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불문하고 천재에 대한 관심은 늘 뜨거웠다. ‘천재 아티스트’ ‘천재 감독’ ‘천재 야구선수’ 등등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은 인물도 수없이 많다. 그러나 천재라는 말만큼 정의가 애매하고 이미지가 제각각인 것도 없다. 그 사람이 정말 천재인가도 알쏭달쏭하다. 과연 객관적으로 종합했을 때 ‘진짜 천재’라고 할 만한 인물은 누가 있을까. 일본 매체 ‘주간 겐다이’가 흥미로운 발표를 했다. 다름 아니라 천재를 가리는 결정전이다.
일본 스포츠계의 천재로 불리는 이치로(왼쪽)와 오타니 쇼헤이. 사진=AP·AFP/연합뉴스
일본 경제계, 학계, 스포츠계, 문화계 등 각 분야 전문가 16명이 분야를 통틀어 누가 진짜 천재인가를 두고 순위를 매겼다. 참고로 ‘천재’ 정의는 4가지를 기준으로 삼았다. 타고난 머리(두뇌력), 질 높은 노력을 장기간 계속할 수 있는 힘(노력력), 시대의 요구를 읽어내는 능력(감지력), 번뜩이는 것을 형태로 만드는 능력(실행력)이다.
제일 먼저 이름이 거론된 것은 ‘천재 타자’ 이치로였다. 지난해 3월 은퇴할 때까지, 이치로는 미국과 일본에서 통산 4367개의 안타를 쳤다. 세계 최다 기록이다. 철저한 자기관리로 유명한 이치로는 ‘주간 겐다이’가 뽑은 천재들 가운데 노력 분야에서 단연 최고 점수를 받았다.
언론인 오니스 야스유키는 이렇게 평가했다. “이치로가 대단한 것은 ‘완성이란 없다’고 여겼다는 점이다. 매년 수많은 재능들이 쏟아져 나오는 곳에서 꾸준함을 유지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상대 선수도 변하고, 자신의 몸도 변해간다. 매 시즌 최고의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 이치로는 부단한 노력으로 끊임없이 단점을 보완해왔다.”
노력력과 더불어, 이치로는 두뇌력도 전문가들로부터 최고 레벨로 평가받았다. 다만, 수도승 같은 타입이라 시대의 요구를 읽어내는 감지력과 실행력 등은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가 나왔다. 같은 프로야구 선수인 오타니 쇼헤이도 ‘스포츠계 천재’로 거론됐다. 경제학자 다나카 히데토미 교수는 “흔히 오타니의 뛰어난 신체 능력에 주목하기 쉽다. 하지만 노력력과 실행력도 뒤지지 않는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오타니는 잘 알려진 대로 ‘이도류(투수와 타자를 동시에 병행)’ 선수라 연습량이 많다. 노력력은 가타부타 따질 게 없다. 또한 “고교 시절 만다라트 기법을 응용해 자신의 역량을 극대화시켰다는 점에서 실행력도 충분하다”는 평가다. 참고로 ‘만다라트’는 오타니의 목표 달성법이다. 그는 중앙에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다’는 최종목표를 쓰고, 주변에 구체적인 과제를 적어 하나씩 클리어해 나갔다.
그러나 오타니는 최종 순위에서 이치로에게 다소 밀렸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치로는 지독한 자기관리로 유명하다. 메이저리그에서 19년간 뛰면서 부상자명단에 거의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반면 오타니는 오른쪽 팔꿈치 부상에 이어 왼쪽 무릎 수술로 지난해 시즌을 조기 마감해야 했다”며 두 선수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괴짜 천재’ 야마나카 신야 교수의 2019년 CiRA 공동 심포지엄 강연 모습. 사진=유튜브 캡처
‘최고의 두뇌’가 모인 학계에도 천재로 불리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줄기세포 과학자, 야마나카 신야를 ‘괴짜 천재’로 지목했다. 흥미롭게도 야마나카는 정형외과 의사로 출발했는데, 수술 실력이 형편없어서 놀림을 받았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고, 기초의학 연구 분야로 과감히 눈을 돌렸다. 2012년 ‘유도만능줄기세포(iPS)’ 연구로 노벨생리의학상까지 수상했으니, 실로 대단한 ‘인생 역전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야마나카가 iPS 연구를 시작한 배경도 재미있다.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연구원으로 있을 무렵, 야마나카는 소장으로부터 ‘연구자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VW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여기서 V는 비전, W는 워크하드의 첫 글자다. 요컨대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가 품은 비전은 다른 연구원들은 거들떠보지 않은 iPS 연구였다. 인기도 없고, 현실화하기도 어려운 비전이었다. 하지만 야마나카는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열심히 매달려 연구를 성공시켰다. 전문가들은 “누구도 밟지 않은 미답 분야를 개척해 나간 야마나카의 능력이 가히 ‘천재’라 부를 만하다”고 입을 모았다. “두뇌가 명석한 데다 사회를 좋은 쪽으로 바꾸는 존재야말로 진정한 천재”라는 것이다.
비전과 행동력을 갖춘 손정의 회장은 경영계의 천재다. 사진=EPA/연합뉴스
다른 능력에 비해, 두뇌가 월등히 좋아 ‘이 시대의 천재’로 꼽힌 인물도 있다. 일본 프로장기의 최고수, 하부 요시하루가 그 주인공이다. 하부는 지금까지 불멸의 기록을 쌓아와 ‘만화보다 더 만화 같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저널리스트 모리 켄은 “하부가 30년 넘게 7할이 넘는 승률(1449승, 604패)을 보여준 것은 아주 놀라운 일”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모리는 1990년대 중반, 일본 의과대학에서 하부의 뇌를 검사한 결과를 덧붙였다. 당시 결과에 따르면, “하부의 두뇌는 논리를 담당하는 좌뇌보다 후두부의 시각중추가 더 활발히 움직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리는 “시각중추는 다른 뇌 부위에 비해 정보처리 능력이 높은 곳”이라며 “뇌파 검사에서도 그의 재능이 입증된 셈”이라고 전했다.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신카이 마코토 감독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일본 애니메이션의 천재’라고 불리는 신카이는 신작 ‘날씨의 아이’까지 연달아 히트시키면서 거대한 팬덤을 거느리게 됐다. 하지만 ‘천재 과는 아니다’라는 일부 의견도 제기됐다. 굳이 나누자면 천재보다 프로에 가깝다는 것이다.
평론가 마카이노 고지는 “신카이 감독의 대중성은 ‘너의 이름은’ 이전과 이후로 구분되는데, 사실 작풍이 크게 바뀌진 않았다. 자신의 고유 작풍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건 분명 재능이다. 단지 어떤 의미로는 그의 재능을 발견하고 ‘히트’로 연결한 프로듀서가 더 대단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소견을 밝혔다.
문화계의 천재 노무라 만사이(왼쪽)와 뮤지션 부문 천재 나카지마 미유키. 사진=연합뉴스·트위터
한편 전문가들이 ‘문화계의 천재’로 가장 많이 언급한 인물은 노무라 만사이다. 노무라는 교겐(일본 전통극)과 영화, 드라마 등에서 폭넓게 활약하는 배우. 2020 도쿄올림픽 개·폐막식 총괄 예술감독을 맡아 화제가 된 바 있다. 메이지대학 교수 사이토 다카시는 “신카이 감독도 확실히 감각이 있지만, 노무라는 ‘초월한 경지’에 이른 듯한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이벤트 회의에서 그를 만난 소감에 대해 “정말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아이디어가 끝없이 나왔다. 압도적인 존재였다”고 극찬했다.
뮤지션 부문은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여성 싱어송라이터 나카지마 미유키와 마쓰토야 유미를 꼽았다. 특히 나카지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전무했다. 나카지마가 만든 노래는 멜로디도 아름답지만, 듣는 이의 마음을 흔드는 가사가 백미다. 평론가 마카이노 고지는 “시대의 요구나 분위기를 읽는 능력이 탁월하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도 천재의 특징 중 하나”라고 말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나카지마의 저작권료 수입은 일본 전체 가수 중 1~2위를 다툰다고 한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주간겐다이가 발표한 일본의 ‘진짜 천재’ 1. 나카지마 미유키 (뮤지션) 2.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3. 마쓰토야 유미 (뮤지션) 4. 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회장) 5. 야마나카 신야 (학자) 6. 스즈키 도시후미 (세븐앤아이홀딩스 전 회장) 7. 하부 요시하루 (프로장기 기사) 8. 이치로 (전 프로야구 선수) 9. 노무라 만사이 (전통극 배우) 10. 오타니 쇼헤이 (프로야구 선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