안 관례였다. 구본준 고문의 계열분리설 중심에 전지사업부가 있는 것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구본준 고문의 장남이 LG전자에서 근무 중인데 구본준 고문 자신과 장남을 위해서라도 계열분리를 원할 것”이라며 “LG이노텍과 LG전자의 그린사업부 역시 그 대상으로 거론되지만 그보다 향후 발전 가능성이 높은 전지사업부를 가져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LG그룹 관계자는 “전지사업본부의 분사가 구본준 고문의 계열분리를 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