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OTT 시장이 합종연횡으로 들썩이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2019년 3월 27일 넷플릭스(Netflix) 오리지널 시리즈 ‘페르소나(PERSONA)’ 제작보고회에 배우 겸 가수 이지은(아이유)과 가수 겸 제작자 윤종신이 참석한 모습. 사진=박정훈 기자
오는 2월부터 웨이브에서 JTBC의 콘텐츠를 찾아볼 수 없게 됐다. JTBC가 최근 웨이브에 VOD 콘텐츠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웨이브 관계자는 “CP(콘텐츠 공급자)사의 요청에 따라 JTBC 콘텐츠 중단을 요청했으나, 계약을 이어가려는 의사를 밝히고 협상을 진행 중”이라며 “JTBC의 콘텐츠는 80여 채널 중 하나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잘 알려진 콘텐츠가 다수 있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JTBC가 CJ ENM과 통합 OTT 법인을 준비하고 있어 추후 경쟁사가 될 웨이브에 콘텐츠를 공급을 중단한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통합 플랫폼은 CJ ENM이 운영 중이던 ‘티빙’을 기반으로 한다. CJ ENM 관계자에 따르면 양사는 합병법인 출범과 관련한 양해각서 체결 이후, 구체적인 계약 과정 중에 있다. CJ ENM관계자는 “자체 OTT인 ‘티빙’을 운영해온 CJ ENM은 KT의 OTT 서비스 ‘시즌’에는 프로그램을 제공 중”이라며 “JTBC의 콘텐츠 공급 중단은 웨이브와 JTBC 간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CJ ENM은 JTBC와 통합 OTT를 준비하는 동시에 글로벌 OTT ‘넷플릭스’와도 손을 맞잡았다. CJ ENM은 지분 71.3%를 보유한 자회사 스튜디오드래곤과 함께 넷플릭스와 3사 간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CJ ENM은 스튜디오드래곤 주식 중 4.99%를 넷플릭스에 매도할 수 있는 매도권 계약을 체결했고, 넷플릭스는 CJ ENM이 유통권을 보유한 스튜디오드래곤 제작 콘텐츠 중 일부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하게 됐다. 또 스튜디오드래곤과 넷플릭스는 2020년부터 3년간 공동으로 오리지널콘텐츠 제작에 나설 계획이다.
통신사들은 비 MNO(이동통신사업) 부문 경쟁력 강화의 일환으로 유료방송, IPTV에 이어 OTT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LG유플러스가 지난해 일찌감치 넷플릭스와 독점계약을 맺고 IPTV의 급성장을 이뤄낸 데 이어 SK텔레콤은 토종 연합 OTT를 선보였다.
반면 KT는 통신 3사 가운데 가장 뒤처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렇다 할 동맹군도 없다. KT는 기존 ‘올레tv 모바일’을 ‘시즌’으로 리뉴얼 론칭하며 OTT 강화에 나섰다. 기존 올레tv모바일은 사실상 IPTV 서비스인 올레tv 콘텐츠를 모바일로 볼 수 있도록 지원 하는 데에 그치면서 OTT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KT는 시즌을 통해 OTT 시장에서 존재감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시즌은 초고화질‧초저지연 콘텐츠 제공을 타 OTT와 차별점으로 내세웠다. 다만 아직까지는 올레tv 모바일 이용자가 옮겨간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KT의 경우, 자체적인 OTT 서비스보다 자회사의 움직임이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KT가 지분 49.99%를 보유한 KT스카이라이프는 최근 드라마 제작사 스튜디오앤뉴와 전환우선주(CPS) 인수 계약을 체결하고 지분 9.9%를 취득하며 콘텐츠 확보에 나섰다. 또 지난해 4월에는 OTT 통합 플랫폼 서비스 ‘토핑’을 선보이기도 했다. 토핑은 스카이라이프 고객들이 위성·안드로이드UHD(초고화질) 방송 ‘sky A’를 통해 푹, 왓챠플레이 등 OTT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통신사와 방송사의 움직임과는 별개로 국내 OTT 시장의 강자였던 왓챠플레이와 국내 시장에 진출한 글로벌 OTT 넷플릭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영화 평가‧추천서비스 왓챠에서 시작된 왓챠플레이는 합종연횡 대신 차별화를 택했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콘텐츠 추천과 수급이다. OTT 플랫폼을 통해 기록된 이용자들의 로그 데이터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것. 왓챠플레이 관계자는 “넷플릭스의 경우 수집된 로그데이터를 내부적으로 활용한다면, 우리는 개방적으로 콘텐츠 제작‧배급사도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실험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며 “왓챠는 콘텐츠 소비를 부추기기보다는 만족도에 중점을 둔다. 콘텐츠 수급에 있어서도 빅데이터를 활용해 킬러콘텐츠를 찾아내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넷플릭스는 국내 제작사와의 협업에 적극적이다. CJ ENM의 스튜디오드래곤과 파트너십 체결 계획을 밝힌 직후 JTBC와도 장기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올해부터 3년간 공동으로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키로 했다. CJ ENM과 JTBC가 통합 OTT 출범을 준비 중인 터라 사실상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CJ ENM-넷플릭스-JTBC 연합’이 탄생한 셈이다. 앞서의 CJ ENM 관계자는 “제작사는 콘텐츠를 유통할 OTT 플랫폼이 필요하고, OTT 플랫폼 또한 안정적으로 유통 가능한 콘텐츠가 필요해 사업자들이 윈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내 OTT 시장은 지상파 방송 3사와 SK텔레콤 연합 ‘웨이브’와 ‘CJ-JTBC-넷플릭스’ 연합으로 양분될 조짐이다. 콘텐츠 수급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웨이브 출범 직전 웨이브와 구두계약을 체결한 CP사들에 넷플릭스가 더 유리한 조건을 내세워 가로챘다는 이야기가 업계 일각에서 나오기도 했다. 표면적으로 넷플릭스가 막강한 자금력으로 대항마로 나선 웨이브를 기선제압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를 근본적으로 경쟁 과열의 신호탄으로 해석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 OTT 업계 관계자는 “웨이브가 출범할 때에는 정부 및 담당부처 관계자가 대거 참석하는 등 업계의 기대가 컸다. 웨이브가 투자를 통해 콘텐츠를 자체 제작하고, 이를 해외에 수출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웨이브의 행보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업계에서는 합종연횡으로 규모가 대형화하면서 가격 경쟁을 벌이는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웨이브와 넷플릭스가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둔다면 국내 시장에서 이처럼 비효율적인 경쟁을 벌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