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포츠계에 이어지고 있는 욱일기 논란에 대해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입을 열었다. 사진=임준선 기자
팬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구단 홈페이지, 소셜미디어(SNS), 담당 기자 등에게 항의의 뜻을 전했고 문제가 된 콘텐츠는 수시간 내 수정됐다. 10년이 넘도록 일명 ‘욱일기 퇴치 운동’을 벌이고 있는 서경덕 성신여자대학교 교수는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일요신문이 지난 8일 그를 만났다.
리버풀 구단은 이후 구단 트위터 일본 계정에서 올린 이미지에 ‘좋아요’를 눌렀다. 이 또한 욱일기를 연상시키는 문양이 담겨 있어 논란이 이어졌다. 서경덕 교수는 “논란이 반복되는 리버풀 구단도 문제지만 이제는 다른 차원의 대응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단이 소속된 리그의 사무국에 ‘욱일기는 전범기와 같다’는 내용이 담긴 자료를 발송해야 한다”는 것.
리버풀 구단은 한 영상을 공개하며 썸네일로 욱일기와 유사한 배경 이미지를 사용해 논란을 자초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그는 정보를 널리 퍼뜨리는 방법을 택했다. 리버풀 논란 이후 프리미어리그를 포함해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독일 분데스리가, 이탈리아 세리에A 사무국에 욱일기 관련 자료를 보냈다. 그러나 그들에게 아직 공식적인 답변이 오지는 않았다. 그는 “답변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본의 눈치를 안 볼 수 없다”며 웃었다.
해외축구 팬들 사이에서 벌어진 리버풀의 욱일기 논란은 2020 도쿄올림픽 개막이 약 6개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욱일기에 대한 높아진 관심을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서 교수는 앞서 도쿄올림픽에서 욱일기 반입을 막으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등에 공식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IOC에서 답변이 오기는 했다. 하지만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올림픽 조항 50조 2항에 해당하는 ‘정치적, 종교적 행위를 금지한다’는 내용만 언급할 뿐이다. 우리가 핵심 내용으로 생각하는 ‘욱일기를 금지하겠다’는 말은 싹 빠졌다. 특정 사안마다 문제가 일어날 경우 논의를 해보고 대처하겠다는 정도다.”
그는 해외 유명 구단, 리그, IOC 등이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이해한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일본은 강대국이다. 스포츠 문화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나라이기도 하다”며 “일본의 눈치를 보는 그들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IOC만 예를 들어도 올림픽 메인 스폰서 13개 중 일본 기업만 3곳이다”라고 설명했다.
올림픽이 개막하면 서 교수의 바람처럼 관객석 등에서 욱일기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 상황은 실현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플랜B’를 준비하고 있다. “사전에 막지 못한다면 그 다음 단계를 생각해야 한다”며 “올림픽에는 세계 언론이 모인다. 그 현장에서 ‘욱일기는 독일의 하켄크로이츠와 같다’는 내용을 적극 배포할 계획이다. 어쩌면 올림픽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꾸준히 욱일기 금지 관련 활동을 이어온 서 교수는 최근 변화의 움직임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그는 “올림픽이 다가오면서 확실히 젊은 층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이전까지 욱일기 문양을 발견하고 우리 쪽으로 제보를 주면 우리가 움직이는 식이었다면 이제는 발견하신 분들이 직접 움직이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는 “중국은 그간 항일 관련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유독 욱일기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중국 시민단체들이 관심을 보였고 우리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좋은 활동을 함께할 수 있는 몇몇 단체와 의기투합할 계획을 짜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 BBC와 같은 종합 언론 외에도 ESPN, 골닷컴 등 스포츠 전문 언론에서도 욱일기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도 새로운 변화”라고 짚었다.
서경덕 교수는 욱일기 반대 운동을 진행하며 중국 시민단체와의 협업 계획을 밝혔다. 사진=임준선 기자
서경덕 교수가 욱일기 사용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일본의 역사 왜곡 활동이 오랜 기간 그의 주된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역사 왜곡과 관련해 두 가지 작업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한 쪽에 새로운 일본의 역사 왜곡을 찾아내는 역사학자가 있는 반면 다른 쪽에는 기존에 알려진, 이미 일어난 역사 왜곡을 바로잡으려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분류했다.
그렇게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해 알리는 활동을 이어오면서 자연스레 욱일기에도 서 교수의 손이 닿았다. “독도에 관심을 가지다보니 위안부, 강제징용, 욱일기 등으로 관심사가 이어졌다”며 “이들 전부가 역사 왜곡이라는 한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그는 “특별할 것 없다. 그간 해온 일들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특히 욱일기 반대 운동은 손바닥 뒤집듯 한 번에 끝날 사안이 아니다. 이제는 세계 여론전으로 흘러갈 것이다. 올림픽을 앞두고 달라지고 있는 분위기는 우리에게 좋은 기회다. 지속적인 홍보 활동으로 널리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황채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