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DLF’라 불리는 라임자산운용의 환매 중지 사태의 파장이 신한금투로 번지고 있다. 서울 여의도 신한금융투자 본점 야경. 사진=박은숙 기자
라임은 지난해 10월 10일 사모채권형 펀드(라임플루토FI D-1호) 및 메자닌펀드(테티스2호)에 대한 환매 연기 결정을 밝혔다. 같은 달 14일 무역금융 펀드(플루토 TF 1호)에 대해서도 추가로 환매 연기가 결정됐다. 총 93개 펀드 8466억 원 규모다. 당시 라임은 기자회견을 통해 환매 중단 금액의 범위가 최대 1조 3363억 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DLF 원금 손실사태가 채 마무리되기 전에 발생한 라임사태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환매가 중단되면서 돈이 묶인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고조됐다. 개인투자자들은 시중은행 7곳, 증권사 11곳에서 라임 펀드에 가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금투의 경우 가입자는 301명으로 우리은행(1448명)과 하나은행(385명), 대신증권(362명) 등보다 적지만 가입 금액 규모는 우리은행(3259억 원)에 이어 두 번째로(1249억 원) 컸다.
신한금투는 TRS 계약을 통해 라임에 3500억 원을 대출해줬다. TRS 계약은 신용파생상품의 한 종류로, 보장매입자가 기초자산을 보유함에 따라 발생하는 이자 및 자본 수익 등 총수익을 보장제공자에게 지급하는 대가로 약정이자를 수취하는 계약을 말한다. 신한금투는 라임을 대신해 기초자산을 매입하고, 라임은 일정 수준의 수익률을 보장한 셈이다.
이런 가운데 금감원이 지난해 10월 말부터 신한금투를 대상으로 종합검사에 돌입했다. 이 검사는 지난해 실시된 세 번째 증권사 종합검사 대상이자 마지막 종합검사였다. 주로 ‘첫 타자’의 검사 결과에 이목이 집중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금감원이 통상 3주간 진행되던 조사를 2주일가량 연장했기 때문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종합검사가 연장되는 것은 상당히 드문 사례”라면서 “금감원이 기간을 연장해 뭔가 문제가 있는데 잡히지 않는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제와 보니 사건이 커졌다”고 전했다. 라임이 글로벌 ‘폰지사기’(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나 배당금을 지급하는 방식의 다단계 금융사기)에 휘말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신한금투가 궁지에 몰린 것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글로벌 무역금융 전문 투자회사 IIG에 대해 폰지사기 혐의로 등록을 취소하고 관련 펀드 자산을 동결했다. 라임은 환매 연기가 결정된 무역금융 펀드 총 투자금 6000억 원 가운데 2400억 원의 운용을 IIG에 맡겼다. 투자금 6000억 원은 개인투자자들의 투자금 2436억 원과 신한금투에서 레버리지 대출을 일으킨 3500억 원으로 이뤄져있다. 모자(母子)펀드 구조에서 모펀드인 IIG 펀드가 동결되면서 자펀드인 라임 펀드 또한 원금을 날릴 위기에 처한 것이다.
신한금투는 무역금융 펀드에서 발생한 문제를 사전에 인지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라임이 유동성 문제를 인지한 이후 무역금융 모펀드의 안정적인 자산 회수 및 수익률 안정화를 위해 구조화 거래를 진행했는데, PBS를 통해 TRS 계약을 맺은 신한금투가 이를 몰랐을 리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한금투가 문제를 알면서도 투자자에게 알리지 않았다면 불완전판매를 넘어선 형법상 사기행위가 성립될 수 있다.
라임은 지난 2019년 10월 14일 펀드 환매 중단 사태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무역금융 펀드 수익률 안정화 및 유동성 확보 노력의 방안으로 재구조화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지난 2018년 11월과 지난 2019년 2월 북미 소재 펀드와 남미 소재 펀드가 각각 환매신청을 받지 않겠다는 결정을 통보했고, 이에 지난해 6월 해외 무역금융 펀드 지분 전체를 제3자인 거래상대방 A에게 매각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그러나 라임 측은 재구조화 과정을 거치면서 투자자들에게 이를 알리지 않았고, 이 같은 사실을 알았을 가능성이 높은 신한금투 또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신한금투에 따르면 문제가 된 무역금융 펀드에 대해 신한금투가 판매한 기간은 2017년 5월부터 2018년 12월까지며, 900억 원 규모를 판매한 것으로 집계됐다. 금감원은 신한금투와 라임에 대해 검찰에 수사 의뢰할 예정이다.
이에 더해 금감원은 자체적으로 법률 검토에 나섰다. 금감원 금융투자검사국 관계자는 지난 2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종합검사 등에서 확보한 자료를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법률검토를 하고 있는 단계”라고 밝혔다. 검찰 수사 의뢰 이외에도 다른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신한금투의 혐의에 대해서는 “수사 의뢰 여부가 아직 확정되지 않아 단정적으로 언급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이사가 지난 2019년 10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에서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연기 관련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신한금투가 라임과 무역금융 펀드를 공동으로 기획하고 개발한 만큼, 사실상 신한금투의 ‘OEM펀드’라는 의혹도 제기된다. 주문자가 요구하는 제품과 상표명으로 완제품을 생산하는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과 같이 신한금투의 지시대로 라임이 펀드를 구성했다는 의혹이다. DLF 사태 때에도 판매사인 은행과 설계자인 자산운용사 간 비슷한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신한금투의 경우 판매사이면서 동시에 TRS 계약을 맺고 라임에 대출을 해준 만큼 그 의혹이 더욱 짙다.
이동구 참여연대 변호사는 “신한금투가 라임에 무역금융 펀드를 소개하며 자연스럽게 TRS 계약도 맺은 것으로 보인다. 재구조화 또한 두 회사가 논의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투자자들에게 알리지 않고 투자 대상을 변경하고 개방형에서 폐쇄형으로 바꾼 것은 사실상 일반 투자자들을 기망한 사기죄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개인투자자들의 소송도 넘어야할 산이다. 법무법인 한누리는 무역금융 펀드 투자자들을 대리해 우리은행과 신한금투 등 판매사를 상대로 펀드 판매 계약 취소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이들은 펀드 판매 계약 자체를 취소하고 불완전판매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도 함께 진행할 방침이다. 구현주 한누리 변호사는 “신한금투는 판매 책임 이외에도 TRS 계약 관련해 운용에 관련된 책임도 있을 수 있어 함께 검토 중”이라며 “타 판매사에 비해 소송 규모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한편, 신한금투 측은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신한금투 관계자는 “PBS 사업자일 뿐이라고 알고 있지만,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 언급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