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애몽, 어처구니없는 표절작
식약애몽의 사례는 실로 총체적 난국이라는 표현이 절로 튀어나오는 수준이다. “나는 식약애몽! 어디든 갈 수 있는 문으로 이웃나라에서는 새해에 어떤 음식을 먹는지 알아볼 거다몽!”이라 외치고 있는 캐릭터를 보고 있자면 이름과 외모, 대사까지 도라에몽을 연상하지 않길 바라는 게 오히려 이상한데, 그 머리에 심지어 미키마우스 귀까지 달고 있다.
쥐 로봇이 귀를 먹는 바람에 슬퍼서 울다가 몸 색깔까지 파랗게 변한 고양이 로봇 도라에몽에다 생쥐 캐릭터인 미키마우스의 귀를 붙여놓다니 일단 그 조합부터도 작품의 팬에게 실례기도 하지만, 그 다음에 드는 우려는 숫제 공포에 가까웠다. 미국과 일본 양국을 대표하는 대형 프랜차이즈 캐릭터의 저작권을 동시에 침해하는 이 비범함이라니! 디즈니는 저작권에 관해서라면 “무인도에 표류했을 때에 모래사장에 미키마우스를 그리면 디즈니 변호사가 바로 찾으러 올 것”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이 있을 정도인 회사 아니던가.
상업용 콘텐츠가 아닌 이상 적극적 고의는 아니었으리라. 적당히 널리 인기 있는 캐릭터의 요소를 조합하면, 인터넷 상에서 자기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원전 이미지의 맥락을 거세하고 자기 맘대로 동원해 노는 이미지 문화인 ‘짤(짤방)’이나 ‘밈(Meme)’ 정도로 인식될 거라 생각했을 수 있다. 하지만 국민적으로 일본 불매를 논하고 있는 마당에 명색이 정부 부처라는 곳에서 홍보물에 일본 캐릭터를 가져다 썼다는 점, 그리고 정부 부처의 공식 채널에 올리면서 패러디와 표절의 차이에 관한 이해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은 마냥 웃어넘기기엔 무리가 있다.
고양이 로봇 도라에몽에다 생쥐 캐릭터 미키마우스의 귀를 붙여놓은 ‘식약애몽’. 일본과 미국의 대표 캐릭터 저작권을 동시에 침해했다.
패러디(Parody)는 원전이 되는 대상을 익살과 해학을 더해 변형하거나 개작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단순히 스타일을 따라하는 수준을 넘어 자기가 보여주고자 하는 바와 맥락 속에 익히 잘 알려진 원전의 요소를 활용해 넣을 때 그 창작은 패러디로서 성립한다. 물론 원작의 테두리에 종속된 2차 창작들이 아마추어(동인) 사이에서 널리 통용되긴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아마추어들의 비상업적인 활동 안에서 용인되는 것이고 상업작에서 남의 창작 요소를 도입하면서 패러디로서 용인받기 위해서는 굳건한 ‘자기 것’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오타쿠 집단으로 시작해 본인들이 보아 온 수많은 시각문화의 요소를 곳곳에 집어넣었던 일본 가이낙스의 ‘톱을 노려라! 건버스터’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신세기 에반게리온’ 같은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잘 쓴 패러디란 무엇인지를 너무나 잘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 만화에서도 ‘파이팅 브라더’의 고병규, ‘역전 씨네마’의 김규삼 등 패러디를 주 무기로 쓴 일군의 작가들이 있어 왔다. 더 본격적인 사례를 들자면 단연 역사와 시사 문제를 다루면서 온갖 시각 문화와 인터넷 문화를 절묘하게 뒤섞어내고 있는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와 ‘본격 한중일 세계사’의 굽시니스트 작가를 들 수 있다. 최근엔 해부학이라는 소재를 만화로 해설하는 압듈라 작가의 ‘까면서 보는 해부학 만화’가 1화부터 그야말로 대폭주하는 패러디의 향연으로 재미를 주고 있어 꼭 한 번 체크해 볼 만하다.
“위어드 알” 얀 코빅(“Weird Al” Yankovic) 같은 패러디 음악의 귀재나 아예 패러디를 주축으로 삼은 영화들을 뜻하는 스풉 무비(Spoof Movie)라는 장르명이 별도로 서 있는 영화계의 사례까지 보노라면 패러디는 그 자체로 원전의 재해석이자 별도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풍부함을 더하기 위한 장치로서 존중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패러디는 대체로 너무나 잘 알려진 유명한 대상을 자기가 보여주고자 하는 장면 속에 적절하게 재해석해 집어넣으며 약간의 뻔뻔함을 양념으로 넣음으로써 만든 사람과 보는 사람이 ‘알면서 속아주는’ 일종의 약속을 만들어내는 데 묘미가 있다. 그래서 뻔히 원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 보이는데도 재해석한 대목도 속아줄 만한 여지를 전혀 보이지 않는 경우 단번에 표절 또는 도용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이번 식약처가 내놓은 식약애몽이 바로 이 경우다. 식약애몽은 구성에서 어떠한 독창성도 없고 원전의 인용도 아니고 유명 캐릭터 둘을 안일하게 섞어 내민 점에서 공정이용의 범위를 벗어날 뿐더러, 정부부처의 상징(마크 등)을 내세운 홍보물 성격상 오롯이 존경심을 표하는 마음으로 내용을 인용하는 오마주(Hommage)로 해석 받을 수도 없다. 식약처는 지적을 받고 하루 만인 8일 부랴부랴 홍보물들을 내렸지만 두고두고 부적절한 사례로 기록될 법하다.
압듈라 작가의 ‘까면서 보는 해부학 만화’는 그야말로 대폭주하는 패러디의 향연을 보여준다.
한데 식약애몽만을 문제 삼기엔 근래 비슷한 사례가 반복해 노출되고 있는 점이 신경 쓰인다. 지난해 11월 인사혁신처 유튜브가 EBS의 펭수를 따라한 ‘펑수’를 내놓으며 “제2의 펭수를 꿈꾼다”라고 하더니, 고양시청 사회 관계망서비스에는 “성공한 한국의 크리에이터를 꿈꾸며 고양에서 온 퇴물 연습생”이라는 ‘괭수’가 등장했다. 한술 더 떠 KBS의 역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은 ‘역수’라는 펭귄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패러디가 일종의 유명세의 척도라고는 하지만 문제는 이들 사례를 펭수의 패러디라고 봐 주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세 사례 모두 조형 면에서 조악하기 이를 데 없는 급조품인 데다 펭수의 인기에 업혀 가려는 의지가 너무나 역력한 작명과 소품, 그리고 그 자체의 개성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설정까지 어딜 봐서 패러디로 쳐 줘야 할지 알 수가 없을 정도다.
펑수가 워낙 조악해서 욕을 더 먹은 모양새지만 사실 괭수 쪽이 조금 더 안타깝다. 지역 캐릭터로서 몇 안 되는 성공사례로 꼽히는 고양고양이의 인형탈에 적당히 펭수 비슷한 눈과 부리를 평면으로 붙여놓곤 ‘괭수’라는 다른 캐릭터를 내놓은 양 굴었기 때문이다. 모처럼 잘 뽑혀 나온 지역 캐릭터를 새삼 다시 알릴 방법으로 패러디를 쓸 수도 있었을 터지만, 고양고양이의 정체성을 놓으면 안 됐을 터다. 결과적으로 다른 캐릭터에 완전히 묻어가는 악수를 두었다.
그나마 EBS가 2019년 연말 자이언트 펭TV 78편 ‘파자마 어워드’ 편에서 펑수와 괭수를 대놓고 초대하는 아량(?)을 베풂으로써 표절 논란 자체는 잦아들었지만, 본질적으로는 그 어디보다도 공적인 판단을 해야 할 곳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안일한 발상으로 열화복제품들을 쏟아냈다는 점만큼은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베낀 대상이 다르지만 식약애몽도 결국은 마찬가지 맥락이다. 패러디와 표절이 무엇인지를 알았다면 이 정도 결과물은 안 내놓았을 터. 이쯤 망신살을 뻗쳤으면 대국적인 견지에서 분위기를 여기서 한 번은 끊고 가면 좋겠다.
만화칼럼니스트 iam@seochanhw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