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 노조는 윤종원 기업은행장을 낙하산 인사로 규정해 출근을 저지하고 있다. 지난 7일 기업은행 노조가 윤 행장 출근을 막기 위해 기업은행 본점 앞에서 투쟁을 벌이는 모습. 사진=기업은행 노조
윤종원 행장은 1983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청와대 경제수석 등을 거친 관료 출신이다. 이전 행장인 김도진 전 기업은행장이나 그 전임인 권선주 전 행장, 조준희 전 행장은 기업은행에서 수십 년을 일한 내부 출신이다. 2010년 퇴임한 윤용로 전 기업은행장 이후 10년 만에 외부 출신이 기업은행장에 선임된 것이다.
기업은행장은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으로 선임된다. 당초 금융위는 반장식 전 청와대 일자리수석비서관을 기업은행장으로 고려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기업은행 노조가 수차례 반대 의사를 표했고, 금융위는 결국 윤종원 행장을 선택했다. 하지만 반 전 비서관이나 윤 행장이나 관료 출신 인사라는 점은 마찬가지다.
윤 행장이 선임되기 전인 2019년 12월 31일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윤 전 수석이 (기업은행장으로) 사실상 내정된 것으로 보이는데 금융 비전문가, 청와대 낙하산 인사라는 평가와 함께 기업은행 구성원들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며 “그야말로 영문도 모르는 채로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낙하산이고 깜깜이 인사”라고 말하는 등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관료 출신을 행장으로 임명하면 반발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청와대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청와대 측은 윤 행장에 대해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정부의 국정철학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지난 3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0년 범금융 신년 인사회’에서 “내가 청와대에 제청했고 윤 행장이 적합하다는 것은 이력을 보면 알 수 있다”며 “자격이나 전문성을 지켜보면 노조와 은행도 충분히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할 것”이라고 전했다.
기업은행 노조가 2019년 12월 초부터 낙하산 인사 반대 성명을 발표했기에 관료 출신 행장을 임명하면 반발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청와대도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서울 중구 기업은행 본점. 사진=박정훈 기자
청와대는 윤종원 행장에게 금융 개혁을 기대하는 듯하다. 2018년 8월 당시 경제수석이었던 윤 행장은 주요 경제지들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금융 개혁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국내 금융산업은 독과점 내수산업”이라며 “금융시장에 대한 높은 진입장벽이 금융사 임직원들 월급 많이 가져가라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기업은행이 윤 행장을 선임하면서 “포용적 성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평가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또 윤종원 행장은 당시 불거졌던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찬반 논란에 대해 “인터넷전문은행 등 은산분리 원칙에 막힌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윤 행장은 금융권의 문제를 지나친 고임금으로 보고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경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며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주장한 것도 이를 통해 시중은행의 경쟁을 촉진하고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고 전했다.
현재 윤종원 행장은 기업은행 노조와 관계를 개선하기 전에는 제대로 된 업무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은성수 위원장은 “윤 행장과 노조가 이야기하는 걸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형선 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윤 행장과 대화로 해결할 일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윤 행장이 친기업적 성향으로 평가받기 때문에 노조의 반대에 부딪쳤다는 분석도 있다. 그가 경제수석으로 임명된 2018년 6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윤 수석은 기획재정부 출신으로 혁신성장을 내걸고 친기업, 친재벌 행보를 노골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태가 장기화되면 오는 4월 국회의원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017년 4월 더불어민주당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은 “낙하산 인사를 근절하고 전문성을 가진 인사가 임명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보완한다”는 내용의 정책협약을 맺었다. 기업은행 노조는 “이대로 정책협약을 파기하면 집권세력에 대한 모든 지지를 철회하고 4월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낙선운동과 정권 퇴진 운동까지 벌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