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과 국가대표팀의 수호신 조상우는 신인 시절 빗길에 넘어지는 황당 부상을 당한 바 있다. 사진=연합뉴스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한 시즌 목표를 물으면, 절대 빠지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 ‘부상 없이 풀타임을 소화하는 것’이다. 시즌 전에 아무리 완벽하게 한 해 농사를 준비해 봤자 몸이 고장 나면 모두 허사다. 부상은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 불청객이라서 더 그렇다.
야구장에서 경기 도중에만 조심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야구장 밖에 더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실제로 예기치 못했던 황당한 부상 때문에 팀 전력에서 이탈했던 선수들이 적지 않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시즌 개막 앞두고 ‘아뿔싸’
외국인 선수는 팀 전력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몸값도 높다. 그래서 외국인 선수가 다치면 구단과 감독은 머리가 더 아프다. 그 가운데서도 2010년 LG 트윈스 용병 에드가 곤잘레스의 부상은 여전히 기이한 부상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곤잘레스는 스프링캠프 합류 직전인 1월까지 멕시칸리그에 등판하면서 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쉬면서 몸을 만들 시기에 계속 경기를 뛰었으니 체계적인 훈련이 어려웠다. 컨디션 회복에 시간이 한참 걸렸다. 실전 등판을 미루고 미루다 SK 와이번스와 시범경기에 처음 등판하기로 한 날, 곤잘레스는 가방 속에서 물건을 찾다가 밖으로 삐져나와 있던 면도날에 가운데 손가락 끝을 베었다. 그 부상의 후유증으로 다시 등판이 미뤄졌다. 우여곡절 끝에 시즌은 개막했지만, 곤잘레스는 후유증에 시달리다 1승도 못 따내고 6패만 기록한 채 짐을 쌌다.
한화 이글스에서 뛰던 A 투수는 2014시즌 스프링캠프 출발을 사흘 앞두고 야구장 인근에 있는 보문산을 등반하고 내려오다 오른 발목을 접질렸다. 인대 염좌로 3주 정도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아 결국 캠프를 정상적으로 치르지 못한 채 시즌을 시작해야 했다. 보문산은 한화 선수들이 겨우내 체력을 단련하고 몸을 만들기 위해 자주 오르내리던 장소. 지형이 험하지 않고 경사도 완만하다. 발을 헛디뎌 부상을 당한 건 이 선수가 처음이었다.
키움 히어로즈의 미래이자 국가대표 주전 외야수인 이정후는 2017시즌을 모두 마친 12월에도 성실하게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다 덤벨 기구에 오른손 넷째 손가락이 끼어 골절상을 입었다. 6주간 치료와 재활이 필요한 부상이라 결국 이듬해 1군 스프링캠프를 정상적으로 떠나지 못했다.
그래도 운동을 하다 다친 것은 모범적인 사례다. 수년 전 감독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수도권 구단 소속 B 투수는 캠프 출발 전 스키를 타다 넘어져 왼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됐다. 수술과 재활로 1년이 그냥 날아갔다. 운동선수들은 대부분 현역 시절에는 스키처럼 큰 부상의 위험이 있는 레저 스포츠를 즐기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는 선수들이 비시즌에 취미로 농구를 하다 무릎이나 발목을 다치는 일이 많아지자 계약서에 ‘농구 금지’라는 조항을 삽입하기도 했다. 실제로 애런 분 뉴욕 양키스 감독은 선수 시절 농구를 하다 무릎 부상을 당해 한 시즌을 통째로 쉰 뒤 정든 양키스에서 방출된 이력이 있다.
B 투수의 소식을 들은 구단과 감독도 대외적으로는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마치고 집에 가려다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다쳤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곧 캠프가 시작되는데 그 위험한 스키를 타다니 정신이 있느냐 없느냐”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한참이나 삭였다는 후문이다. B 투수는 몇 년 뒤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됐다.
이뿐 아니다. 맷 랜들은 2005년부터 4년간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었던 모범 외국인 선수였다. 잠실 인근에 거주하면서 지하철을 타고 야구장에 다녔고, 비시즌에는 이태원의 한 바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을 정도로 한국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당연히 2009시즌에도 재계약에 성공했다.
그러나 캠프까지 모두 마친 랜들이 사고를 쳤다. 잠실구장으로 출근하다가 선릉역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계단 모서리에 허리를 찧었다. 손을 다칠까봐 바닥을 짚지 않았는데, 그 탓에 허리를 더 세게 부딪친 것이다. 정밀 검진 결과 허리 우측 횡돌기가 골절돼 3개월간 재활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결국 두산은 시즌 개막 직전 눈물을 머금고 랜들을 퇴출했다. 랜들은 이후 더 이상 선수 생활을 하지 못했다.
#KBO 리그를 놀라게 한 황당 부상들
키움 조상우는 한창 리그 정상의 필승불펜으로 자리매김하던 2014시즌 도중, 당시 홈구장 목동 경기를 마치고 지하철을 이용해 인천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다 빗길에 미끄러져 무릎이 꺾였다. 이틀간 통증이 지속되자 정밀검사를 거쳤고, 그 결과 왼쪽 무릎 안쪽 인대가 파열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당시 선발진이 연쇄 부진해 불펜의 힘으로 버티고 있던 키움에는 큰 악재였다. 조상우는 성실한 재활과 초인적인 회복력으로 당초 예상보다 1개월여 빨리 복귀했지만, 인천아시안게임 대표팀 선발과 신인왕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LG에서 은퇴한 최원호 한화 2군 감독은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선수 생활에 큰 아쉬움을 남겨야 했던 인물이다. 광주 원정 경기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는데, 화장실에 다녀오다 어두운 계단에서 발을 헛디딘 것이다. 발목이 그대로 꺾이면서 인대가 늘어났고 한동안 깁스를 한 채 지내야 했다. 이후 다시 1군 마운드에 서지 못하고 2010년 은퇴했다.
‘불사조’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했던 OB(옛 두산) 투수 박철순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프로야구 출범 초기까지 너무 많은 공을 던진 게 화근이 돼 고질적인 허리 부상에 시달렸다. 특히 1988년에는 연초에 CF 촬영을 하다 아킬레스건이 파열돼 한 시즌을 통째로 쉬는 아픔을 겪었다. 점프 장면을 반복해서 찍던 박철순이 착지를 하다 계속 넘어져 병원에 가보니 ‘아킬레스건이 끊어졌다’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이 나왔다는 후문이다.
LG 박용택은 파릇파릇한 신인이던 2002년 당황스러운 부상으로 가슴을 쓸어 내렸다. 9월까지 신인왕 경쟁을 하면서 팀과 함께 상승세를 타던 와중에 집 욕실에서 세면대를 짚고 팔굽혀펴기를 하다 오른손 엄지를 다쳤다. 세면대의 지지대가 생각보다 약했는지, 건장한 박용택의 체중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버린 것이다. 오른손 엄지가 찢어지면서 3주 동안 결장이 불가피해졌고, 박용택은 아쉬움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진갑용 KIA 타이거즈 코치는 삼성 라이온스 소속으로 뛰던 2001시즌 막바지에 자신의 승용차 문을 닫다가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문틈에 끼어 전치 4주 진단을 받았다. 한 달 남았던 시즌도 그대로 마감. 두산과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간신히 복귀했지만 정상 컨디션으로는 경기에 나설 수 없었다. 마정길 키움 코치 역시 현역 시절이던 2011년 원정 숙소 식당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왼쪽 무릎을 다쳐 그대로 시즌을 접어야 했던 아픔이 있다.
KT 외야수 강백호는 야구장 내 시설물에 손바닥을 긁히는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
#야구장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공이 날아다니는 그라운드에서는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자나 깨나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삼성에서 뛰었던 외야수 이영욱은 2016시즌 롯데 자이언츠와 부산 경기에서 투수 교체가 진행되던 도중 아찔한 부상을 당했다. 가볍게 캐치볼을 하기 위해 외야 볼보이에게 연습용 공을 달라고 수신호를 보냈는데, 마침 그 근처에서 몸을 풀던 롯데의 손용석이 자신에게 공을 요청한 것으로 착각했다. 이영욱은 볼보이가 던진 공을 잡으려고 글러브를 내밀었을 때, 동시에 손용석이 던진 공도 같은 방향으로 날아와 얼굴을 강타했다. 결국 입 안쪽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해 다음날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롯데 장원삼은 삼성 시절이던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뒤 그라운드로 달려 나와 선수단과 우승의 환희를 나누다가 불의의 부상을 당할 뻔하기도 했다. 당시 한솥밥을 먹던 동료 배영수가 높이 뛰어 올랐다가 착지하면서 장원삼의 왼쪽 발등을 밟았기 때문이다. 우승할 때까지 장원삼의 덕을 톡톡히 봤던 삼성으로서는 큰 후유증이 없었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삼성 심창민도 2015년 사직구장에서 불펜 문을 열고 나오다 왼쪽 손바닥이 찢어져 신경과 자상을 봉합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3루 쪽 불펜에서 대기하다 더그아웃으로 돌아오기 위해 불펜 문 아래를 밀었는데, 그쪽에 날카로운 부분이 튀어나와 있었던 것이다. 왼 손바닥을 심하게 베이는 바람에 손바닥의 감각이 완전히 돌아오는 데 한 달 넘게 걸렸다. 공을 던지는 오른손이 아니었던 게 천만다행이다.
4년이 지난 2019년에도 사직구장 외야에서 다른 팀 선수가 손바닥을 다치는 일이 발생해 야구장 관리에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KT 위즈 외야수 강백호가 롯데 신본기의 파울타구를 달려가 잡아내는 과정에서 구장 시설물에 긁혀 오른손바닥이 찢어진 것이다. 다행히 신경은 손상되지 않았지만, 검진 결과 오른손바닥이 5cm가량 찢어진 것으로 드러나 전신마취를 하고 봉합 수술을 받았다. 한창 승승장구하던 강백호 역시 한 달간 결장이 불가피했다.
한화에서 은퇴한 구대성은 2006년 인천 더그아웃에서 SK전을 지켜보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 동료 타자가 타격하다 부러뜨린 방망이가 더그아웃으로 번개같이 날아와 구대성의 이마를 정통으로 때렸다. 이마가 7cm나 찢어져 출혈이 심했고, 응급실에서 20바늘을 꿰맸다. 뇌와 뼈에는 이상이 없었고 눈을 다치지 않은 게 다행이라 여겨질 정도였다.
조동찬 삼성 코치는 선수 시절 경기 전 캐치볼을 하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동료가 던진 공에 정통으로 얼굴을 맞아 광대뼈에 세 군데나 금이 가는 위험천만한 상황을 겪기도 했다. 그 일로 한 달 가까이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또 KIA에서 뛰던 김주형은 경기 전 더그아웃 앞을 걸어가다가 바닥에 굴러다니던 야구공을 잘못 밟아 발목이 꺾이는 중상을 입었다. 두산 투수 김유봉은 경기를 마치고 라커 안 샤워실에 있는 접이식 의자를 당겨서 앉으려다가 의자가 접히는 부분에 손가락이 끼여 피부이식수술까지 받았다. 김유봉은 그 후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한 채 은퇴했다.
선수뿐 아니라 코치들도 뜻밖의 부상에 울었다. 과거 롯데의 C 코치는 경기 전 웜업 시간에 선수들에게 삼각뿔 사이를 지그재그로 통과하는 훈련 시범을 보이다 갑자기 ‘우두둑’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진 채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당일 오전에 내린 비로 인조잔디가 깔린 외야가 무척 미끄러웠던 탓이다. 결국 C 코치는 아킬레스건이 파열돼 몇 달간 목발 신세를 져야 했다.
배우 유이의 아버지로도 유명한 김성갑 전 SK 코치 역시 현대 코치 시절 외국인 타자 클리프 브룸바의 배트에 맞아 다친 적이 있다. 배팅 케이지에서 힘찬 스윙을 하던 브룸바의 손에서 방망이가 미끄러져 빠져 나가더니 3루 쪽에서 외야 펑고를 치던 김 코치의 얼굴 쪽으로 날아간 것이다. 김 코치는 불행 중 다행으로 배트 손잡이 부분에 입술을 맞아 네 바늘을 봉합했다. 현장에서는 “방망이 헤드 부분에 맞지 않은 건 하늘이 도운 것”이라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황병일 LG 2군 감독 역시 타격코치 시절 마산구장 배팅 케이지 뒤에서 타자들을 지켜보다 낡아서 느슨해진 그물망을 뚫고 나온 파울팁 타구에 왼쪽 이마를 맞았다. 응급 처치 후 서울에서 정밀 검진을 받은 결과 안구 출혈 진단이 나왔다. 결국 열흘간 병원 신세를 졌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