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곳이 정치인들과 로비스트들이 모이는 아지트 같은 곳이 됐기 때문이다. 특히 친트럼프 성향의 공화당 의원들을 비롯해 무기, 에너지, 석탄, 전자담배 등 각계 산업의 관계자들이 종종 모여서 거래를 하고 있으며, 대부분은 이런 식으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아첨을 해서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 호텔에 대한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최근 독일 시사주간 ‘슈테른’은 이 호텔을 주기적으로 드나드는 ‘단골손님’들을 면밀히 살펴본 기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이곳에서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보도했다.
워싱턴 정가에서 ‘제2의 국회의사당’으로 불리는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사진=AP/연합뉴스
육중한 호텔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거대한 로비가 눈에 들어온다. 9층 높이의 뻥 뚫린 개방감을 자랑하는 로비는 한낮에는 유리 천장을 통해 하루 종일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저녁이 되면 거대한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대리석 바닥을 비춘다.
이른 저녁 시간인데도 로비 안은 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차 있었다. 푸른색 옷을 입은 한 여성이 로비 한편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들어서자 모든 사람들이 그를 즉시 알아봤다. 여기저기서 스마트폰으로 함께 사진을 찍자고 요청을 해왔으며, 한 여성은 그를 향해 “당신은 내 영웅이에요!”라고 외치기도 했다.
그의 이름은 사라 샌더스, 전 백악관 대변인이다. 현재는 멜라니아 트럼프 대통령 보좌관을 맡고 있는 샌더스는 ‘트럼프 호텔’을 자주 찾는 단골 고객 가운데 한 명이다. 이런 까닭인지 종종 샌더스는 “이 호텔은 나한테 두 번째 집과 같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곤 한다. 열렬한 트럼프 지지자이자 우파 성향의 방송국인 ‘폭스뉴스’의 앵커인 제닌 피로도 마찬가지다. 이 호텔에서는 한손에 샴페인 잔을 들고 이 자리에서 저 자리로 돌아다니는 피로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리고 로비의 다른 쪽 끝에 있는 ‘벤자민 바’에는 5층 높이의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아올린 ‘모엣 샹동’ 병들 뒤로 한 무리의 남자들이 모여 있다. 이곳의 특별 메뉴는 크리스털 숟가락에 나오는 100달러(약 12만 원)짜리 헝가리산 와인이다. 남자들 가운데 한 명이 주문한 해산물 플레이트인 ‘트럼프 타워’의 가격은 120달러(약 14만 원)다.
또 다른 남자가 갑자기 종업원에게 TV 채널을 돌려달라고 요청했다. 마침 CNN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안이 하원에서 가결되었다는 속보가 보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옆에 앉아있던 아칸소주 출신의 남자는 자신이 안타깝게도 빌 클린턴과 같은 아칸소주 출신이라고 소개하면서 왜 힐러리 클린턴이 남편 때문에 그렇게 비열해졌는지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 앉아있던 남자들은 모두 신이 난 듯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이들이 이 호텔을 찾은 이유는 호텔 레스토랑의 스테이크나 랍스터가 특별히 맛있어서가 아니다. 하룻밤에 약 1000달러(약 116만 원)인 호텔 객실 투숙을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또한 1회에 225달러(약 26만 원) 하는 ‘스파 바이 이방카 트럼프’에 예약을 했기 때문도 아니다.
그보다 이들이 이 호텔을 찾은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바로 이곳이 트럼프 대통령 소유의 호텔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조금이라도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워지길 바라는 사람들이거나 혹은 어떻게든 연줄이 닿길 바라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공통된 목적은 하나, 바로 호텔 영수증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호의를 사는 것이다. 때문에 어느덧 워싱턴에서 대통령을 상징하는 호텔이 된 이곳에서 로비스트들은 대범하게 공개적으로 만나 거래를 하곤 한다.
사실 워싱턴에서 이런 호텔, 다시 말해 대통령 소유의 호텔은 과거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전임 대통령들은 모두 개인 사업과 대통령 임무를 분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가령 지미 카터는 당선 후 가족 소유였던 땅콩 농장을 백지신탁으로 옮겼고, 불미스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독립적인 관리인에게 경영을 맡겼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는 대통령 취임 후 그룹의 경영권을 두 아들에게 넘겨주긴 했지만, 소유권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주기적으로 아들들로부터 경영보고서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 이 점을 문제 삼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트럼프 대통령이 얼마나 정치와 개인 사업을 분리하고 있는가를 의심하고 있다. 여행전문기자였던 자흐 에버슨 역시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기 13일 전인 2016년 10월 26일 문을 연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에 대해 에버슨은 “어딘가 냄새가 나는 곳”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기 불과 13일 전에 문을 열었다. 2016년 10월 26일 호텔 개장식에서 트럼프 가족이 리본 커팅을 하는 모습. 사진=AP/연합뉴스
에버슨은 당시 호텔 오픈행사에 초청됐던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콘데 나스트 트래블러’ 여행잡지의 기자 자격으로 이틀 밤을 호텔에서 묵은 그가 당시 제공받은 숙박비는 2600달러(약 300만 원)였다. “나는 15년 동안 호텔 평가를 해왔다”고 말하는 에버슨은 당시만 해도 이 럭셔리 호텔이 사실은 2년을 못 가리라고 확신했다. 가격이 너무 높은 데다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결코 흑자를 보지 못하리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예상이었다. 심지어 ‘타운하우스 스위트 룸’에서 1박을 하는 VIP 패키지의 가격은 무려 50만 달러(약 5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됐기 때문이었다. 에버슨은 “처음 2개월 동안은 110만 달러(약 13억 원)의 적자를 봤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후부터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취임 후 한 달이 지나자 호텔 로비 바의 음료 가격은 두 배가 올랐다”고 설명했다.
터무니없는 가격에도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가 궁금했던 에버슨은 그때부터 호텔 로비에 몇 시간씩 앉아 드나드는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입구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차를 마시며 사람들을 지켜본 그는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호텔을 찾은 대부분의 사람이 로비에서 찍은 셀카 사진을 SNS에 올려 자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 에버슨은 이 호텔이 트럼프 대통령이 업무를 시작한 첫날부터 이미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고 말하면서 모두들 워싱턴의 새로운 권력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서 이 호텔을 방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외국 정부의 관료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에버슨은 특히 외국 관료들이 취임 초기부터 호텔에서 많은 돈을 쓰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가령 사우디아라비아의 로비스트들은 이곳에 묵는 6개월 동안 숙박비, 식사비, 주차비 등으로 27만 달러(약 3억 원)를 쓰고 갔으며, 바레인의 외교관 직원들은 자국의 국가기념일 행사를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호텔 내 ‘프레지덴셜 연회장’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쿠웨이트 대사관은 자국의 연중행사를 1년 전에 예약해 두었던 ‘포시즌스 호텔’을 취소하고 급작스레 트럼프 호텔로 옮겨 열기도 했다.
나이지리아의 부통령 역시 지난해 1월 이곳에서 묵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보다 며칠 앞서 전임 부통령과 경쟁 후보 역시 이곳에서 묵었다는 점이었다. 이에 대해 에버슨은 “하필이면 그때는 나이지리아에서 선거운동이 한창일 때였다”고 말하면서 “나이지리아에서는 정치인이 트럼프 대통령과 얼마나 가까운지에 따라 유권자들에게 더 강한 인상을 남긴다”라고 덧붙였다.
이는 나이지리아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3월에는 루마니아의 총리도 묵는가 하면, 말레이시아의 총리와 필리핀의 대사관 직원들도 이 호텔에 투숙했다. 과연 이 때문일까. 이와 관련해 에버슨은 “지난해 외국 정부와의 거래를 통한 트럼프 기업의 총수익은 26% 증가했다”라고 지적했다.
호텔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싶어하는 경우는 비단 정치인뿐만이 아니다. 기업가들이나 로비스트들 역시 마찬가지다. ‘첫째주 화요일’ 단체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 단체의 회원은 트럼프 대통령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무기, 석탄, 전자담배 업계의 로비스트들로 이뤄져 있으며, 매달 첫번째 화요일 호텔 로비에서 정기 모임을 갖고 있다. 이 밖에도 기후변화를 부인하는 사람들, 우파 성향 매체의 기자들, 그리고 러시아의 대외 선전매체인 RT의 미국지사인 ‘RT 아메리카’ 소속의 사람들도 호텔의 단골 고객들이다.
미국 3위 이동통신업체인 ‘T모바일’의 전 최고경영자인 존 레저 역시 한때 이 호텔의 단골이었다. 레저는 기자들 앞에서 트럼프 호텔이 마치 자기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진다고 열광적으로 떠들어댔으며, 호텔에서 찍은 사진들을 여러 차례 SNS에 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따로 있었다. 당시 레저가 호텔을 집중적으로 드나들었던 시기가 우연히도 ‘T모바일’이 업계 4위인 ‘스프린트’를 인수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던 때와 겹친다는 점이었다. 당시 ‘T모바일’은 독점규제에 대한 당국의 반대 때문에 미 정부의 승인이 절실히 필요했다. 결국 ‘T모바일’은 ‘스프린트’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고, 10개월 동안 레저가 이 호텔에서 쓴 금액은 무려 19만 5000달러(약 2억 원)에 달했다.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의 가장 충실한 단골 고객은 공화당 의원들이다. 2018년 2월 이 호텔에서 열린 공화당 전국위원회 행사에서 연설하는 트럼프 대통령. EPA/연합뉴스
무엇보다 호텔의 가장 충실한 단골 고객은 단연 공화당 의원들이다. ‘슈테른’은 공화당 의원들이 호텔에서 얼마나 자주 목격되는지 마치 의사당을 호텔 로비로 옮겨 놓은 듯한 착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가령 케빈 맥카시 의원이 대표적인 단골이다. 그의 SNS에는 로비, 객실, 연회장 등 호텔 구석구석에서 찍은 사진들이 주기적으로 올라오고 있으며, 이 가운데는 우크라이나의 억만장자와 함께 촬영한 사진도 있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지금까지 맥카시와 그의 선거운동본부가 이 호텔에서 쓴 금액은 24만 5000달러(약 2억 8000만 원)에 달하고 있다. 그리고 우연일지 모르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얼마 전 맥카시 의원의 재선을 지지한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자신의 선거운동본부와 함께 호텔에서 25만 달러(약 2억 9000만 원)를 아낌없이 썼으며, 이 밖에 공화당의 선거운동캠프 역시 지금까지 50만 달러(약 6억 원)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책임과 윤리를 위한 시민’의 도널드 셰어만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직도 호텔을 경영하고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분명히 말하건대 각종 단체들과 사람들이 이 호텔을 찾는 이유는 대통령에게 아첨하기 위해서다”라고 잘라 말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호텔 경영을 통해 불법적으로 이득을 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셰어만은 “트럼프 대통령은 헌법을 위반하고 외국 정부로부터 돈을 받고 있다는 의혹을 덮으려 하고 있다. 정확한 액수는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2017년 한 해에만 트럼프 대통령은 호텔 사업으로 4100만 달러(약 470억 원)를 벌어들였다”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이 호텔이야말로 어떻게 부패가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정석이라고 쏘아붙였다.
이런 비난을 의식한 듯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인 도널드 주니어는 “우리가 호텔을 통해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것에 대해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우리는 호텔을 매각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호텔을 선뜻 인수하려는 사람이 과연 나타날까 의심하고 있다.
에버슨은 ‘슈테른’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비즈니스와 정치를 너무 뒤섞어 놓았다. 그래서 그가 국가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지, 아니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밝혀내기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어쩌면 트럼프 정부는 로비스트들이 굳이 호텔을 찾지 않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다른 방법으로라도 그들에게 이익을 주었을지 모른다.
중요한 점은 그들이 이렇게 한 행동이 자신들의 이익에 도움이 됐다고 믿고 있다는 점,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과 같은 명확한 의사를 그들에게 전달했다는 점이다. “미국은 비즈니스에 개방적인 나라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돈으로 사는 것도 가능하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