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금토 드라마 ‘스토브리그’. 사진=SBS 제공
2019년 12월 13일 첫 방송한 ‘스토브리그’의 시청률은 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 3.3%였다. 지상파 주말드라마치고는 저조한 성적으로 출발했으나 이튿날인 14일에는 2배 이상 뛴 7.8%를 기록했다. 3화가 방영할 무렵에는 수도권 기준으로 10.3%를 기록해 두 자릿수 시청률에 진입했다. 12월 27일 방영한 5화는 12.4%로 매회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고 있다. 이 추세라면 중반부까지 20% 이상의 시청률을 기대해 볼 만하다.
이 같은 상승세에는 드라마의 지향점이 기존에 ‘스포츠 드라마’로 불리던 작품들과 다르다는 이유가 있다. 단순히 야구선수가 연애하는 드라마가 아닌, 팬들의 눈물조차 말라버린 프로야구 꼴찌 팀에 새롭게 부임한 단장이 남다른 시즌을 준비한다는 ‘전문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대중에게 신선하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실질적으로는 직장 내 정치 싸움을 다루는 오피스 드라마 장르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야덕’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야구에 목숨을 거는 야덕들에게 ‘스토브리그’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이야기로 기대 이상의 어필을 하고 있다. 드라마가 방영하는 금요일과 토요일은 각종 야구 전문 온라인 커뮤니티가 실시간으로 들썩인다. 실제로 경기가 있는 날처럼 팬들은 드라마 속 경기를 생중계로 분석하고, 앞으로 전개를 점친다. 비시즌에 단비처럼 나타난 ‘야구 드라마’를 두고 전문적이면서 막강하기까지 한 팬덤이 붙은 셈이다.
SBS 금토 드라마 ‘스토브리그’. 사진=SBS 제공
팬들이 꼽는 ‘스토브리그’의 강점은 현실성이다. 스포츠 뉴스에서 접할 수 있는 공식적인 이야기 외에 야덕만이 알 수 있는 스포츠 현장의 에피소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이다. 작품의 주된 스토리도 흥미롭지만 곁가지로 들어가 있는 에피소드를 찾아내 현실의 사건사고와 비교하는 것도 팬들의 또 다른 유흥거리다. 이렇다 보니 실제 스포츠 뉴스 기사에 ‘스토브리그’와 관련한 댓글이 추천수를 기준으로 상위권에 오르내리는 등 드라마 반응이 스포츠에 역수입되는 기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업계에서도 성공을 장담하지 못했던 ‘스포츠 비즈니스’ 드라마가 2020년 핫이슈로 떠오른 것에 관계자들도 주목하고 있다. 2009년 MBC 드라마 ‘2009 외인구단’의 실패로 완전히 침몰했던 스포츠 장르가 다시 한 번 ‘마지막 승부’와 같은 특수를 노릴 수 있느냐가 이들이 주목하고 있는 점이다.
1990년대 대학 농구 신드롬과 맞물려 탁월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던 MBC 월화 드라마 ‘마지막 승부’는 국내 스포츠 드라마의 처음이자 마지막 흥행작으로 꼽힌다. 이 인기를 바탕으로 같은 방송사에서 아이스하키를 소재로 한 ‘아이싱’을 제작했으나 ‘마지막 승부’만큼의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극중 한화 이글스의 이른바 ‘칰칼코마니(치킨+데칼코마니)’ 수비를 패러디한 장면에서 나온 관중들의 모습. 야구 팬들 사이에서 ‘사극보다 고증이 더 잘됐다’는 평이 나왔다. 사진=드라마 ‘스토브리그’ 캡처
그 이후 제작된 축구, 권투, 골프, 심지어 이종격투기에 이를 정도의 다양한 스포츠 장르 드라마는 “스포츠라는 소재만 빌려 온 수준 낮은 로맨스 드라마”라는 비난을 받으며 조기 종영되거나 처참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결국 스포츠 드라마는 돈과 품은 많이 들되 인기는 얻지 못한다는 꼬리표가 달리면서 방송사에서 기피하는 장르물이 됐다.
이런 가운데 ‘스토브리그’의 성공은 여전히 ‘결론은 로맨스’로 한정돼 있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던 드라마 장르의 저변을 넓힐 가능성으로 여겨지고 있다. 드라마를 접하는 일반 대중 외에 ‘장르 팬덤’까지 통합시킬 수 있다는 선례가 마련된 덕이다. 이 같은 시도가 OCN, tvN 등 케이블 방송사로 한정되는 ‘장르물 명가’가 아닌 지상파 방송사를 통해 이뤄졌다는 점도 ‘스토브리그’의 성공을 더욱 값지게 한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2000년대 후반 이후 드라마 판에서 제일 인기 없는 게 스포츠 메인 장르였는데 그 공식을 SBS가 깨뜨렸다. 스포츠 팬을 드라마에 완벽하게 빠지게 한 것은 ‘마지막 승부’ 외에 ‘스토브리그’가 유일할 것”이라며 “고증만 확실하다면 비인기 장르물도 시청자와 장르 팬덤을 확보할 수 있다는 선례가 만들어진 셈이니 앞으로 지상파 드라마도 더 다양한 장르로 판을 키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