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의 사설 유기동물 보호소인 여미지에서 관리자가 후원금을 받고는 잠적한 사건이 벌어졌다. 사진=여미지 카페 캡처
여수 유기동물 보호소 ‘여미지’는 비인가 시설이다. 개인이 보호소를 열고 유기동물을 돌봐왔다. 이 아무개 씨는 건물을 임대해 견사를 만들고 동물 130여 마리를 돌봤다. 하지만 2019년 7월 이 씨가 불미스러운 일로 구속되며 보호소의 개들이 방치됐다. 자원봉사자들이 뒤늦게 구속사실을 알고 유기견을 돌보기 위해 보호소를 찾아가보니 상황은 처참했다.
동물들은 한여름에 밥도 물도 먹지 못한 채 탈진상태에 놓여있었다. 집 주변과 창고 안에는 원인불명의 동물 뼈도 다량 발견됐다. 이를 수습하고 보호소를 운영한다고 나선 사람이 있었다. 온라인에서 ‘민주맘’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던 정 아무개 씨(여)다.
정 씨는 새로 견사를 짓고, 사료비와 병원비 모금을 시작했다. 당시 보호소와 관련해 전임자가 갚지 않은 공사비 100만 원과 자재비 500만 원, 밀린 병원비 400만 원과 40여 마리 치료비, 상근관리자 급여비 등의 부채가 있었다.
봉사자들에 따르면 당시 정 씨는 동물을 돌보며 구속된 이 씨에게 소유권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 겨울이 되기 전에 최대한 많은 동물들에게 새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소유권 이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 씨가 소유권 이전을 원치 않아 설득이 어려웠다. 이 씨에게 배신감을 느낀 사람들은 후원을 줄였고, 쉼터는 운영이 어려워졌다. 이 과정에서 10마리 넘는 동물들이 목숨을 잃었다.
정 씨는 설득 끝에 9월 이 씨로부터 소유권을 넘겨 받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정 씨는 딸 명의의 통장으로 후원금을 받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정 씨는 여러 곳에 여미지를 홍보하며 후원을 받았다. 동물보호단체의 기부도 있었다. 후원이 늘자 정 씨가 딸 명의의 통장으로 후원을 받는 데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생겼다. 정 씨가 후원금과 관련해 액수를 밝히거나 정산내역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1월 정 씨는 본인 명의 통장을 개설해 새로운 후원 계좌를 열었다.
여미지의 동물들에게는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 사진=여미지 카페 캡처
문제없이 운영되는 듯했던 보호소는 12월 파국을 맞았다. 주말이 되어 봉사를 하러 간 봉사자는 충격적인 상황을 목격했다. 사료와 물통이 텅 비어 있고, 동물들은 끼니를 굶어 신경이 곤두선 상태로 있었다. 몇몇 개들은 크게 다쳐 목숨이 위급한 상황이었다. 보호소 임대료도 몇 달째 밀려있다. 하지만 2019년 12월 26일 통화를 끝으로 정 씨는 잠적했다.
정 씨는 여수의 한 펜션에서 거주하며 본인 소유의 개와 보호소 개들을 돌봐왔다. 펜션은 정 씨의 친인척이 운영하고 있다. 정 씨는 사료와 배변패드 등 물품을 펜션 주소로 후원 받았다. 하지만 정 씨는 펜션을 떠난 뒤로 행방이 묘연하다. 후원물품도 회수되지 않았다. 꺼져있던 정 씨 휴대전화는 아예 번호가 사라졌다. SNS에 정 씨가 올린 글도 대부분 지워지고 비공개로 바뀌었다.
펜션 주인 역시 “정 씨가 어디로 갔는지 전혀 모른다“는 입장이다. 그는 정 씨와 친인척 관계로 알려졌지만 ”정 씨는 나하고 관계없는 세입자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정 씨의 딸이자 후원금 모금 계좌 명의를 빌려줬던 안 아무개 씨는 “가족들도 어머니와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이다. 따로 살고 있었는데 거주지가 바뀌어 근황을 모른다”고 말했다.
현재 보호소는 임시 운영자가 관리하고 있다. 후원자들은 정확한 피해규모가 집계되고 피해자가 모이면 집단 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다. 수천만 원대 거액의 기부도 있었다고 알려져 피해액은 수억 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측된다. 정 씨의 잠적이 널리 알려지지 않아 지금도 자동이체로 후원금을 입금하는 피해자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설 보호소는 정부나 행정당국이 미처 다 돌보지 못하는 유기동물 보호를 담당한다. 개인의 후원으로 운영이 이뤄져 동물들은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 여수 보호소는 동물들이 겨울을 나기에 이불이 부족하고 노견이나 몸이 약한 동물들이 쉴 패드나 배변용품 등 최소한의 물품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보호소의 한 관계자는 “불미스러운 일로 보호소에 도움의 손길이 끊길까 가장 걱정된다.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