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연맹 소속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이 한국도로공사의 직접고용을 촉구하며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갑질 이슈가 한창이던 2013년 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출범했다. 을지로위원회는 ‘을(乙)을 지키고 경제민주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에서 나온 이름이다. 활발한 활동으로 2017년 을지로위원회는 기업의 경계대상 1위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을지로위원회는 더 이상 화두에 오르지 않았다. 을지로위원회를 정부 직속 기구로 편입하느냐를 두고 공방만 이어지고 별다른 활동은 하지 않았다. 그러던 을지로위원회가 돌연 톨게이트 수납원 노조 사태에 개입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톨게이트 노조 사태는 정부와 노동계 갈등의 골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대법원은 2019년 8월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368명이 도로공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도로공사가 수납원에게 직접적인 지휘명령을 내려 파견관계가 인정되므로 직접 고용을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도로공사는 수납원을 직접 고용하지 않았다. 이강래 전 도로공사 사장은 소송을 내 승소한 사람만 직접 고용하고, 2015년 이후 입사자는 직접 고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노동친화 정부를 표방한 현 정부는 대법원 판결조차 이행하지 않는 공공기관에 대해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민주노총이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노동자 직접 고용을 위해 총력투쟁에 돌입하자 을지로위원회가 나섰다. 권한도 명분도 없는 을지로위원회가 중재자를 자처했지만 그 한계는 분명했다.
2019년 10월 을지로위원회는 한국노총 소속 노조와 현안 합의에 성공했다. 정규직 전환에 관한 소송을 1심이라도 판결을 받은 자에 대해서만 판결에 따라 직접 고용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도로공사 수납원에 대해 이미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이 나와, 앞으로 이뤄질 노조원 개인의 소송 결과도 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유추됐다. 그런데도 을지로위원회가 조건부 합의안을 내걸어 불법파견 사태를 진압하려 한 게 비난을 받았다. 박홍근·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민주노총의 전원 직접고용 요구가 과도하다”라며 한국노총과만 합의한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이는 그동안의 을지로위원회 행보와 배치된다. 2015년 이후 을지로위원회는 톨게이트 수납원의 고용 실태를 고발해왔다. 도로공사의 갑질과 불법파견이 만들어낸 용역노동자의 근로 실태를 알리는 기자회견도 수차례 열었다. 그랬던 을지로위원회가 민주노총을 배제하고 한국노총과만 합의를 이끌어내며 노동자 간 분열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도로공사는 정규직 노조, 한국노총 수납원 노조, 민주노총 수납원 노조 세 갈래로 나뉘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사이의 의견 차이는 더 극명해졌다. 도로공사는 민주노총 소속 수납원에 대해 1억 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수납원들은 이 전 사장을 파견근로자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합의에 앞서 고소고발 취하가 우선요소로 꼽혔지만 갈등 해소는 요원하다.
을지로위원회 중재로 현안에 합의한 한국노총 소속 수납원들도 최근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것. 현재 한국노총 소속 수납원들은 제2의 투쟁 준비를 구체화하고 있다. 한국노총 소속 노조는 “수납원 중 840명이 도로공사에 직접 고용되고, 5000여 명은 자회사에 고용됐는데 부당노동행위가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근로시간이 과도하고 임금 및 근로환경이 약속과 다른 게 문제다. 한국노총에 따르면 도로공사는 임금상승에 합의하고도 이행하지 않고, 인원충원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을지로위원회는 방관자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다 지금은 을지로위가 개입할 여력도 해결 능력도 없어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톨게이트 노조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총선 출마에 나선 이강래 전 도로공사 사장에 비판이 나온다. 사진=민주노총 홈페이지 캡처
재계는 여당과 정부가 정권 초기 이후로 쭉 노동자 친화 노선을 이탈했다고 보고 있다. 노동계와 정부 갈등은 지속적으로 표면화됐다. 1월 2일 청와대에서 이뤄진 신년회에도 민주노총은 불참했다. 노동계는 정부뿐만 아니라 여당도 제 역할을 못한다고 지적한다. 을을 대변해야 할 을지로위원회조차 이 정부 들어 활동이 뜸했다.
노동계는 정부와 여당에 대해 총선을 통해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 조합원은 2019년 12월 26일 더불어민주당 전북도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강래 전 도로공사 사장은 총선 출마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