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집을 비우지 않고 사는 몇 안 되는 주민 가운데 한 명은 12월 20일 늦은 저녁 수상한 인기척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 주민은 “인적이 드물어서 조금만 소리가 나도 다 들린다”며 “너무 무서워서 나가보진 않았다”고 답했다. 이 주민이 들은 소리는 범인이 시체를 유기할 때 발생한 소음이었다.
70대 남성은 경찰에 돈 때문에 싸우다가 우발적으로 피해자 목을 졸랐다고 진술했다. 범행 다음날 사체를 훼손해 재개발 지역 빈집에 유기했다. 사진=박현광 기자
피해자는 50대 여성 A 씨였다. A 씨는 12월 20일 실종자 명단에 올랐다. 신고자는 그의 남편이었다. 실종 신고 전날 밖으로 나간 아내는 하루가 지나도 집엘 들어오지 않았다. 아내는 실종신고 8일 만에 참혹한 상태로 발견됐다. 가해자는 70대 남성 B 씨였다. 경찰은 종이가방을 들고 가는 B 씨가 찍힌 CCTV(폐쇄회로화면)를 확인한 뒤 12월 18일 B 씨를 검거했다. 범행을 순순히 인정한 B 씨는 시체 유기 장소를 경찰에 털어놨다.
B 씨는 A 씨를 2019년 11월부터 알게 됐다. 피해자 A 씨와 친분을 쌓았을 B 씨는 12월 19일 피해자를 남구 신정동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였다. B 씨는 살해 동기를 두고 경찰에 “A 씨와 돈 문제로 다투다가 우발적으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B 씨는 ‘은둔형 외톨이’였다고 전해진다. B 씨는 가족도 없고 직업도, 평소 이웃과 교류도 거의 없었다. 한 이웃 주민은 “여기도 재개발로 시끌시끌한 곳이다. 돈 때문이라면 재개발을 두고 집값을 흥정하다가 싸웠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B 씨는 A 씨가 사망하고 하루가 지나고 시체를 처리할 마음을 먹었다고 전해진다. B 씨는 범행 다음 날 시체를 훼손했다. B 씨는 그날 늦은 밤을 틈 타 남몰래 집에서 걸어서 약 30분 거리인 깨밭골로 향했다. 재개발로 철거 대상인 빈집을 골라 시체를 유기했다. 이 빈집은 문이 부서지고 유리창이 없었고, 내부엔 잡동사니가 뒹굴고 있었다.
시체가 유기된 빈집은 재개발 공사가 진행 중인 곳이었다. 사진=박현광 기자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울산중부경찰서는 B 씨 신상정보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울산중부서는 시체훼손을 두고 인명경시 살해로 보고 2020년 1월 2일 신상정보공개 심의위원회를 열었지만 결국 신상정보 비공개 결정을 했다. 가해자 B 씨는 뒤늦게 범행을 후회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울산중부서 관계자는 “서로 알고 지내는 관계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이 일어났고, 본래 목적이 시체훼손이 아니라 유기를 목적으로 행해졌다는 점이 감안됐다”며 “나이를 고려했을 때 앞으론 사회에서 완전히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시신이 훼손돼 종이가방에 담겨 유기된 엽기적인 사건이었지만 파장이 크지 않았다. 이 사건을 아는 동네 주민조차 만나기 어려웠다. 20명에게 물어보면 1명이 사건이 있었단 사실을 겨우 아는 정도였다.
죽음에 대한 관심도 또한 빈부격차에 따라 달라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지역 복수의 부동산중개사는 “깨밭골은 지금 사람 살지 않아서 사람들 관심이 쏠리지 않을 뿐더러 가해자가 사는 동네가 아무래도 집값이 싸고 사람들이 선호하는 지역이 아니다 보니까 이슈가 되지 않는 게 아닌가 싶다”며 “학군이 좋은 옆 동네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달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범죄심리 전문가인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또 다른 의견을 내놨다. 배 프로파일러는 “안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다면 관계가 깊다고 보긴 어렵다. 치정 또는 청부살인 등의 모든 가능성도 열어두고 수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울산=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