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복귀를 선언한 안철수 전 의원. 사진=최준필 기자
정계복귀를 선언한 안철수 전 의원 몸값은 상종가다. 총선을 대비해 정계개편이 한창인 정치권에서 안 전 의원은 ‘키맨’으로 꼽힌다. 보수통합, 제3지대 신당 논의에서 안 전 의원 이름은 빠지지 않는다. 각 당과 정파에선 안 전 의원을 향해 연일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보수 진영 통합작업을 이끄는 혁신통합추진위원회(혁통위) 박형준 위원장은 1월 9일 안 전 의원 합류와 관련해 “그것이야말로 통합의 가장 큰 목표”라고 밝히기도 했다.
물론 안 전 의원 정치적 입지는 예전만 못하다. 2011년 ‘신드롬’을 일으키며 정치권에 들어온 이후 별다른 ‘콘텐츠’를 내놓지 못했고, 오히려 기성 정치권을 답습하는 듯한 행태로 실망감을 줬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개인적 매력 역시 이젠 호감보다는 비호감이 더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에서 안 전 의원 복귀가 총선 판세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란 부정적 견해가 팽배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읽힌다.
하지만 현재 야권에서 안 전 의원만 한 정치인도 눈에 띄지 않는 상황이다. 차기 주자 선호도 지지율 조사에서 황교안 한국당 대표와 유승민 새로운보수당 의원을 제외하곤 안 전 의원 이름이 순위권에 유일하게 올라 있다. 황 대표와 유 의원이 보수 진영 후보군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중도를 표방하고 있는 안 전 의원의 ‘포지셔닝’은 의미가 남다르다. 정권 심판론과 야권 심판론이 맞서 있는 프레임에서 안 전 의원이 부동층으로 분류되는 중도 표심을 얻는다면 그 파괴력이 상당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한때 정치권에선 유승민 의원과 갈라선 안 전 의원이 한국당에 합류할 것이란 관측이 나돈 바 있다. 황교안 대표 이외엔 뚜렷한 대선 후보가 없었던 한국당이 안 전 의원 영입에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황 대표 리더십이 연일 도마에 올랐던 부분도 여기에 영향을 미쳤다. 실제 안철수계로 분류됐던 일부 의원은 제1야당인 한국당과 손을 잡는 게 장기적 측면에서 대권에 유리할 것이라며 안 전 의원 설득에 나섰다고도 한다. 한국당으로 들어가 ‘반문 연대’를 앞세워 보수통합을 주도할 경우 유리한 상황이 조성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안 전 의원은 이를 강하게 일축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당으론 가지 않는다”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했다고 한다. 안철수계 한 의원은 “한국당과의 연대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일고의 가치조차 없다는 뜻을 피력했다”면서 “안 전 의원도 문재인 정부에 대해 비판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당이 그 대안은 아니라는 판단을 하는 것 같다. 안 전 의원에 대한 국민들 기대는 밥그릇 챙기려는 통합이 아닌, 새로운 정치 세력을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안 전 의원도 이를 잘 알고 있고, 또 앞으로 이런 쪽으로 정치를 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당행이 아니라면 안 전 의원의 유력한 선택지는 신당 창당이다. 앞서 언급했듯 민주당과 한국당에 등을 돌린 중도층을 노리는 전략의 일환이다. 이와 관련해 안 전 의원 최측근으로 알려진 한 정치권 인사가 지난해 12월경부터 호남권 중진 의원들을 은밀히 만난 것으로 알려져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이 정치권 인사는 미국에 머물고 있던 안 전 의원의 ‘메신저’를 자처했다고 한다.
1월 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안철수계 의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한국 정치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 안철수 전 의원의 정치 혁신 의지를 담은 영상 메시지가 상영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그와 직접 만났다는 한 현역 의원은 “안 전 의원이 신당을 검토하고 있는데, 지금 우리 쪽 움직임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나 말고도 호남 쪽 의원들을 많이 만났다고 들었다. 안 전 의원이 깃발을 세우면 합류하겠다고 약속한 의원도 있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거론된 ‘우리’는 대안신당을 지칭한다. 대안신당은 호남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3지대 세력 통합 작업에 나선 상태다. 이는 곧 안 전 의원 역시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신당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2012년 대선에서 고배를 마신 뒤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안 전 의원은 2016년 총선에서 국민의당을 만들어 돌풍을 일으켰다. 국민의당은 호남 전체 의석 28석 중 23석을 얻으며 3당을 차지했다. 당시 안 전 의원은 ‘반문재인’ 정서를 부각시키며 단숨에 유력 대선 후보로 부상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안 전 의원은 바른정당과 손잡고 바른미래당을 만든 뒤 2018년 서울시장에 출마했지만 패배했다. 안 전 의원이 내건 ‘새정치’는 조롱거리가 됐고, 안 전 의원은 후일을 기약한 채 독일로 떠났다.
어찌됐건 안 전 의원에게 2016년 총선은 벼랑 끝에서 구해 준 터닝 포인트로 작용했다. 또 호남은 안 전 의원 정치 생명을 연장해준, 기회의 땅이다. 안 전 의원 신당 구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또 다른 호남 지역 의원은 “안 전 의원 측으로부터 신당에 대한 얘기를 들은 것은 사실이다. 현재 이뤄지고 있는 3세력 신당 논의에 안 전 의원도 참여할 뜻을 밝혔다”면서도 “호남 신당이라고 부르는 것은 지양해 달라. 민주당과 한국당에 대한 혐오 정서가 팽배한 상황에서 3세력의 출현은 국민적 요구”라고 했다.
다만, 2016년에 비해 현실은 험난하기만 하다. 텃밭 탈환을 예고한 민주당은 ‘싹쓸이’를 목표로 내걸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을 감안했을 때 불가능한 수치도 아니라는 평가다. 무엇보다 안 전 의원에 대한 호남 지역 시선이 곱지 않은 상황이다.
호남 지역의 한 언론인은 “원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20대 총선에서 안 전 의원에게 표를 몰아줬지만 그 후 행태들에 분노가 크다.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다. 안 전 의원이 어떤 식으로 호남 유권자들에게 다가설지 깊게 고민해야 할 것”이라면서 “21대 총선에서 안 전 의원이 호남 표심을 공략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점쳤다. 이에 대해 안 전 의원 측 관계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안 전 의원도 예전과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잘 안다. 처음부터 시작하는 마음으로 한국에 돌아온다고 했다. 의석수가 많은 게 중요한 건 아니라는 게 안 전 의원의 지금 판단이다. 신당을 포함해 일단 세력을 만든 뒤 국민들에게 다가가면 안 전 의원의 마지막 도전은 성공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총선에서 어느 정도 의석을 얻으면 향후 정계개편이나 대권 행보에서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안철수 전 의원 역시 1월 16일 공개한 신간 ‘안철수, 우리의 생각이 미래를 만든다’ 전문에서 “프랑스 국민들은 국회의원 한 명 없던 마크롱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기존의 두 거대 정당이 문제를 풀 것이라는 희망을 접은 프랑스 국민들은 새로운 미래를 고민했고, 마크롱이 주축이 된 실용적 중도 정당을 선택했다”면서 간접적으로 3지대 신당 창당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