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자들과 함께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작 발표를 지켜보던 송강호가 ‘기생충’이 후보작으로 선정되자 환호하고 있다. 영화 ‘기생충’ 북미 배급사 네온(NEON)이 공식 트위터에 올린 당시 영상 캡처.
2019년까지만 해도 한국 영화계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정식 후보작을 하나라도 배출하는 게 오랜 숙원이었다. 현실적으로 외국어영화상이라 불리던 국제영화상 후보작만 나오더라도 엄청난 화제가 됐을 것이다. 그런데 ‘기생충’은 국제영화상 부문은 물론이고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등 주요 부문에 후보작으로 이름을 올렸다. 미술상과 편집상 부문에서도 후보로 선정되며 한국 영화가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음을 입증했다.
이젠 후보작 선정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 2월 9일(현지시간) LA 돌비극장(옛 코닥극장)에서 열리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당당히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올리길 기대하는 목소리가 많다. 그렇지만 ‘확률’적으로는 매우 힘겨운 게 현실이다.
91회까지 아카데미 시상식이 진행되는 동안 비영어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 지금까지의 통계만 놓고 보면 비영어 영화인 ‘기생충’이 작품상을 받을 확률은 0%다. 그렇지만 ‘기생충’은 보통의 비영어 영화가 아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다. 그럴지라도 수상 확률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지 않다. 아카데미가 세계 3대 국제영화제 수상작에 그리 호의적이기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껏 아카데미에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작품상을 받은 경우는 1955년에 개봉한 델버트 맨 감독의 미국 로맨스 영화 ‘마티’가 유일하다. 91번의 아카데미에서 단 1번, 확률로는 1%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 감독상은 조금 확률이 있다. 대만의 이안 감독이 두 차례나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물론 확률적으로는 2% 남짓에 불과하지만 아시아인 감독상 수상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안 감독이 두 차례 감독상을 수상한 영화는 대만 영화가 아닌 그가 할리우드로 진출해서 연출한 ‘브로크백 마운틴’과 ‘라이프 오브 파이’다. 만약 이안 감독이 ‘와호장룡’을 통해 감독상을 받았다면 상당히 의미 있는 족적이 됐겠지만 그렇진 못했다. 그렇지만 ‘와호장룡’은 2001년 외국어영화상과 미술상, 음악상, 촬영상 등을 받아 비영어 영화 역대 최다 수상작의 영예를 안고 있다.
1984년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스웨덴 영화 ‘화니와 알렉산더’도 외국어영화상, 촬영상, 미술상, 의상상, 4개 부분에서 수상작을 내 ‘와호장룡’과 함께 비영어 영화 최다 수상작이다. 그렇지만 이 두 편의 영화는 모두 외국어영화상을 중심으로 촬영, 미술, 의상, 음악 등 기술 영역을 주로 수상했다.
따라서 ‘기생충’ 역시 확률만 놓고 본다면 그나마 국제영화상, 미술상, 편집상 등을 수상할 가능성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보다는 조금 더 높다. 여전히 비영어 영화에겐 수상 장벽이 높은 아카데미지만 국제영화상은 아예 비영어 영화를 대상으로 한 부문이다. 그리고 미술상과 편집상은 언어의 영역이 아닌 기술 영역이라 그나마 수상 장벽이 그리 높지 않다.
봉준호 감독이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베벌리힐스의 베벌리힐튼호텔에서 열린 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그는 “자막의 장벽, 그 1인치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수상 소감을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가장 수상 확률이 낮은 부문은 각본상이다. 비영어 영화에는 작품상만큼이나 수상 장벽이 높은데 1946년 리처드 쉬웨이저 감독의 스위스 영화 ‘마리 루이스’가 비영어 영화 최초로 각본상을 받은 바 있지만 아시아 영화는 아직 넘보지 못한 영역이다. 영화계에서는 ‘기생충’의 가장 큰 장점으로 각본을 손꼽고 있지만 비영어 영화에 아카데미 각본상은 수상 장벽이 너무 높다는 한계가 분명하다.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 당시 봉준호 감독은 “자막의 장벽, 그 1인치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아카데미에서도 문제는 그 1인치의 장벽이다.
영화관계자들 사이에선 ‘작품상은 어렵겠지만 감독상은 해볼 만하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봉준호 감독 역시 미국 매체 ‘벌처’와의 인터뷰에서 “오스카(아카데미상)는 국제영화제가 아닌 ‘로컬’(지역적) 영화제”라고 밝힌 바 있을 만큼 아카데미는 영어권을 중심으로 한 미국 영화제다. 그만큼 비영어 영화는 한계가 뚜렷해 작품상과 대본상은 수상이 어려워 보인다. 반면 언어 영역이 아닌 감독상과 미술상, 편집상 등은 수상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국제영화상은 이변이 없는 한 수상이 유력하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이번 92회 아카데미 시상식부터 외국어영화상이 국제영화상으로 이름이 바뀌어 ‘기생충’은 최초의 국제영화상 수상작이 되는 영예를 누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