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성근 씨는 믿음직한 맏아들이었던 고 이중경 군에게 따뜻한 표현을 못해준 게 한이다. 이 씨는 매시간 밥을 새로 지어 올리며 아들의 영혼을 달래주고 있다. 사진=박현광 기자
1월 5일 밤 친구들과 맥주 한잔하겠다고 집을 나선 이중경 군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다음날 새벽 고속도로에 몸을 던졌다. 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경부고속도로 구미 분기점 부근이었다. 올해 스무 살이 된 이 군이었다. 경찰은 당시엔 처지를 비관한 극단적 선택으로 파악했다. 이성근 씨도 그렇게 생각했다. 아들에게 가난을 물려준 자신을 탓했다.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지 못하고 무심했던 자신을 원망했다.
경찰이 이 군과 함께 술을 마신 친구들을 조사하면서 반전이 일었다. 함께 있던 친구는 세 명이었다. 그 가운데 한 명이 이 군에게 심각한 폭행과 폭언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폭행과 폭언은 네 차례 장소를 옮겨가며 이어졌다. 이를 견디다 못한 이 군은 입고 있던 패딩과 휴대전화를 집어 던지고 전속력으로 달아났다. 같이 있던 A 군에게 어떤 말을 들었는지 모르지만 공포를 떨치지 못했던 이 군은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아들을 먼저 보낸 부친 이 씨는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맘 편히 울지도 못한다. 이 군은 속 깊은 아들이었다. 집안 형편을 생각해 대학 진학도 미루고 부사관 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대학은 부사관 복무를 마치고 모은 돈으로 가겠다고 했다. 좋아하고 잘했던 복싱을 그만둔 이유도 집안 사정과 무관하지 않았다. 2019년 11월 아르바이트로 첫 월급을 타자 현금 10만 원을 아버지에게 드렸던 아들이었다.
이 군은 손편지를 써서 거실 탁자에 올려두는 방식으로 바쁜 아빠와 소통했다. 진로 문제, 건강 걱정 등이었다. 부친 이 씨는 믿음직한 큰아들에 대한 고마움을 무뚝뚝함으로 에둘러 표현했다. 말 한마디 살갑게 건네지 못한 게 한으로 남았다. 이 군은 동생도 끔찍이 아꼈다. 사건 당일 술 마시러 가기 전엔 동생 먹으라고 떡을 냉장고에 챙겨두고 나가기도 했다.
부친 이 씨는 “폭행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을 보면 아들이 스스로 무릎을 꿇는다. 중경이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복싱을 했고, 전국 대회에서 우승할 만큼 실력이 있었다. 싸움에서 밀릴 수가 없다. 만약 아비인 내가 힘 있고, 돈 있고, 빽 있는 사람이었다면 중경이가 가해자를 그냥 한 대 때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다 내 탓인 것 같아 마음이 찢어진다”며 눈물을 삼켰다.
고 이중경 군은 폭행과 폭언에 시달리다가 고속도로에 몸을 던졌다고 한다. 구미 분기점 사고 지점 인근이다. 사진=박현광 기자
고 이중경 군은 복싱 선수였다. 키 172cm에 체중 50kg 후반이었지만 군살 없이 온몸이 근육이었다. 집에 있는 철봉에 매달리면 단숨에 턱걸이 30~40개를 하던 아들이었다. 반면 A 군은 168cm에 왜소한 체격이라고 알려졌다. A 군의 친구는 “걔는 소위 일진도 아니고 그 무리를 따라다니는 애였다. 평소에도 만만해 보이는 사람만 보면 이유 없이 시비 걸어 댔다”고 전했다.
이 군이 맞고 있을 수밖에 없던 이유도 있었다. A 군 친구들에 따르면 A 군은 동네 조직폭력배나 불량배를 잘 알았다고 한다. 사촌 형이 그쪽과 연관돼 있다고 알려졌다. 일명 일진이라고 불리는 불량한 무리와도 가깝게 지냈다는 얘기도 있다. A 군의 또 다른 지인은 “A가 동네 형들한테 인사하고 다니고 힘 좀 쓰는 형님들을 잘 알았다. 항상 그런 말을 하고 다녔다. 아마 피해자도 그걸 알고 함부로 덤비지 못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일요신문이 이 군의 지인들과 경찰, 그리고 현장 관계자들을 통해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그날 벌어진 일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우선 A 군과 이 군은 사건 당일 처음 보는 사이였다. 같은 학년이었지만 평소 알지도 못했다. 다니던 고등학교도 달랐다. A 군과 이 군은 친구의 친구 사이였다. 처음부터 술자리를 함께했던 것도 아니다. 이 군은 1월 5일 밤 11시쯤 집을 나선 뒤 호프집에서 만난 친구는 평소 가까웠던 B 군과 C 군이었다. 술을 마시고 있을 때 A 군이 친구 B 군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술을 마시고 있다고 하자 A 군이 자연스럽게 자리에 합석했다.
그때까진 문제가 없었다. 술자리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합법적으로 술을 먹게 된 지 고작 5일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흥이 났는지 2차로 노래방을 갔다. 이 군은 노래방에서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웃는 사진을 찍기도 했다. 1월 6일 새벽 3시 21분께 악몽이 시작됐다. 중경 군이 공중에 던진 500mL 빈 물병이 A 군의 머리에 맞으면서다.
A 군은 태도가 돌변하며 이 군 뺨을 두 대 때렸다. 이 군이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죽여버리겠다”는 등의 폭언이 시작됐다. 이 군은 스스로 무릎을 꿇으면서까지 재차 사과했다.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A 군은 B 군과 C 군에게 잠시 복도로 나가 있으라고 했다. A 군과 이 군이 단둘이 방에 있었던 시간은 2분 정도였다. 어떤 말을 들었는지 겁에 질린 이 군이 급히 방문을 박차고 나왔다. B 군과 C 군이 놀라서 “우리가 있으니 괜찮다”며 이 군을 다독였다.
폭행과 폭언은 끝나지 않았다. 이 군과 친구들이 집으로 가려고 2층에 있던 노래방에서 내려왔을 땐 A 군의 친구 무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가 1월 6일 새벽 3시 30분께였다. 10명 정도 되는 친구들을 뒤에 둔 A 군은 길거리에서 이 군에게 다시 폭행과 폭언을 가했다. 이 군이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하자 뒤따라가서 근처로 자리를 옮겨 폭행과 폭언을 가했다. 폭행은 발로 찬 뒤 한참 욕설을 내뱉으며 위세를 과시한 뒤 다시 발로 차는 식으로 이어졌다. 이 군은 그때도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1월 6일 새벽 고 이중경 군과 그 일행이 찾은 구미역 앞 노래방이다. 노래방을 간신히 나왔지만 A 군의 친구들 10여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박현광 기자
이를 보다 못한 친구 B 군과 C 군이 이 군을 택시에 태워 집으로 가려고 하자 A 군이 택시에 함께 탔다. A 군은 택시를 구미 분기점 인근 자신의 집으로 향하게 했다. 택시에서 내린 뒤 A 군은 다시 B 군과 C 군에게 다시 자리를 비켜달라고 요구했다. 이 군은 또다시 A 군과 단둘이 남게 됐고 2분 정도 되는 짧은 시간이 지났다.
노래방에서 있었던 일과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공포에 질린 이 군이 휴대전화와 입고 있던 패딩을 내던지고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힘들다, 죽고 싶다”는 혼잣말과 함께였다. 친구 C 군이 쫓아갔지만 체력이 좋았던 이 군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이 군은 걸어서 20분 거리를 전속력으로 달려 고속도로에 다다랐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부친 이 씨는 왜 아들이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는지 알고 싶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들어서 삶을 마감할 정도로 공포를 느꼈는지 그 생각이 한시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계획된 범행이 아닐지 의심도 생긴다.
그도 그럴 것이 의문이 남는다. A 군은 B 군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 군과 함께 있다는 말을 듣자 “중경이? 이중경?”이라며 이 군의 존재를 재차 확인한 뒤 자리에 합석했다고 알려졌다. 또 2차로 노래방을 가자고 제안한 것도 A 군이다. A 군은 호프집 10m 인근 다섯 곳이 넘는 노래방을 제쳐두고 굳이 직선거리 1.6km 떨어진 구미역 앞 원평동으로 가자고 했다. 걸어서 30분 넘는 거리였다. 일행은 결국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이 군과 친구 B 군, C 군 등 노래방 밖을 나왔을 때 A 군의 친구들 10여 명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도 우연이라기엔 석연치 않다. 하지만 당시 10여 명 무리 가운데 한 명은 “A에게 연락받은 적 없다. 다른 곳을 가려다가 우연히 거기서 만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일요신문은 해명을 듣기 위해 1월 15일 A 군의 집을 찾았지만 A 군을 만날 순 없었다. 대신 A 군의 가족이 나와 “A는 집에 없다”고 답했다. 어디 갔느냐는 질문에 “모른다”며 “찾아오지 말라”고 말했다.
경찰은 1월 15일 A 군을 조사한 뒤 입건했다. A 군의 폭행과 폭언 등이 이 군의 죽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나머지 10여 명도 조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구미=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