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혁명수비대가 아인 알아사드 공군기지 등 이라크 내 미군 주둔기지 여러 곳을 향해 탄도미사일 수십발을 발사한 뉴스를 지켜보고 있는 시민들. 사진=연합뉴스
#솔레이마니 딜레마
미군 공격으로 사망한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은 이란의 국민적 영웅이다. 이란·이라크 전쟁의 영웅이자, 최고지도자의 심복이다. 특히 시리아 내전 이후 이란의 중동지역 영향력 확대에 결정적 기여를 해왔다. 타고난 전략가인 그는 중동지역 전역에서 미국을 괴롭혀왔다. 미국 입장에서는 사담 후세인, 오사마 빈 라덴의 뒤를 잇는 최고의 골칫거리였다.
이란에서 솔레이마니는 본인의 고사에도 불구하고 수차례 대통령 후보로 거론됐던 인물이다. 언제든 대통령에 출마하면 당선 가능성이 높았다. 이란은 최고지도자 아래에 대통령이 있는 구조지만 대통령 역시 상당한 권한을 갖는다.
이란 내부에서도 국민 3분의 2로부터 지지를 받는 솔레이마니의 사망은 상당한 고민거리다. 중동지역 최고 전술가의 사망이란 점과 함께, 미국에 대한 복수를 요구하는 국민감정은 부담일 수밖에 없다. 미국에 적절한 보복을 하지 않을 경우 이란 지도부는 비난 여론에 직면하게 된다. 특히 솔레이마니가 이끌던 최정예 해외특수부대 쿠드스군과 혁명수비대가 동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란은 최근 미국의 경제제재가 계속되면서 국민의 생활고가 극단적인 상황까지 다다르고 있다.
#짜고 치는 고스톱?
솔레이마니 사망 직후 불과 5일 만에 이란은 직접 미군 기지에 공격을 가했다.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 등 위성세력을 동원한 간접 보복이 유력하다던 전문가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솔레이마니 사망에 대한 이란 국민들의 분노가 워낙 커 최고지도자가 신속히 결정을 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사전에 미국 측에 보복공격 정보를 흘리면서 피해는 최소화되도록 했다. 사실 미국과의 전면전은 이란 지도부로서도 별 승산이 없는 선택이다.
미국 역시 이란은 적지 않은 부담이다. 이라크보다 미사일 전력 등이 앞서고, 국토 상당 부분이 산악지역이란 점에서 아프가니스탄 수준의 게릴라전이 펼쳐질 위험이 높다. 미군 기지가 직접 공격당했지만 인명피해가 없다는 점을 내세워 트럼프 행정부는 군사보복 대신 경제보복을 택했다.
헤즈볼라 등 친이란계 무장단체의 국지적 도발이나, 미국과 수니파 국가들에 대한 테러 시도가 이어질 수도 있지만, 일단 중동에서 전면전이 발생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졌다.
#중동 재료 수면 아래로
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참모진을 배석시킨 가운데 이란 탄도미사일 공격 관련 대국민연설을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P/연합뉴스
금값 역시 마찬가지.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 발생 시 금융위기 수준의 충격이 올 것이라는 전망에 기댄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반짝 상승을 이끌었지만 이미 재료가 소진됐다. 온스당 1600달러까지 치솟은 가격은 오히려 차익실현을 자극할 수 있다. 이는 또 다른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나 일본 엔화채권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가격상승이 워낙 가팔라 추가 상승 여지는 크지 않다.
#시장관심은 다시 미국으로
1월 중순 미·중 무역협정 1단계 합의가 이뤄진다. 최종합의도 아니고, 양국 간 경제 갈등이 끝나는 것도 아니지만 상황이 추가로 악화되지 않을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호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도 오는 11월 재선 도전을 앞두고 지지층인 북부 공업지역과 남부 농업지역의 표를 결집시키기 위해 성과가 절실하다. 11월까지 경제개선 성과를 체감시키려면 시간도 필요하다.
미·중 간 경제 갈등이 완화되면 글로벌 경기개선 기대와 함께 위험자산 선호가 또다시 강화될 수 있다. 트럼프의 이란 대응에서 보이듯 중국과의 협상에서도 극단적인 파국은 피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