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30일 우리금융그룹의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연임 결정만큼 금융권 관심을 끌었던 건 ‘지주 회장-우리은행장 겸직 체제 분리’였다. 그동안 금융권은 물론 우리은행 내부에서도 손태승 회장의 겸직 체제가 1년 정도는 더 유지될 것으로 관측했다. 우리금융지주가 출범한 지 이제 막 1년이 지난 만큼 ‘안정화’를 위한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여전히 은행 비중이 90%(자산기준)에 육박하는 만큼 조직을 이끄는 손태승 회장 입장에서도 은행장을 겸직하는 게 더 낫다는 시각도 있었다. 우리금융그룹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지난 12월 초까지만 해도 손 회장의 은행장 임기가 끝나는 2020년 12월까지는 겸직 체제가 이어질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그럼에도 우리금융그룹은 조기 분리를 선택했다. 회장은 우리금융그룹 완전 민영화와 인수·합병(M&A)을 통한 사업 확대에 집중하고, 은행장은 영업과 경쟁력 강화 등에 전념할 수 있도록 역할을 분리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에 따라 우리금융그룹 임추위는 손 회장 연임 결정 일주일 만인 지난 1월 6일, 이사회가 열리기 직전 사전 간담회를 열고 새 은행장 선임 작업과 관련한 일정과 방향 등을 논의했다. 이날 임추위 내부적으로 불필요하게 길게 끌 필요 없이 이르면 설 명절 전에 은행장 선임 작업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중구 소공로 51에 위치한 우리은행 본사. 사진=박정훈 기자
# 정원재 조운행 이동연 김정기 정채봉, 내부 후보군
이번 우리은행장 선임의 관전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로 꼽힌다. 첫 번째가 손 회장과의 ‘호흡’이다. 그룹 내 우리은행 비중이 크고, 지주사 2년 차에 접어드는 만큼 그룹의 안정적인 지배구조와 회장-행장 간 원활한 소통이 필요해서다. 우리금융그룹의 한 관계자는 “비은행 부문 사업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내부 안정의 필요성은 절대적”이라며 “(회장-은행장 간) 상호 견제도 필요하지만 손발이 맞는 게 훨씬 더 중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주요 후보로 거론되는 우리금융그룹 임원은 정원재 우리카드 사장, 조운행 우리종합금융 대표, 이동연 우리FIS 사장 등이다. 이들은 지난해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과 함께 회장 숏리스트(압축 후보군)에도 이름을 올렸다. 은행 내부에서는 김정기 영업지원부문장(부행장)과 정채봉 영업부문장(부행장)이 거론된다. 외부 인사로는 권광석 새마을금고중앙회 신용공제 대표와 이동빈 수협은행장 이름이 언급되는데, 이들 모두 우리은행 출신이다.
금융권과 우리금융그룹 안팎에선 김정기 우리은행 영업지원부문장과 정원재 우리카드 사장, 조운행 우리종금 사장 등이 우세한 것으로 점치고 있다. 김정기 부문장은 손 회장이 발탁한 인물로 최측근에서 손발을 맞춘 경험이 장점이다. 나이도 상대적으로 다른 후보들보다 젊은 편에 속한다.
정원재 사장은 과거 손 회장과 은행장 자리를 두고 경쟁했다. 2016년 우리은행 과점 주주 매각 당시 투자유치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운행 사장은 손 회장이 2017년 우리은행장에 취임하면서 영업지원부문장에 발탁했다. 2018년부터 우리종금 사장을 맡아 실적 개선에 성공하기도 했다. 앞서 손 회장이 공식석상에서 “내부 출신을 중용하겠다”고 밝히면서 이들에게 시선이 더 쏠린다.
그룹 임추위 구성도 손 회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 있는 구조다. 손 회장이 위원장을 맡고, 우리금융 7대 과점주주의 추천을 받은 노성태·박상용·정찬형·전지평·장동우, 5명의 사외이사가 위원으로 참여한다. 우리금융 이사회 멤버인 배창식 예금보험공사 인재개발실장(비상임이사)은 그룹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 참여하지 않는다. ‘정부 측 인사’가 임추위에 포함되지 않는 만큼 주도권은 손 회장에게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른 관전 포인트는 상업은행과 한일은행 출신이 번갈아 행장을 맡는 우리은행 특유의 인사 관행이 이번에도 이어질지 여부다. 우리은행은 1999년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병하면서 출범(당시 한빛은행)했다. 이후 행장은 상업·한일은행 출신이 번갈아 맡아왔다. 지주 출범 이후에는 회장이 상업은행 출신이면 행장은 한일은행 출신이 맡았다. 부행장 역시 한일-상업은행 출신이 절반씩 나눠 맡는 관행이 있다.
손 회장은 한일은행 출신이다. 이번에도 관행을 따르게 되면 우리은행장은 상업은행 출신이 맡을 가능성이 높다. 조운행 대표와 김정기 부문장이 상업은행, 정채봉 부문장과 정원재·이동연 사장이 한일은행 출신이다.
다만 두 은행이 합병한 지 20년이 지났고, 한빛은행 공채 출신이 지점장에 오르기 시작한 만큼 내부에선 과거만큼 관행에 의미를 두지 않는 분위기가 읽힌다. 최근 금융권 인사도 능력 중심으로 변화되고 있는 만큼 이번 우리은행장 선임도 계파 중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손 회장 역시 2017년 취임 당시 “계파 갈등 없는 은행을 만들어 시스템과 능력에 따른 인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은행의 한 관계자는 “차기 행장의 ‘능력’이 절실한 상황에서 관행을 따지는 일이 은행 경영에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 DLF 제재심과 얽혀 속도조절하지만 오래 안 걸려
당초 우리금융그룹 임추위는 “은행장 선임을 길게 끌 필요가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선임 작업에 속도를 낼 방침이었다. 앞서의 1월 6일 간담회 다음주에 첫 회의를 열고, 후보 3명을 선정해 숏리스트를 발표할 계획이었다. 임추위는 후보 3명을 대상으로 프레젠테이션(PT) 형식 면접을 진행한 뒤 설 연휴 전까지 은행장을 확정짓겠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임추위는 최근 속도조절에 나섰다. 1월 17일 현재까지 첫 회의도 열지 않았다. DLF 사태와 손 회장 조기 연임 등이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관측된다. 손 회장이 금감원으로부터 문책 경고의 중징계를 사전 통보 받고, 제재심에도 직접 출석하게 된 만큼 연임은 제재심 이후로 관측됐으나 예상을 깨고 빠르게 연임을 결정해서다. 금융권은 물론 금감원 내부에서도 ‘놀랍다’는 반응이 나왔다.
앞서 언급했듯 임추위 위원장이 손 회장인 만큼 은행장 선임을 서두르면 금융당국과 불필요한 오해가 쌓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은행장 후보 가운데 정채봉 부문장은 금감원으로부터 손 회장과 함께 제재심 대상에 올라있다. 임추위는 손 회장과 행장 후보가 동시에 올라있어 제재심 결과를 보고 추진하는 데 무게를 싣고 있다.
다만 구체적인 은행장 후보는 늦어도 1월 말 안에는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속도조절은 하고 있지만 선임 작업에 시간을 오래 쓰지 않는다는 공감대는 여전하다고 전해진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