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사태 이후 법원이 가압류 절차를 밟기 직전 고가의 미술품을 빼돌린 혐의(강제집행면탈)에 대한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향하는 이혜경 전 동양그룹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동양 사태 피해자 60여 명은 지난해 7월 이혜경 전 부회장에 대해 동양 사태와 관련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상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피해자만으로 고소인단을 꾸려 이 전 부회장을 고소한 것은 동양 사태 이후 처음이다. 당초 피해자들은 대구 수성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 1차 고소인 조사를 받았다.
이후 경찰은 사건을 이 전 부회장의 주소 관할인 서울 종로경찰서에 이첩했다. 이에 따라 이 전 부회장은 지난 3일 종로경찰서에 직접 출석해 피고소인 조사를 받았다. 동양 사태가 불거진 지 6년여 만이다. 동양 사태는 2013년 동양그룹이 사기성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발행, 일반 투자자 4만여 명에게 1조 3000억 원대 피해를 준 사건이다.
이번 고소에 대해 피해자들은 이 전 부회장에게 동양 사태와 관련해 제대로 된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남편 현재현 전 회장은 이 사건으로 특경가법상 사기·횡령·배임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7년 확정판결을 받아 복역 중이다. 내년 초 만기출소할 가능성이 높다. 이외에도 정진석 전 동양증권 사장, 김철 전 동양네트웍스 대표, 이상화 전 동양인터내셔널 대표 등 경영진도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반면 이혜경 전 부회장은 수사선상에 올랐으나,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고소장을 통해 “이혜경 전 부회장이 2007년부터 그룹 부회장으로 취임해 경영에 적극 관여했다. 또한 그녀는 그룹 대주주이자 등기이사로서 그룹 전체의 자금상황과 구조조정 진행상황에 대해 보고받고 잘 아는 위치에 있었다”며 “CP와 회사채 발행과 그룹의 상환능력 등에 대해 모를 리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혜경 전 부회장은 동양 사태 당시 사기 혐의로는 기소되지 않았지만, 다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강제집행면탈 혐의다. 강제집행면탈은 강제집행을 피하기 위해 재산을 은닉하는 등의 행위를 말한다. 앞서 현재현 전 회장은 동양 사태 직후 국정감사에 출석해 투자자 피해보상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겠다. 사재는 다 내놓기로 했다”며 사재출연을 통한 변제의 뜻을 밝혔다. 이혜경 전 부회장 역시 피해보상을 위한 재산환원 여부에 대해 “현 회장 뜻대로 따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러한 약속과 실제 행동은 달랐다. 이혜경 전 부회장은 동양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성북동 자택 대여금고에서 패물 및 현금을 인출했다. 또 자택과 사옥에 보관하던 미술품과 고가구, 도자기 장신구 등 400여 점을 반출해 서미갤러리 창고 등에 숨기고, 일부 미술품 13점은 국내외에 약 48억 원에 매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이 전 부회장에게 징역 2년 실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관련 민사·행정소송이 진행 중이고, 남편 현 전 회장이 구속 중인 점을 고려해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항소심은 2017년 4월 이후 기일이 진행되지 않고 중단된 상태다.
법적인 처벌이 미뤄지고 있는 사이 현재까지 동양 사태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아직도 회수하지 못한 피해액만 4000여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2014년 동양피해자대책협의회, 법무법인 정율, 투기자본감시센터 공동 주최로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열린 동양사태 증권 관련 집단소송 기자회견. 관계자들이 이혜경 전 동양그룹 부회장 구속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에 대해 피해자 측 변호인은 “불기소는 경찰의 의견이다. 검찰에 추가로 자료를 제출해 예정이다. 검찰의 수사를 통한 기소 여부를 기다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해자들이 제시하는 추가 근거는 최근 나온 ‘동양 사태에 이 전 부회장의 책임도 있다’는 서울회생법원의 판결이다. 서울회생법원 법인회생1부는 지난해 5월 티와이강원(옛 동양)이 현 전 회장, 이 전 부회장을 상대로 신청한 손해배상청구권 조사확정재판에서 3310억 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동양그룹은 비정상적·불법적인 자금운용으로 2012년 10월부터 현실적인 부도위기에 처했는데도 동양 계열사에 ‘회수가 불가능한‘ CP를 인수하도록 해 손해를 가했다”며 “오너가 주도한 것인 데다 고의적이어서 과실상계 여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현재현 전 회장 외에도 검찰에서 사기 혐의 ‘무혐의’ 처분을 받은 이혜경 전 회장에게도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해 눈길을 끌었다. 재판부는 “이 전 부회장은 동양그룹의 부회장으로 동양의 재무상황에 대해 보고받았음은 물론, 2013년 1월 그룹 긴급 자금회의에도 참석하는 등 상법상 ‘사실상의 이사’로 볼 수 있다”고 책임을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검찰이 이 전 부회장에 대해 경찰의 의견과 다른 결과를 내놓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