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경의 이스타항공 인수가 지연되면서 여러 추측이 쏟아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공시에 따르면 애경그룹 지주사 AK홀딩스는 2019년 12월 31일로 예정한 주식매매계약 체결일을 2020년 1월 중으로 바꿨다. 1월 9일까지로 정했던 실사 기간도 ‘1월 중’으로 연장했다. 앞서 애경은 이스타항공 최대주주인 이스타홀딩스와 기타 주주 지분 51.17%를 695억 원에 인수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2019년 12월 31일 공시했다. 이어 최종 매각가 산정을 위해 재무·지분구조 등을 파악하고자 2019년 12월 26일부터 진행한 실사 작업이 길어지고 있다. 제주항공은 “일정은 실사 및 진행 과정에서 변경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애경이 인수를 미루는 이유로 복잡한 지분구조가 언급된다. 이스타항공 최대주주 이스타홀딩스는 이상직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의 자녀 이원준 씨와 이수지 씨가 지분 100%를 보유한 가족회사다. 공시된 2016년 감사보고서를 보면 사측이 재무상태 표나 손익계산서 등 기본적인 재무 현황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회계법인이 감사의견을 거절했고, 2017년엔 감사보고서도 올라오지 않았다. 정상 작성된 2018년 감사보고서를 보면 매출 0원으로, 다만 지분법 이익 영업외비용으로 49억 원을 기록했다. 매출이 없고 회계감사도 제대로 받지 않은 데다 사무실도 방화동의 한 오피스텔에 있어 페이퍼컴퍼니란 의혹을 받아왔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 기업이 오너 일가에 유리한 쪽으로 계약을 하는데, 이스타항공은 기업이 아닌 오너 일가가 최대주주로서 지배하는 구조에다 비상장사에 대기업집단도 아니기 때문에 공개되는 정보도 적다”며 “오너 일가에 유리한 방향으로 계약구조가 이뤄져 있는 등 자금이 흘러들어갈 가능성을 두고 더 꼼꼼히 살필 필요성이 커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재무상황이 열악한 점도 이유다. 항공업 특성상 대규모 항공기 리스비와 인건비 등으로 기업이 이익 대비 많은 돈을 운용하는 탓에 쉽게 파악되지 않는 자금이 있을 수 있다. 특히 이스타항공은 실적 악화로 2019년 대규모 적자 전환이 예상된다. 영업이익은 2017년 157억 원에서 2018년 53억 원으로 떨어졌고, 같은 기간 순이익도 322억 원에서 39억 원으로 줄었다. 실적은 나쁜데 리스료와 항공기 관리·운영비, 유류비 등 고정비용이 많이 들다 보니 2018년 말 기준 부채비율은 484.4%, 자본잠식률은 47.9%에 육박했다. 미중 무역전쟁과 홍콩 민주화 시위, 일본 불매운동 등 외교적 상황과 세계적 경기침체 등 지난해 터진 연이은 악재를 고려하면 최근 재무상황은 더욱 나빠졌을 것으로 보인다.
앞의 관계자는 “항공기 리스는 보통 7~8년 계약으로 규모가 큰 데다 장기여서 많은 조항이 있을 것”이라며 “나중으로 비용 지불을 미뤄놓거나 상황 변화에 따라 추가 비용부담을 짊어져야 하는 조항 등이 있는지 확인하려면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재무상태가 워낙 안 좋은 만큼 숨겨놓은 부실·우발 채무나 불필요하게 드는 비용, 아시아나항공처럼 법적 소송이 걸려 있거나 불공정한 계약 등은 없는지 따져봐야 한다”며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실사를 끝내겠다고 공시한 것 자체가 말이 안 됐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매각 불발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이스타항공의 재무 상태를 아는 상황에서 인수를 결정한 만큼 부채 등을 몰랐을 리 없고, 때문에 이를 이유로 인수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애경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도 시도하는 등 성장 의지가 확실했기에 인수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실사가 길어지는 건 지극히 정상적으로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고 했다. 같은 맥락에서 애경이 더 유리한 조건으로 인수하고자 시간을 끄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IB업계 다른 관계자는 “이스타항공이 올해 완전자본잠식에 빠질 것이란 점을 이미 안 상황에서 인수 결정을 한 만큼 인수하지 않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애경의 언론플레이일 가능성이 있다”며 “이스타와 협상 테이블에서 부채나 적자를 문제 삼아 우호적인 매각 조건을 얻어내려 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논쟁이 붙어 인수가 지연되고 노이즈가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일각에선 애경이 지난 연말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하겠다고 급히 공시한 것도 이스타항공의 신용도 및 평판관리를 위한 전략적 판단이었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회계감사를 받을 때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면 신용등급이 하락하고 국토부가 재무구조 개선 명령을 내릴 수 있고, 대외적인 이미지 타격으로 고객들이 이스타의 안전성 등을 우려하며 거르는 최악의 상황까지 올 수 있다.
따라서 지난해 회계연도 내 제주항공과 MOU를 체결해 자금 투입 및 재무구조 개선 계획을 공시하고, 이행보증금 115억 원을 이스타홀딩스에 지급함으로써 리스크를 덜어내고자 했다는 분석이다. 앞의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실적은 바꿀 수 없지만 그 해에 제주항공과 M&A(인수·합병) 계약을 맺어 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는 조건이 붙으면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을 거라는 판단에 무리하게 2019년에 맞추려고 하지 않았겠느냐”고 봤다.
애경의 이스타항공 인수가 늦어지는 이유로 이스타항공의 복잡한 지분구조와 열악한 재무상황이 거론된다. 사진=연합뉴스
인수 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애경이 이스타항공 인수를 결정한 이유는 업황과 재정상황이 어려운 시기 항공사를 싼값에 사들여 덩치를 키운 뒤 항공시장이 호황으로 돌아설 때 시너지를 내겠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중복노선들도 적지 않고, 지금 같은 최악의 업황에서 공급만 늘리고 수요는 채워지지 않는다면 리스크가 가중될 수 있다는 것. 제주항공만 해도 지난해 3분기 연결기준 누적 174억 원 적자로, 전년 동기 당기순이익 848억 원 대비 급감하는 등 상황이 여의치 않다.
허희영 교수는 “인수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익성 좋은 운수권과 슬롯(공항 이착륙 시간대)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제주항공이 못 띄운 노선을 이스타항공 노선으로 보완해 시너지를 낼 수 있단 점에서 긍정적”이라면서도 “현재 업황이 장기화하거나 더 나빠진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앞의 IB업계 관계자도 “인수 후 비용절감이 가능한 부분은 제주항공이 항공기를 빌리는 조건으로 협상력을 높여 이스타의 고비용 리스료를 줄이는 것인데 기존 계약 기간이 남아 있어 당장 효과를 보긴 어렵다”며 “제주항공이 지상조업 자회사를 보유한 만큼 이스타의 수하물 운송·탑재·기내청소 등 지상조업 비용을 줄일 순 있겠지만 지금처럼 큰 적자를 보는 상황에선 실효가 없다. 인수 후 단기에 시너지가 나긴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