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초부터 현직 프로야구 선수가 폭행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팬들이 충격에 휩싸였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사진=연합뉴스
#애인과 싸우던 A, 가정폭력 신고된 B
방아쇠는 LG 소속 투수 A가 당겼다. A 투수는 지난해 12월 29일 오전 1시 40분쯤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한 아파트 인근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여자친구와 다투던 중 이를 말리려 다가온 행인의 얼굴을 폭행한 혐의로 서울용산경찰서에 불구속 입건돼 조사를 받았다. 이 소식이 새해 둘째 날인 1월 2일 전해지자 LG 구단과 팬들은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향후 추가 조사를 통해 혐의가 확인되면 구단 징계는 물론 KBO 상벌위원회의 징계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2013년 LG에 입단해 2018년 1군에 데뷔한 이 투수는 지난해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향후 팀의 미래로 기대를 받던 유망주였다. 그러나 이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물론, 감독의 올 시즌 구상마저 어그러뜨리는 일탈 행동으로 큰 실망을 안겼다.
류중일 LG 감독은 구단 신년하례식에서 가장 먼저 “우리 선수가 폭행 사건에 연루돼 있다. 조사를 받아봐야 하지만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팬분들께 죄송하다”고 사과하면서 “이런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선수단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여자 문제, 폭행, 음주운전, 경기 조작, 약물 등의 사건사고를 일으키면 바로 유니폼을 벗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다음은 NC 코치였다. A 투수의 폭력 사건 소식이 알려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월 4일, NC 2군에 몸담고 있는 B 코치가 인천남동경찰서에 공무집행방해 현행범으로 체포돼 불구속 입건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오전 3시께 인천 남동구 구월동에 있는 자택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을 폭행해 찰과상을 입힌 혐의다.
당시 B 코치의 아내가 112에 가정폭력 상황을 신고했고, 지구대 소속 경찰관이 자택을 찾아 아내를 폭행하는 B 코치를 저지하자 거세게 뿌리치며 얼굴을 손으로 때린 것으로 알려졌다. 놀란 아내가 가정폭력과 관련해서는 정식으로 사건을 접수하지 않고 넘어갔지만, 공무집행방해의 발단이 된 가정폭력 역시 무시하고 넘어가기 어려운 사안이다.
연이은 사건사고로 정운찬 KBO 총재 취임 이후 꾸준히 강조해왔던 ‘클린베이스볼’ 확립도 여전히 요원하기만 하다. 사진=KBO 홈페이지 캡처
NC는 언론 보도를 통해 이 소식을 접한 뒤 “입건 사실을 확인하고 즉시 KBO 클린베이스볼센터에 품위손상행위로 신고했다”며 “구단은 소속 코치의 사회적 물의에 대해 야구팬과 관계자분들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사흘 뒤에는 “B 코치가 구단에 자진해서 계약 종료 의사를 전해왔고, 팬들에게 실망을 준 것에 깊이 사과하고 있다”며 “B 코치와는 재계약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KBO 리그 종사자들의 사건사고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새해 벽두에 잇달아 전해진 이번 두 사태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최근 가장 엄격하게 다루고 중징계를 내리는 가정폭력, 혹은 데이트 폭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터라 더 충격을 안겼다.
한 야구 관계자는 “부인이 견디다 못해 직접 경찰에 신고한 B 코치는 말할 것도 없고, A 투수 역시 다툼의 수위가 높았거나 타인의 눈에 위협적으로 보였기에 지나가던 행인이 연인 간 싸움에 굳이 개입해 말리려 했던 게 아니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유추했다.
#여친에게 폭력을 행사한 비겁한 남친들
해외에서 뛰고 있는 한국인 선수도 데이트 폭력으로 문제를 일으킨 전력이 있다. 2018년 3월 계약금 125만 달러(약 13억 원)를 받고 피츠버그에 입단한 내야수 배지환이다. 피츠버그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던 그는 시즌이 한창이던 2018년 5월 고향 대구로 급거 귀국해 경찰 조사를 받았다. 배지환과 교제했던 여성 김 아무개 씨가 “전 남자친구인 배지환이 내게 폭력을 가했다”며 고소했기 때문이다. 고소장에는 “2017년 12월 31일 오후 대구 동성로에서 피고소인이 소리를 지르며 고소인의 하체를 발로 차고 주먹으로 어깨 등을 때렸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소인은 1차 조사를 받았지만, 피고소인인 배지환이 미국에 있어 조사가 이뤄지지 않자 경찰은 배지환의 가족을 통해 귀국과 조사를 요청했다. 닐 헌팅턴 피츠버그 단장도 배지환에게 사연을 듣고 일시 귀국을 허락한 뒤 곧바로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이 사실을 보고했다.
배지환은 대구 중부경찰서에서 진행된 조사에서 혐의를 일부 인정했고, 대구지검은 벌금 200만 원에 약식 기소했다. 피츠버그 구단과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한국 법원이 유죄를 인정한 지난해 4월 곧바로 자체 조사를 벌인 뒤 30경기 출전 정지 처분을 내렸다. 헌팅턴 단장은 “피츠버그 구단은 메이저리그의 징계 규정을 공감하고 지지한다”며 “배지환은 규정에 따라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했다”고 발표했다.
이뿐만 아니다. 계약금 7억 원을 받고 프로에 발을 디뎠던 유망주 투수 유창식은 승부조작에 가담해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3년간 KBO 리그 유기 실격 상태로 지내던 와중에 전 여자친구를 성폭행했다. 2017년 1월 자신과 과거 교제했던 여성이 원하지 않는데도 강제로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기소됐고, 결국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됐다.
유창식은 재판에서 “합의하에 벌어진 일이었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충격을 받고 엄벌을 요구하는 피해자를 만나 “내 입장을 생각해 달라. 이러면 앞으로 야구를 할 수 없다”고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KIA 투수 남재현은 상무야구단에서 군복무를 하던 2017년 10월, 전 여자친구를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 유예 처분을 받아 30경기 출전 정지 처분을 당하기도 했다.
#미성년자 성폭행까지…팬들 큰 충격
한화에서 퇴출된 포수 엄태용은 그 가운데서도 특히 죄질이 나쁜 성범죄로 물의를 빚었다. 최초로 문제가 됐던 부분은 데이트 폭력이었다. 2017년 3월 교제 중이던 여성과 말다툼을 하다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며 막대기로 상해를 입혀 고소를 당했고, 엄태용도 “이 여성 본인과 이 여성의 지인인 남성이 폭행 사실을 구단에 알리겠다며 금품을 요구하는 협박을 해왔다”고 맞고소를 해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후 전 여자친구와 서로 민·형사상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합의를 했지만, 상해죄는 합의와 별개로 검찰 기소가 가능한 사안이라 재판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화는 양쪽 주장이 크게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 모든 법적 절차가 끝나고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최종 징계를 미루고 신중한 태도로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엄태용은 포수로서 잠재력을 인정받았던 데다 2년간 괴롭히던 손가락 혈행 장애를 겨우 극복하고 재기를 노리고 있는 유망주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KBO가 참가활동정지 처분을 내린 지난해 6월 22일 한화도 이례적으로 단호하게 “엄태용의 임의 탈퇴를 KBO에 요청했다”고 발표했다. 임의탈퇴 신분이 되면 구단 동의 없이는 최소 1년 이상 한화 소속 선수로 뛸 수 없고, 다른 프로 팀 이적도 불가능하다.
한화가 설명한 이유는 이랬다. “전 여자친구 상해 사건 이외에 엄태용이 또 다른 일에 연루돼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그런데도 엄태용이 구단에 보고를 하지 않고 함구해 현재로서는 더 이상 선수와 함께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선수 본인도 선수생활을 이어갈 뜻이 없음을 밝혀왔다.” 또 이렇게 덧붙였다. “한 사건이 일단락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또 다른 일에 연루된 것은 프로야구 선수로서 준법 의식과 자기관리 의욕이 결여돼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엄태용이 연루된 ‘또 다른 일’이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선수는 굳게 입을 다물었고, 경찰은 구단의 문의에 “구체적 혐의 사실을 아직 확인할 수 없다”는 답변만 내놨다. 그러자 일부 한화팬들은 ‘서로 합의까지 이뤄진 상황에서 임의탈퇴는 너무 섣부른 조치 아니냐’는 비난의 목소리를 냈다. 한화가 지나치게 냉정하게 칼을 휘둘렀다는 얘기였다. “단순 상해죄로 퇴출 처분까지 당하는 것은 너무 심하다”는 얘기도 나왔다.
한 달여가 흐른 그해 7월 25일, 한화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는 완전히 잦아들었다. 엄태용이 벌인 ‘또 다른 일’의 비밀이 만천하에 공개되면서다. 충남지방경찰청은 엄태용을 아동 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알게 된 미성년자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지적장애 3급인 10대 소녀에게 수면제 성분이 든 약을 감기약이라고 속이고 먹인 후 성폭행했다는 정황까지 드러나자 엄태용을 옹호하던 팬들은 더 큰 충격에 휩싸였다.
동시에 한화도 다시 KBO에 엄태용의 임의탈퇴 공시 말소를 요청했다. 임의탈퇴는 한화가 엄태용의 보유권을 갖고 있는 상태로 선수 활동을 할 수 없는 제도지만, 임의탈퇴 공시 말소는 완전한 ‘퇴단’을 의미한다. 엄태용은 이미 전 여자친구 상해죄로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다른 범죄 내용이 밝혀지자 곧바로 한화도 결단을 내렸다. KBO 리그에서 보기 드문 희대의 성범죄였다.
엄태용은 “피해자에게 준 약을 나 역시 감기약이라고 생각했고, 피해자가 먼저 성관계를 요구하는 것 같아 성관계를 했을 뿐”이라며 지속적으로 성폭행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결국 1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엄태용은 “형량이 너무 무겁다”며 지체 없이 항소했지만, 대전고법 제1형사부는 지난해 6월 열린 항소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오히려 형량을 1년 늘린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의도적으로 졸피뎀 성분이 들어간 약물을 복용케 했다는 원심 판단을 수긍할 수 있다. 성적 해소를 위해 사리 분별 능력이 부족한 청소년에게 계획적으로 수면제를 먹이고 항거불능인 상태에서 성폭행하는 등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판시했다. 엄태용은 또 다시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장을 제출한 상태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