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안철수 전 의원부터 우리공화당까지 전부를 아우르는 보수 빅텐트를 구상하는 반면, 새보수당 유승민 의원은 보수재건 3대 원칙(△탄핵의 강 건너기 △개혁보수 △새로운 집짓기)에 기반한 ‘당대당 통합’에 방점을 찍고 있다. 여기에 한국당 내 ‘유승민 비토’ 목소리와 새보수당 내 균열 조짐, 세력 간 물밑 지분다툼은 가뜩이나 험난한 통합 논의를 더욱 꼬이게 하고 있다.
혁신통합추진위원회 1차회의가 열린 1월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박형준 위원장과 혁신추진위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한동안 주춤했던 통합 열차가 다시 시동을 건 시점은 1월 9일로 한국당(이양수 의원), 새보수당(정병국 의원), 이언주 의원이 이끄는 전진당, 이 밖에 보수 시민단체들이 모여 혁통위 출범에 합의했다. 합의문은 △대통합 원칙 혁신과 통합 △시대적 가치인 자유와 공정 추구 △반문 세력 대통합 △청년의 마음을 담는 통합 △탄핵 문제가 총선승리 장애물이 되선 안 됨 △대통합 정신을 담고 실천할 새 정당 결성, 6대 원칙으로 구성됐다. 위원장은 플랫폼 자유와공화 박형준 공동의장이 맡았다.
우여곡절 끝에 출발점에 섰지만 통합 논의는 새보수당이 급브레이크를 걸며 위기에 봉착했다. 새보수당 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병국 의원이 참여한 합의 내용을 본 유승민 의원은 “저게 뭐냐”며 버럭 화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박형준 위원장 역시 합의되지 않은 일이라며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정 의원이 “3대 원칙을 관철시켰다”는 취지로 당을 설득했고, 내부 논의 끝에 혁통위 6대 원칙에 3대 원칙이 들어있다고 판단했다.
그렇지만 새보수당 측에선 황교안 대표 의중이 여전히 궁금했다. 황 대표를 향해 “3대 원칙 수용 선언을 하라”고 공개적으로 압박한 것이 그 이유다. 혁통위 자체를 3대 원칙의 프레임으로 끌고 들어가 통합 논의 기선제압을 하려는 계산이 깔렸다.
이 지점에서 황교안-유승민의 치열한 기 싸움이 벌어졌다. 황 대표는 “이미 다 한 얘기”라며 통합 원칙론을 반복했다. 새보수당 측의 수용 선언 압박이 이어지자 황 대표는 1월 13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혁통위가 발표한 6대 원칙에는 새보수당이 요구한 내용이 반영돼 있다. 통합의 대의 앞에 함께 스스로 내려놓자”고 말했다. 새보수당 요구 수용의 뜻을 밝히면서도, 끝까지 ‘3대 원칙’을 직접 입에 올리지 않은 셈이다.
새보수당 측은 이를 두고 “3대 원칙을 수용했다”고 평하며 혁통위 참여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황 대표 측근들의 얘기는 다르다. 한 지도부 핵심 관계자는 “3대 원칙을 끝까지 말을 하지 않은 것은 협상의 폭을 그만큼 넓힌 것이다. 새보수당을 뛰어넘은 대통합을 시사한 것”이라고 말했다. 통합론에 있어 새보수당 측은 ‘3대 원칙’으로 논의를 좁히려 하지만, 한국당 측은 ‘6대 원칙’으로 범위를 넓힌 셈이다. 이처럼 통합 열차는 일단 출발했지만, 언제든 탈선할 수 있는 ‘불안함’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분석이다.
새로운보수당을 창당하기에 앞서 지난 3일 바른미래당을 탈당한 유승민 의원이 국회 정론관에서 취재진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이러한 불안함은 바로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1월 15일 유승민 의원은 오전 당 공개 회의에서 “어제 황교안 대표가 우리공화당까지 통합할 수 있다고 했는데, 상식적으로 정말 탄핵의 강을 건너고 극복하는 통합이 되겠느냐”고 직격타를 날렸다. 우리공화당을 포함한 대통합을 언급한 황 대표의 언론 인터뷰를 지적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날 오후 새보수당은 한국당을 향해 당대당 ‘혁신통합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새보수당이 협의체를 요구한 배경에는 우리공화당, 이언주(전진당), 이정현 신당 등을 모두 통합 테이블에 올려놓은 혁통위를 배제하겠다는 의미다. 한국당과의 ‘당대당’ 협상을 통해 3대 원칙을 확실히 관철시키고 통합 주도권을 잡겠다는 것이다.
더욱 현실적으로는 21대 총선을 향한 지분 경쟁이 들어있다. 황 대표 시각대로 새보수당이 통합의 엔(N)분의 1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새보수당 현역 의원 8명(유승민 하태경 유의동 정병국 지상욱 이혜훈 오신환 정운천)은 모두 지역구 출신이다. 3대 원칙 중 마지막 원칙인 ‘새집 짓기’ 즉 새로운 통합신당이 만들어진다면 해당 지역에 뛰고 있는 한국당 예비 후보자들과의 정리가 필수적이다. 각각의 의원들이 인지도가 상당한 만큼 공천룰은 100% 국민경선을 도입하는 것이 새보수당 측에는 유리하다. 한국당이 1월 16일 김형오 전 의장을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하며 공관위를 띄웠기에 새보수당 입장에서는 협상에 더욱 속도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반면 황 대표는 여전히 ‘보수 빅텐트’ 의지를 접지 않고 있다. 안철수 전 의원과 우리공화당까지 ‘반(反) 문재인’을 형성하는 모든 세력을 규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황 대표는 새보수당의 혁신통합 협의체에 대해 “숙고하겠다”고 언급하는 데 그쳤다.
한국당에서는 이러한 새보수당 움직임에 부글부글 끓고 있는 모습이다. 보수재건 3원칙을 받으라는 공개 압박부터 당대당 협의체 구성 등 무리한 요구들만 늘어놓는다는 지적이다. 급기야 통합 반대파인 영남권 친박계 의원들은 유승민 의원의 ‘책임론’, ‘동반 사퇴론’까지 들고 나섰다. 한 친박계 초선 의원은 “한국당에선 불출마 선언이 10명이나 이어지며 과거를 반성하는데 유승민 혹은 유승민계가 보수의 잘못에 대해 반성한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느냐”며 “유승민부터 책임지고 불출마 선언을 하라. 그러면 이쪽도 책임질 일이 있으면 하겠다”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한국당 내부에는 ‘유승민 비토’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새보수당 내부에선 ‘통합 불가론’이 제기되는 등 균열 조짐이 감지되며 통합 논의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새보수당 일부 현역 의원들은 통합에 속도를 내길 원하지만, 당원 등 물밑에선 이제 갓 창당한 새보수당을 한국당에 갖다 바칠 수 있느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원외위원장들의 경우 한국당과 통합해도 경선에서 승산이 없다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창당 주역인 유승민 의원이 통합 3대 원칙론을 못 박으며 공개적으로 “한국당에 팔아먹으려고 새보수당을 만든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당내 불안감을 다독이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 통합 국면에 한가운데 있는 혁통위는 중구난방 논의로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급기야 1월 16일에는 새보수당 측이 당대당 협의체를 비판한 박형준 위원장을 향해 “사퇴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한국당과 새보수당 기싸움 속에 혁통위는 사실상 유명무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일고 있다.
21대 총선일이 4월 15일인 만큼 통합신당 창당, 경선 일정, 후보자 확정 등 물리적 일정을 고려하면 통합의 마지노선은 2월 초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앞서 민심 주목도를 위해 설 연휴 밥상에 통합 결과물을 올려놔야 한다는 압박감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통합을 둘러싼 꼬인 매듭은 쉽사리 풀리지 않는 형국이다. 통합 대상으로 오르내리는 안철수 전 의원이 1월 19일 입국해 본격적인 정계 복귀를 하는 것도 변수로 자리 잡고 있다.
권준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