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9일 저녁 국회에서는 본회의가 열렸다. 오후 2시 개회 예정이었지만 4시, 6시로 거듭 미뤄지다 결국 7시를 넘겨 본회의가 시작됐다. 그리고 이날 민주당은 검찰청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포함한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안을 역시 13일에 의결하는 것으로 방침을 세웠다.
국회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 본회의 의결이 예정된 1월 13일 오전 가수 승리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했다. 사진=고성준 기자
결전의 날인 1월 13일 오전, 먼저 서울중앙법원에서 승리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시작됐다. 경찰 관계자들 사이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승리가 받고 있는 혐의는 경찰이 수사를 마친 사안으로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그럼에도 검찰이 7개월여의 수사를 거쳐 다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얘기는 경찰이 찾아내지 못한 결정적인 뭔가를 검찰이 확보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법원에서 발부한다면 경찰은 다소 난처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저녁 8시 무렵 먼저 국회에서 소식이 들려왔다. 국회 본회의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통과됐다. 그리고 밤 9시 45분 무렵 송경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승리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기본적으로 ‘다툼의 여지가 있으며 소명 정도와 피의자의 관여 범위, 수사 경과, 그동안 수집된 증거자료 등을 놓고 볼 때 구속의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게 기각 사유다. 이는 2019년 6월 신종열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경찰이 청구한 승리의 구속 영장을 기각하며 밝힌 사유와 거의 동일하다.
1월 13일 저녁 8시 무렵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인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한국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통과됐다. 사진=연합뉴스
국회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진 13일 상징적인 승리의 영장실질심사가 이뤄졌다. 경찰이 구속에 실패한 승리의 구속영장이 보강수사를 거친 검찰을 통해 발부된다면 이는 상당한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그만큼 검찰은 발부를 기대했고 경찰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2019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버닝썬 게이트는 승리와 양현석 전 YG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에 대한 수사 결과에서 막혀 있는 상황이다. 검찰이 승리의 구속영장을 발부 받았다면 상당한 폭발력을 바탕으로 힘을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검찰 입장에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고위직 인사로 주춤할 위기에 놓인 청와대 관련 수사에 탄력을 얻을 여지도 있었다. 승리를 중심으로 한 버닝썬 게이트는 ‘경찰총장’이라 불렸던 윤규근 총경으로 이어지고 윤 총경은 다시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구속영장이 기각된 13일 법무부는 검찰 직제개편 추진안을 발표했다. 검찰 직접 수사부서 13개 폐지가 핵심이다. 고위직 인사에 이어 직제개편까지 이어지며 검찰이 현재 진행 중인 수사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1월 13일 법무부는 검찰 직접 수사부서 13개 폐지가 핵심인 검찰 직제개편 추진안을 발표했다. 취임식 당시의 추미애 법무부 장관. 사진=고성준 기자
검경 수사권 조정을 통해 어떤 부분에 변화가 생기게 될까. 승리와 버닝썬 게이트를 사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은 독자적인 수사권과 수사 종결권을 갖는다. 경찰 1차 수사에서 무혐의로 결론이 나면 사건을 검찰에 보내지 않고 종결한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무혐의를 입증해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이 송치됐음에도 검찰에서 또 다시 조사를 받아야 하는 불편이 사라지게 된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특히 승리가 관여된 버닝썬 게이트에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결정적 계기 가운데 하나는 경찰관 유착 비리였다. 버닝썬 게이트와 유사한 사건에서 유착된 경찰이 수사를 종결해버릴 수도 있다. 이런 우려에 대한 대비책으로 경찰이 불기소 의견으로 수사를 종결한 경우 검사에게 불송치 결정 이유가 담긴 서류와 증거물을 검사에게 보내야 한다. 검찰은 이를 검토한 뒤 90일 이내에 돌려줘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검찰이 재수사를 요구하면 경찰은 재수사에 임해야 한다.
검찰의 경찰 수사 지휘권이 사라지고 검사와 경찰은 수사, 공소제기 및 공소유지에 관하여 서로 협력하여야 한다. 다시 말해 검찰과 경찰이 수직적 상하관계에서 수평적 협력관계로 재정립됐다.
그동안 재판 과정에서 경찰의 피의자 신문조서보다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가 증거능력을 높게 인정받았다. 경찰 신문조서는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인정해야만 증거로 사용됐지만 검사가 기재한 피의자 신문조서는 공판에서 피고인의 진술에 의해 증거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제 검찰 신문조서도 경찰 신문조서처럼 재판에서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인정하지 않으면 증거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대신 법정에서 증거를 두고 일일이 다투게 될 것으로 보여 앞으로는 재판이 더 복잡하고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승리 역시 불구속 기소될 경우 재판에서 검찰의 피의자 신문조서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증거로 활용되지 못한다. 대신 공판마다 증거를 일일이 다투게 되면 그만큼 증인 출석도 많아지면서 재판이 상당히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검찰의 수사 범위도 제한된다.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 범죄 등 주요 범죄’, ‘대형참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 ‘경찰공무원의 범죄’, ‘경찰이 송치한 범죄와 관련해 검찰이 추가로 인지한 범죄’ 등으로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위가 한정됐다.
또한 구속과 압수수색 등의 영장 청구권을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검찰이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경찰이 청구한 영장을 기각했을 경우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됐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