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업계 전망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한 대기업 계열 제약사 임원이 내놓은 답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는 제약·바이오 업계가 올해 시험대 위에 올랐다. 바이오 업계와 증권시장에선 단순히 ‘바이오’라는 이름표만으로 거침없이 질주하던 시기를 지나 업계 전체가 숨고르기에 들어갈 것이란 관측과 여전히 바이오 기업들이 ‘신데렐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동시에 나온다.
지난해 제약·바이오 업계는 기대를 모았던 기업들이 줄줄이 임상 3상 문턱에서 미끄러지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코오롱티슈진의 퇴행성 관절염 치료제 ‘인보사’의 허가 취소 이후 3분기 신라젠의 간암 치료제 ‘펙사벡’, 헬릭스미스의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 ‘엔젠시스’가 좌절했다.
실패 소식은 지난해 4분기에도 이어졌다. 10월에는 강스템바이오텍, 11월에는 메지온이 임상 3상에서 좌절했다. 2019년 마지막 임상 3상 결과를 내놓은 비보존의 비마약성 진통제 ‘오피란제린’도 실패했다. 실패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해당 회사 기업가치가 급락했고, 업계 전반 주가가 요동쳤다. 미국 식품의약처(FDA) 임상 3상 평균 성공률은 58.1%. 그러나 지난해 ‘K-바이오’ 간판 기업들은 사실상 ‘전멸’했다.
올해 제약·바이오 업계가 지난해의 실패를 딛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 주목된다. 2019년 12월 28일 부산 북구 부산지식산업센터 내 신라젠 본사 모습.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이날 신라젠 서울 여의도 사무실과 부산 본사에 수사관들을 보내 컴퓨터와 문서 등을 확보했다. 사진=연합뉴스
# 지난해 K바이오 실패한 이유
지난해는 K-바이오의 한계를 명확하다고 드러난 한 해로 평가받는다. 복수의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임상 3상에 실패한 업체들은 대부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올해 신뢰 회복은커녕 거품 논란은 더욱 확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임상을 관리하고 주도할 인력 부족이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꼽힌다. 세계적으로 임상 3상에는 1000명에 가까운 인력이 회사 내·외부에서 투입된다. 그러나 인보사를 개발한 코오롱티슈진의 전체 직원수는 100명이 채 되지 않았고,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바이오사업부는 28명(2019년 반기보고서 기준)이었다.
다른 업체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력이 적으면 적을수록 데이터 관리와 연구 등에 허점과 공백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 헬릭스미스의 경우, 임상 3상 결과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일부 환자가 위약(가짜약)과 회사가 개발한 엔젠시스를 혼용해서 복용한 사실을 발견하고 3상을 다시 처음부터 진행하기로 했다. 업계에선 이에 대해 상상도 할 수 없는 ‘실수’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한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인원이 부족한데 핵심 연구원마저도 자주 바뀐다”고 꼬집었다.
개발한 물질 하나에 ‘올인’하는 관행도 K-바이오의 또 다른 문제점이다. 펙사벡(신라젠)과 엔젠시스(헬렉스미스), 인보사(코오롱)는 모두 회사가 가진 유일한 무기였다. 증시 상장부터 임상 1~3상을 이 ‘무기’ 하나로만 이뤄냈다. 하나의 물질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기 위해 특정 질환을 목표로 좁게 연구가 진행된다. 현실적으로 ‘모 아니면 도’와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이런 방식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투자가 이뤄지는 건 바이오 산업뿐이다”라고 말했다.
임상 3상만 시작돼도 ‘성공’ ‘기대’라는 말을 회사들이 아무렇지 않게 꺼내면서 거품을 유발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바이오 업계는 관행처럼 임상 1~3상 과정을 공개할 때 이 같은 표현을 쓰고 있다.
이에 대해 지난해 한 업체의 임상 3상에 참여했던 연구원은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은 ‘성공’했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긍정적인 결과를 냈다고 평가하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이어 “임상 3상 통과가 곧바로 신약의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연구개발을 이어가려면 투자가 중요하고, 이를 위해선 시장에 ‘명확한’ 시그널을 줄 필요가 있지만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했다가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면 허둥지둥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덧붙였다.
#“초대형 이벤트 대기 중” 업계 분위기 반전시킬까
반대로 올해 긍정적인 초대형 ‘이벤트’가 적지 않은 만큼 지난해와 업계, 시장 사정이 크게 다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일부 ‘이벤트’들은 업계 전체 분위기를 반전시킬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우선 올해 국내 기업공개(IPO·상장) 시장 최대어가 바이오 기업이다. SK 100% 자회사 SK바이오팜이 최근 코스피 상장 예비심사를 통과했다. 증권가에서는 시가총액이 6조 원에서 최대 1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고 있다. 바이오 업계에선 삼성바이오로직스(9조 원)와 셀트리온헬스케어(7조 8000억 원)의 뒤를 이을 기업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미약품의 ‘롤론티스’는 회사의 첫 번째 글로벌 신약이 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FDA 허가를 위한 1차 관문을 통과했다. 오는 10월 최종 허가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관측된다. 롤론티스가 FDA 허가를 획득하면 15년 만에 출시된 호중구감소증 신약이 된다. 호중구감소증 치료 시장은 미국에서만 4조 원대 규모다.
셀트리온은 신약 판매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세계 최초 인플릭시맙 성분의 피하주사 제제 ‘램시마SC’를 올해 2월 독일을 시작으로 연말까지 유럽 전역에서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관련 시장은 3개 제품이 이끌고 있다. 전 세계 50조원 규모 시장으로, 10조 원 규모를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3상 결과 발표도 이어진다. 지난해 실패한 업체들과 함께 대웅제약의 자회사인 한올바이오파마가 ‘HL036’의 글로벌 임상 3-1상 주요 결과를 공개한다. 동아에스티의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 ‘NB-01’을 도입한 미국 바이오기업 뉴로보파마슈티컬스도 올해 안에 NB-01의 글로벌 임상 3상 주요결과를 발표한다. 유한양행의 폐암 치료 후보물질 ‘레이저티닙’도 연내 글로벌 임상 3상에 돌입할 예정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확실한 성과가 나올 이벤트들이 다수”라면서도 “다만 지난해 충격이 단순 성장통이나 과도기라고만 하기에는 치명적인 문제점들이 노출됐다. 올해부터는 질적인 도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