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자산운용의 환매 중단 사태의 파장이 금융권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2019년 10월 14일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이사가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에서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연기 관련 기자 간담회를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라임의 환매 중단 이후 폰지 사기 연루 등 부실이 알려지면서 투자자들의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투자자들은 운용사인 라임보다는 판매사인 은행 및 증권사들을 상대로 단체소송을 진행하고, 금융감독원에 분쟁조정 민원을 신청하고 있다. 일부 판매사가 부실을 알면서도 판매했거나, 설명 없이 불완전판매를 했다는 지적이다.
한 피해 투자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예금인 줄 알고 가입했다. 상품 설명도 구체적으로 하지 않았고, 상품을 설명하는 문건 또한 받은 것이 없다. 통장 하나만 달랑 주더라. 기사가 나오기 전까지는 은행에서 이렇게 위험한 상품을 판매한 줄 몰랐다”고 호소했다. 피해를 주장하는 투자자들은 대부분 “판매사가 예금만큼 안전하다”고 강조했다고 입 모은다. 안전추구형 상품이라 원금 손실이 없을 것이라는 판매사의 이야기를 믿었다는 것. 다른 피해 투자자는 “은행에 내 돈이 어디에 투자됐는지 자료를 달라고 했더니, 정확히 자료로 드릴 수 없고 준비된 것도 없다고만 하더라”며 “판매만 했다는 말로 책임을 피하려고 해 괘씸하다”고 전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 10일 기준 관련 민원이 100건이 넘게 접수됐으며, 현재까지도 매일 한두 건씩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금감원 분쟁조정국 관계자는 “민원의 대부분은 펀드 판매사를 상대로 불완전판매를 지적한 것”이라며 “은행이 80%가량을 차지하고 증권사는 20% 정도다. 민원을 파악하고 사실조회를 보내 답변을 받는 중이라 아직 조정 단계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판매사의 불완전판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추가 검사 등의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
이런 가운데 판매사들은 라임을 정조준하고 나섰다. 판매사 역시 피해자라는 입장이다. 판매사들은 우리은행을 중심으로 공동대응단을 꾸리고 라임에 대한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은행‧증권사 등 16곳이 참여한 공동대응단은 라임에 대한 삼일회계법인의 실사 및 금감원의 검사 결과에 따라 라임에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공동대응단에 참여한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자본시장법에 따라 판매사는 펀드 운용에 관여할 수 없고, 정보교류가 차단돼 있어 부실 등의 문제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며 “라임 내부에서도 잠적한 이종필 전 부사장 등 일부만 문제를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대손상각(상각) 처리 여부도 논란이다. 판매사와 운용사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라임은 지난 15일 “상황의 심각성 및 투자 자산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이번 실사보고서 내용을 기준가격에 반영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며 상각 처리 계획을 밝혔다. 상각이란 특정 채권의 회수가 불가능할 때 해당 채권을 회계상 손실로 처리하는 것이다. 즉, 실사 결과에 따라 (라임이 환매 중단을 밝힌) 투자 자산의 회수가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확인되면 이를 손실로 인정하겠다는 것. 삼일회계법인은 라임에 대해 11월부터 실사를 진행 중이며, 오는 2월 중순경 최종보고서가 제출될 것으로 보인다. 라임은 상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운용사‧판매사‧TRS증권사’ 3자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하겠다는 계획이다.
판매사 중 특히 은행권은 라임의 상각 처리를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삼일회계법인의 실사가 단순히 밸류에이션(가치평가)을 본 것이라 상각 여부를 결정할 수 없고, 상각을 처리하고 TRS증권사가 선순위로 원금을 회수하게 되면 투자자의 손실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판매사들은 공동대응단 간사인 우리은행 측에 상각 반대 이유를 담은 문건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실사 결과에 대비해 상각도 논의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이라며 “문건을 낸 곳도, 내지 않은 곳도 있다. 각자 의견도 조금씩 다르다. 우리은행은 취합하는 입장일 뿐이라 다른 회사가 낸 의견을 밝힐 수 없다”고 전했다.
이 같은 판매사의 움직임도 저의를 의심받고 있다. 판매사들의 상각 처리 반대가 책임과 손실을 회피하려는 시간 끌기라는 지적이다. 라임이 상각 처리할 경우 펀드 투자자인 고객의 손실이 명확해지고, 이에 따라 판매사들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판매사가 버티기에 나서자 금감원이 상각을 강요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이에 대해 금감원 자산운용검사국 관계자는 “사실이 아니다. 금감원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고, 상각을 강요해 금감원이 얻을 것도 없다”며 “다만 삼일회계법인의 실사 결과 가치 없는 자산이라 판단되는 것이 있다면 그를 기준가격에 반영해 정리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런 부분을 털어버려야 투자자들이 헛된 기대를 품지 않을 수 있어 그 절차를 진행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상각을 처리하지 않고 지연하고 있는 것은 판매사와 운용사 모두 당장 급한 불을 피하려는 꼼수라고 보고 있다. 투자자들은 하루빨리 피해를 회복하고 싶어 하지만, 판매사와 운용사들이 실사 뒤에 숨어 손실 내용을 알리지 않고 투자자로부터 제기되는 불만을 피해가려 한다는 것이다.
앞서의 금감원 관계자는 “상각의 경우 제3기관인 회계법인이 자산 가치에 대해 판단하면 최종적으로 운용사인 라임이 결정하는 것“이라면서 ”다만 정보를 빨리 생성해 투자자에게 알리고, 최대한 많이 투자자에게 돌려줄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것이 금감원의 입장”이라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