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디즈니의 미국 영화 매출점유율이 무려 33%에 달했다. 사진=디즈니 플러스 홈페이지
2019년 디즈니의 실적은 말 그대로 어마어마했다. 미국의 박스오피스 집계 기관인 컴스코어 자료에 따르면 2019년 디즈니의 미국 영화 매출점유율이 무려 33%에 이른다. 이제 20세기폭스까지 같은 회사가 됐으니 이를 더하면 38%까지 늘어난다. 2위인 워너브러더스가 13.8%임을 감안하면 압도적인 차이다. 3~5위를 기록한 유니버설(13.4%), 소니(11.7%), 라이언스게이트(6.8%) 등의 기록을 놓고 보면 얼마나 디즈니가 압도적인지를 재확인할 수 있다. 할리우드 영화가 미국 시장보다 더 큰 전세계 영화 시장을 확보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디즈니의 매출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에서도 디즈니는 2019년 한 해 동안 ‘어벤져스: 엔드게임’ ‘겨울왕국2’ ‘알라딘’ 등 1000만 관객 신화를 무려 세 번이나 기록했다.
문제는 2020년부터 ‘어벤져스’ 시리즈가 숨고르기에 들어가는 데다 디즈니 실사 영화의 흥행 성적은 기복이 다소 심하다는 데 있다. 2018년 하반기부터 2019년 사이 개봉한 실사 영화들 가운데 ‘알라딘’은 엄청난 흥행 성적을 거뒀지만 ‘메리포핀스 리턴즈’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 ‘덤보’ 등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019년 여름 성수기에 개봉돼 그즈음 개봉을 준비하던 한국 영화들을 긴장시켰던 ‘라이온 킹’ 역시 기대 이하의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2016년 실사 영화 ‘정글북’을 연출하며 디즈니 실사 영화의 상징적 인물이 된 존 파브로 감독이 연출을 맡아 기대가 컸지만 이에 부응하지 못했다. 오히려 존 파브로는 배우로 ‘해피 호건’ 역할을 맡아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을 도울 때 더 빛이 났다.
디즈니는 2019년 하반기 개봉한 ‘말레피센트2’의 흥행 실패가 특히 뼈아팠다. 영화 ‘말레피센트2’ 홍보 스틸 컷.
2019년 하반기 개봉한 ‘말레피센트2’의 흥행 실패가 특히 뼈아팠다. 디즈니 실사 영화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통해 그 가능성이 발견됐고 ‘말레피센트’를 통해 나름의 확신을 갖게 돼 ‘정글북’ 이후 본격화된다. 이런 실사 영화 초기작 가운데 핵심인 ‘말레피센트’의 속편이 흥행에 실패했다. ‘정글북’의 존 파브로가 만든 역작 ‘라이온 킹’에 이어 ‘말레피센트2’까지 저조한 흥행성적을 기록했다는 점은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20년 3월에는 ‘뮬란’이 개봉한다. 유역비가 뮬란 역할을 맡고 공리, 견자단, 이연걸 등 내로라하는 중화권 스타들이 대거 출연한다. 원작 애니메이션 자체가 중국의 위·진·남북조시대의 북위가 시대적 배경이지만 애니메이션에선 큰 문제가 없었다. 다만 실사 영화에서는 중국 배우들이 대거 출연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할리우드 영화, 디즈니 영화라는 느낌만큼이나 중국 영화라는 느낌도 강하다. 중화권에서는 흥행 원동력이 될 수 있지만 미국에서는 어떤 반응이 나올지 미지수다. 게다가 미중 갈등과 홍콩 시위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미 보이콧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2019년 8월 유역비가 자신의 SNS에 “나는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 “홍콩은 중국의 일부이며, 홍콩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등의 글을 게재했기 때문이다.
영화 ‘뮬란’은 홍콩시위와 관련, 보이콧 운동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영화 ‘뮬란’ 홍보 스틸 컷.
물론 아랍을 배경으로 한 ‘알라딘’도 비슷한 한계는 있다. 주인공 역시 이집트계 캐나다인 메나 마수드와 인도계 영국인 나오미 스콧이었다. 그렇지만 대표적인 할리우드 스타 윌 스미스가 지니로 출연해 ‘메이드 인 할리우드’임을 분명히 했다. 반면 ‘뮬란’에는 그럴 여지가 없다.
‘인어공주’는 디즈니의 파격 도전으로 기대가 되고 있는 작품이다. 자매 듀오 ‘클로에와 할리’의 멤버 할리 베일리를 에리얼 역할로 캐스팅해 화제가 된 ‘인어공주’는 2020년 개봉 예정이지만 아직 정확한 개봉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다. 디즈니는 ‘피노키오’ ‘백설공주’ ‘아더 왕’ ‘크루엘라 드 빌’(‘101마리의 달마시안’의 악역) 등 고전 애니메이션의 실사화도 준비 중이라 ‘인어공주’의 성공 여부가 중요하다.
디즈니는 마블 스튜디오를 통해 확인된 흥행 법칙을 ‘인어공주’를 통해 확장하려 한다. ‘어벤져스’ 시리즈는 흑인 히어로, 여성 히어로를 연이어 등장시켜 큰 흥행을 거두며 ‘백인 남성 히어로’의 틀을 과감히 깼다. 디즈니 실사 영화 역시 이런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캐릭터가 흑인 여배우의 인어공주 캐스팅이다.
이 대목에서 다시 한 번 ‘말레피센트2’의 흥행 저조가 아쉬움으로 남는다. 2014년 개봉된 영화 ‘말레피센트’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대표적인 ‘악역’인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인 영화다. 전세계인이 잘 알고 있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실사화하면서 오로라 공주 대신 악역 말레피센트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마녀의 숨겨진 사연에 포커스를 맞췄다. 이 영화의 성공은 디즈니 실사 영화 프로젝트의 본격적인 시작점이 됐으며 다른 디즈니 실사 영화는 물론이고 마블 스튜디오의 여성 히어로와 흑인 히어로까지 확장됐다. 그리고 흑인 인어공주의 탄생까지 연결된 셈이다. 그만큼 ‘말레피센트2’의 흥행 부진이 월트디즈니 스튜디오 입장에선 두고두고 아쉬울 수밖에 없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