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 친구는 “나 30년간 5평 남짓한 공간에서 사람들 이빨만 바라보고 살았다”라고 하고, 대기업 임원으로 승진한 친구는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일하는 거지, 승진이고 뭐고 간에 나 하나도 행복하지 않아”라고 볼멘소리를 하니 퇴직한 친구들이 오히려 그들을 위로하는 묘한 상황이 연출됐다.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처자식 때문에 일을 하고 있다는 친구나 이제 직장을 나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 걱정인 친구들 모두 40년 전에는 파릇파릇하고 열정 넘치고 꿈 많았던 청년들이었다. 그 청년들이 이제 50이 넘어 공통적으로 자기들의 인생이 재미없었다고 느낀다니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그 친구들은 너무나 안 놀았다. 너무나 성실했다.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해서는 각박한 현실에서 어떻게든 생존하려고 그저 열심히 공부만 했다. 토익점수를 올리고 영어도 모자라서 중국어, 일본어를 공부해야 했고 각종 자격증을 따야만 했다. 그러니 그들은 놀 수가 없었고 자신이 진정 무엇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사회로 나온 지 3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행복하지 않은 거다. 행복할 수가 없는 거다.
난 어려서부터 말이 많고 호기심이 많은, 아주 산만한 친구였다. 수업시간에 떠든다고 선생님에게 혼이 난 적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고 점심시간만 되면 아이들에게 어제 본 드라마 이야기, 만화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대는 아주 수다스러운 학생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거치면서 내가 영화를 만들게 될 거라고는 단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영화계에서 종사하는 영화인들의 대부분은 대개 ‘할리우드 키드’였다.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형 그리고 누나 손에 이끌려 극장을 드나들었고 주말마다 ‘주말의 명화’를 보면서 영화의 꿈을 꾼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달랐다. 나는 아버지 손에 이끌려 극장에 간 적이 거의 없었다. 주말마다 미군방송에서 해주는 ‘메이저리그 야구’를 보는 학생이었다. 솔직히 말해 난 학창 시절 내가 뚜렷하게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생각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무엇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안 났다. 그러다가 서른이 돼서 뭔가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나리오를 만들었고 그게 영화가 되면서 영화인의 길을 걸었다.
그동안 나는 엄청나게 놀려고만 하는 미덥지 못한 아들이었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가정을 건사할지도 결정 못 한 한심한 가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 시간 내가 무슨 일을 좋아하는지를 알게 됐고 지금 내가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었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난 43세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영화를 흥행시킨 ‘슬로 스타터’였다.
요즘 여기저기 대학에서 그동안 내가 영화인생을 살면서 체험한 경험을 이야기해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는다. 험난한 사회를 향해 첫발을 내딛는 젊은 친구들에게 난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판사를 하다가 변호사가 된 친구가 지금 영화감독을 꿈꾸면서 시나리오를 쓰고 있고, 번듯한 대기업에서 임원을 하고 있는 친구가 배우의 꿈을 버릴 수 없어 연기학원에 다닌다. 그리고 영화를 10년 넘게 한 후배는 요리사가 됐고, 촬영감독으로 오래 활동한 친구는 지금 목공일을 하고 있다.”
중요한 건 빨리하는 게 아니고 정말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이제 사회로 나오는 후배들에게 진심으로 말한다.
“애들아 놀아라…, 그냥 놀지 말고 미친 듯이 놀아라. 그래야 니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된다. 너무 안 놀면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니 놀아라. 놀다, 놀다 이렇게 놀다간 폐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 너희들은 너희들이 평생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아, 하나 또 있다.
“무엇인가를 계획하지 말아라. 너희들이 무엇을 계획하든 너희들 계획대로 안 될 확률이 90%가 넘는다. 그러니 괜히 계획해서 나중에 속상해하지 말고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살아라.”
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