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발 정계개편이 여의도 총선판 한가운데 상륙했다. 안철수 돌발 변수는 꺼졌던 정계개편 폭탄에 불을 붙였다. 보수진영에선 이미 안철수 브랜드를 고리로 대통합의 애드벌룬을 띄웠다. 덩달아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의원 몸값도 치솟고 있다. 하지만 한때 정국을 뒤흔들었던 소싯적 ‘안철수 현상’은 더는 없다. 다만 정계 복귀를 선언한 안 전 의원이 여권 잔칫상에 재를 뿌릴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안철수 변수의 위력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얘기다.
안철수 전 의원이 정계복귀를 선언함에 따라 범보수진영의 정계개편 움직임이 요동칠 전망이다. 사진=박은숙 기자
기로에 선 안 전 의원 선택지는 둘 중 하나다. ‘반문(반문재인) 연대냐, 선 독자·후 통합이냐’다. 전자는 예측 가능한 진로다. 3년 전 19대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을 제외한 세 정당은 보수 통합 논의를 이어갔지만, 공염불에 그쳤다. 그는 이듬해인 2018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유승민계와 손을 맞잡았다. “안철수가 보수진영 대선 후보를 노리고 있다”라는 말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도 이때다.
또 다른 선택지는 ‘총선 독자노선·대선 통합’이다. 안 전 의원이 오는 4·15 총선에서 원내 교섭단체(20석)를 1차 목표로 삼은 뒤 2022년 대선 때 보수진영의 구심점으로 부상하는 시나리오다. 이른바 ‘YS(김영삼 전 대통령) 모델’이다. 한국 민주화의 상징으로 불리는 YS는 1987년 DJ(김대중 전 대통령)와 야권 후보단일화 실패 후 이듬해 13대 총선에서 독자노선을 택했다. 결과는 299석 중 59석으로 노태우의 민주정의당(125석)과 DJ의 평화민주당(54석)에 이은 3위였다.
YS가 이끄는 통일민주당은 부산 14석, 경남 9석을 각각 얻으며 PK 맹주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정당 득표율에서는 평화민주당(19.3%)을 제치고 2위(23.8%)를 차지했다. 1위는 민주정의당(34.0%)이 기록했다. 앞서 1987년 대선에서 DJ(27.1%)를 근소한 차로 제쳤던(28%) YS는 총선에서도 만만치 않은 독자 세력 가능성을 증명했다. 하지만 대권 여의주를 잡기엔 2% 부족했다. YS가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로 들어간다”는 말을 남기고 ‘3당(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합당’을 감행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민주당 전 의원은 안 전 의원 행보와 관련해 “1단계는 교섭단체를 노리고 그 다음에는 보수진영 대권 후보가 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0 민주자유당 모델’을 만들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복수의 여야 관계자들도 이 시나리오에 힘을 실었다. 안 전 의원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 1월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정계 복귀 선언문에서 “정치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며 “미래를 내다본 전면적인 국가혁신과 사회통합, 그리고 낡은 정치와 기득권에 대한 과감한 청산이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는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전제조건은 두 가지다. 하나는 독자노선을 택한 안 전 의원이 원내 20석 이상을 획득한다. 다른 하나는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100석 이하로 참패한다. 이 두 가지 시나리오가 맞물려야 ‘다시 안철수’ 시대의 문이 열린다. 안 전 의원이 독자 노선을 택할 경우에도 길은 두 가지다. 유승민 의원과 공동으로 창당했던 바른미래당을 택하는 안이 거론된다. 창당 작업을 둘러싼 이전투구를 줄일 수 있는 데다, 조직·자금 등의 동원을 최소화할 수 있어서다. 일부 의원들 영입까지 한다면, 기호 3번을 사수할 수도 있다.
안 전 의원은 1월 8일 바른미래당 의원들에게 보낸 새해 메시지에서 정계 진출 당시를 언급하며 “그때의 진심과 선의, 그리고 초심은 지금도 변치 않았다”며 “이제 우리 대한민국이 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진심과 선의로 호소하겠다”고 전했다. 다만 기존 당의 잔류를 택하더라도, 바른미래당 간판보다는 재창당 수준의 혁신을 꾀한 뒤 총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DJ 모델인 독자 신당 카드를 꺼낼 수도 있다. 정계 은퇴를 번복하고 1995년 복귀한 DJ는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 이듬해 15대 총선에 도전장을 냈다. 79석에 그친 DJ는 여당이었던 YS의 민주자유당(139석)의 60% 수준에 그쳤지만, 독자 생존 가능성은 증명했다. 1년 뒤 1997년 대선에서는 대권 4수 끝에 당선됐다. 안 전 의원은 20대 총선 때 국민의당을 창당, 38석을 획득해 20년 만에 다당제 시대를 열었다. 특히 호남 28석 중 23석을 석권, 반문 심리의 최대 승자로 등극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사진=박은숙 기자
특히 황 대표는 당내 친박(친박근혜)계의 반발로, 유승민 의원이 제시한 ‘보수 재건 3원칙’의 공식 수용 의사도 표명하지 못했다. 앞서 유 의원은 △탄핵의 강을 건너자 △개혁 보수로 나아가자 △새집을 짓자 등의 ‘보수 재건 3원칙’을 제시했다. 이후 한국당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유 의원의 안을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황 대표는 이들의 의견을 수용, 새로운보수당 측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러나 친박계 벽은 높았다. 강경 친박계는 “탈당도 불사할 것”이라며 황 대표에게 으름장을 놨다. 재선의 친박계 한 의원은 “모두 다 양보하라는 말이냐”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일부 친박계 의원들 사이에는 “배신자인 유승민계와 공천 지분을 나눌 수 없다”는 기류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득 없이 끝난 황 대표와 하태경 새로운보수당 책임대표의 1월 7일 비공개 회동에서도 이 문제로 틀어졌다.
이들은 35분간 비공개로 만나 보수통합을 논의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황 대표는 이 자리에서 “당내 설득을 하는 과정에 있다”며 통합 의지를 전달했다. 하지만 하 대표는 “황 대표가 (유 의원과의) 공동 대표 체제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더라”라고 말했다. 유승민계와 공천권 지분을 나누지 않겠다는 뜻을 피력했다는 의미다. 유 의원은 “저희 갈 길을 갈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안철수계 관계자들도 “뭉치는 게 능사는 아니다”라고 보수 통합 논의를 일축했다. 안 전 의원 일부 관계자들은 독자 신당 창당 작업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학교 특임교수는 “한국당 혁신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보수대통합이 이뤄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안철수 딜레마 극복이다. 안 전 의원이 역설한 ‘새 정치’가 기성 정치권에 들어온 지 올해로 9년째다. 그는 서울시장 후보로 떠올랐던 2011년 10·26 보궐선거 때부터 줄곧 ‘새 정치’를 강조했다. 그러나 안 전 의원 혁신 이미지는 이미 노쇠했다. 2012년 총·대선과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등을 거치면서 소비될 만큼 소비된 상태다. 되레 ‘간철수’, ‘MB(이명박 전 대통령) 아바타’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만 덧씌워졌다.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갤럽’이 지난해 12월 10∼12일까지 조사해 13일 발표한 ‘주요 인물 호감도’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서 국민의 69%는 “안 전 의원에게 호감이 가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차기 대선주자 중 비호감도 1위였다. 이어 황교안 대표(67%), 유승민 의원(59%) 순이었다.
정의당 한 당직자는 “비호감도가 70% 선에 근접하면 당선 자체가 어렵다”라며 “대선이 아니라 4·15 총선에서 안 전 의원이 부활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단언했다. 다만 정치권 한 관계자는 “어차피 총선은 한 축은 정권심판, 다른 축은 야당 심판”이라며 “안 전 의원이 거대 양당을 비토하는 흐름을 탈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