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임 당시 “나는 달라졌다”던 무리뉴 감독의 말에 최근 물음표가 붙고 있다. 사진=토트넘 핫스퍼 페이스북
#“나는 달라졌다”던 무리뉴
무리뉴는 자타가 공인하는 현 시대 최고 감독 중 하나다. 2004년 FC 포르투를 이끌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를 제패했던 그는 이후 첼시, 인터밀란, 레알 마드리드 등을 거치며 성공을 이어왔다. 무리뉴의 감독 경력에서 잉글랜드리그 우승 횟수가 토트넘 구단보다 많을 정도다.
하지만 무리뉴 감독은 2013년부터 맡았던 구단인 첼시와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연속으로 시즌 도중 퇴단하는 불명예를 맞았다. 부임 초기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전성기를 이어가는 듯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좋은 결말에 이르지는 못했다. 두 구단에서의 행적은 비슷했다. 답답한 경기력을 보이며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독선적이고 공격적인 면모를 드러내 논란을 낳기도 했다. 팀 안팎으로 불화가 이어졌고 결국 시즌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감독 직에서 물러났다. 그 사이 그가 쌓은 놀라운 커리어로 생겨난 열성 팬들만큼이나 ‘안티’도 늘어갔다.
이에 뮤리뉴의 토트넘 부임을 반기는 이들도 있었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했다. 수차례 이어진 그의 ‘실패 공식’이 반복되지 않겠냐는 주장이었다. 무리뉴도 이를 의식한 듯 “나는 달라졌다”며 의심의 눈초리들을 안심시켰다. 실제 부임 이후 부드러운 모습을 보였고 ‘무리뉴 사단’으로 불리던 코치진을 교체하기도 했다.
#무리뉴 축구는 달라졌나
무리뉴 감독은 그간의 트로피 개수로 증명하듯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 감독으로 통한다. 때론 ‘아름답지 못한’ 축구를 구사해서라도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최근 무리뉴의 토트넘은 내용과 결과,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고 있다. 무리뉴 감독 부임 이후 치른 14경기에서 토트넘은 7승 2무 5패를 기록했다. 그 중 첫 7경기에 5승이 몰려 있다. 최근 7경기에선 2승 2무 3패로 부진하다.
지난 1월 6일에는 FA컵에서 챔피언십(2부리그) 소속 미들즈브러를 상대로도 승리하지 못했다. 새 사령탑이 부임하며 선수들이 일시적으로 힘을 내는 ‘감독 교체’ 효과는 2개월 만에 끝난 듯 보인다.
단단한 수비를 바탕으로 실점을 최소화하는 무리뉴 축구의 장점마저 사라졌다. 토트넘은 무리뉴 체제 14경기에서 21골을 내줬다. 무실점 경기는 단 1경기에 불과하다. 그는 첼시 감독 시절 리그 준우승에 머물렀던 2006-2007시즌조차 실점은 38경기에서 24골에 불과했다. 프리미어리그 역대 한 시즌 최소 실점 기록도 무리뉴의 첼시(15 실점)다. 하지만 이 같은 실점 억제 능력을 토트넘에서는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전략가로 통하는 무리뉴 감독은 경기장 밖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내뱉는 독설가로도 유명하다. 사진=연합뉴스
#경기 외적 ‘기행’도 시작되나
무리뉴 감독은 특유의 예측불가능한 언행으로도 악명이 높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실패를 거듭하면서 자신의 팀을 향한 거친 언사 등 ‘내부 총질’도 서슴지 않았다. 이전까지 부임 3년차에 접어들며 팀을 통제하지 못했던 모습들이 토트넘에서는 벌써 시작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시작은 2019년 12월 26일 노리치 시티와 경기다. 리그 최하위권 노리치에 2골을 내주며 비기자 자신의 팀 수비진을 향해 “내가 공격수라면 이런 우리 수비에 굉장히 실망했을 것”이라며 과한 비난을 가했다. 이어진 새해 1월 1일 사우스햄튼 전은 그의 기행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경기였다. 후반 21분께 상대 벤치를 향해 걸어가 코치진이 무언가를 적고 있는 수첩을 들여다보는 듯한 행동을 취한 것이다. 이에 감독이 경기 중 옐로카드를 받는 이례적 상황이 벌어졌다.
경기 후 무리뉴는 “내가 무례했다”며 경고를 받은 장면에 대해 사과했다. 이어 “그러나 나는 바보(상대 코치)에게 무례했던 것”이라며 논란을 재생산했다. 많은 이들은 ‘이날 토트넘의 패배(0-1)에 대한 화풀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이상윤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첼시와 맨유 등에서 좋지 않았던 무리뉴 감독의 모습이 토트넘에서는 부임 초기부터 나타나고 있다”며 “일부 부족한 부분도 있겠지만 토트넘은 충분히 좋은 팀이다. 이보다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 무리뉴가 경기 외적으로 논란을 만들어내지 말고 성적을 내는 데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무리뉴가 과거 맡았던 팀에 비해 토트넘에는 개성이나 자신의 주장이 강한 선수도 비교적 적다. 충분히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갈 수 있는 환경은 조성돼 있다”고 했다.
무리뉴 감독은 경기 중 상대팀 벤치로 다가가 작전판을 염탐하는 듯 한 행동으로 경고를 받기도 했다. 사진=스포티비 중계화면 캡처
#무리뉴-토트넘, ‘동행’은 계속될까
무리뉴 감독의 지도력에 의문만 따르는 것은 아니다. 아직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그는 흔들리던 팀에 시즌 도중 부임했다. 자신의 의견과 무관하게 선수단이 꾸려져 있었다. 최소 한 번의 여름 이적시장을 거치며 선수 보강이 이뤄진 후 재평가를 해야 한다는 항변을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최근 경기인 리버풀과 리그 22라운드에서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그나마 긍정적 요인이다. 비록 승점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19승 1무로 압도적 기세를 뿜어내던 리버풀을 0-1로 막아냈다. 단순히 적은 점수만 내준 것이 아니라 경기 내용에서도 대등했다. 깜짝 기용한 20세 신예 수비수(자펫 탕강가)가 좋은 모습을 보였고 공격에서도 상대를 위협했다. 무리뉴 감독은 여전히 한 경기에 집중하는 ‘원포인트 전술’에 일가견이 있음을 증명했다.
지갑을 굳게 닫아왔던 과거와 달리 토트넘 구단이 현재 진행 중인 겨울 이적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도 무리뉴 감독에겐 호재다. 지난 15일 토트넘은 포르투갈 출신 유망주 제드손 페르난데스 영입을 발표했다. 이외에도 주포 해리 케인이 부상으로 빠진 최전방에 다양한 선수들과 이적설을 뿌리고 있다.
무리뉴가 2000년대와 2010년대 축구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명장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부터 맡는 팀마다 불화를 일으켰고 최근 커리어는 내리막을 걷는 듯한 모양새를 보인다. 이번 토트넘 지휘봉을 잡으면서는 “변했다”며 입술을 깨문 무리뉴가 2020년대에는 어떤 족적을 남길지 팬들의 관심이 쏠린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