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의 올림픽 티켓 획득에는 베테랑 한송이(가운데 13번)도 힘을 보탰다. 사진=국제배구연맹
―태국에서 경험한 감동과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을 것 같다.
“처음 대표팀 합류해서 시합 마칠 때까지 한 달여의 시간을 대표팀에서 보낸 것 같다. 훈련은 힘들었지만 대표팀 생활 내내 ‘즐겁다’, ‘행복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잊지 못할 시간들을 경험했다. 너무 오랜만의 대표팀 합류라 내심 걱정도 많았는데 후배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준 덕분에 어느 때보다 빨리 대표팀 생활에 스며들었던 것 같다.”
―2014년 아시안게임 이후 오랜만에 태극마크를 달고 뛰었다. 그 감회가 남달랐을 텐데.
“처음에는 굉장히 어색할 줄 알았다. 기존의 선수들은 라바리니 감독님이랑 1년 정도 호흡을 맞춘 터라 훈련하는 분위기가 굉장히 자연스러웠지만 나는 그 분을 처음 만나는 터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행여 ‘내가 그분의 훈련을 못 따라 가면 어쩌나’, ‘혹시 나 혼자 뒤처지면 어떻게 하나’ 등등의 걱정들이었다. 그런데 막상 대표팀에 들어가 보니 그런 생각들이 무색할 정도로 모두가 편하고 따뜻하게 맞이해주더라.”
―김해란 선수(36·흥국생명)와 함께 대표팀의 최고참 선수였다. 적은 출전 시간이 아쉽지 않았나.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경기에 나가고 싶은 마음은 후배들과 똑같다. 아니 더 클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표팀에서는 개인적인 욕심보다는 팀의 승리를 위해 모두가 똘똘 뭉쳐야만 했다. 대표팀의 목표 달성을 위해 팀의 일원이 됐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선생님들(코칭스태프)께서 그런 말씀을 해주셨다. ‘네가 경기에 나서지 못한다고 해서 팀에 필요 없는 선수라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존재만으로도 후배들한테 도움이 되고 있다는 말씀에 큰 위로를 받았다.”
―이번 대표팀의 선수 구성은 신구 조화를 이뤘다는 점에서 더 높이 평가받는 것 같다.
“대표팀에 있는 동안 인터뷰를 통해 ‘웜업존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쁘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진심이었다. 전성기 시절에는 대표팀에서 뛰는 게 당연시됐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대표팀 합류가 점점 힘든 일이 되고 말았다. 2016년 리우올림픽 때는 대표팀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배구를 새롭게 배운 부분이 정말 많다. 20명이 넘는 대표팀 구성원들이 오직 감독님만을 믿고 따르며 한 마음으로 움직이는 과정은 전율이 일 정도였다.”
―스테파니 라바리니 감독은 어떤 지도자인가.
“대표팀 합류 전 선수들에게 물어보니 감독님이 굉장히 엄격하고 무서운 분이라고 하더라. 운동량이 많아서 무척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막상 내가 만난 감독님은 전혀 화도 안 내고 빡빡한 훈련 스케줄을 부드럽게 풀어가는 힘을 보여주셨다. 선수들이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시는 부분도 대단했다. 반면에 훈련 외의 시간에는 선수들과 장난도 치고 다정한 모습을 보이셨다. 나는 그런 감독님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그리고?
“배구만 생각하시는 분 같았다. 항상 태블릿을 휴대하고 다니시면서 상대팀의 경기 영상과 우리 팀의 지난 경기들을 분석하고 코치님들과 토론하시는 장면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정말 배구에 대한 열정이 엄청난 분이시더라. 사실 대표팀 합류 전까지 개인적인 궁금증이 있었다. 라바리니 감독님이 대표팀을 이끈 후 선수들이 대표팀에만 다녀오면 한 뼘씩 성장해 있는 모습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직접 경험해 보니 선수들이 왜 성장하게 됐는지를 깨닫게 됐다. 체력적인 부담은 있지만 선수들 기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지도법을 갖고 계셨다. 그분을 통해 내가 더 많은 걸 배웠다.”
한송이는 김연경의 팀 내 존재감에 대해 “연경이의 간절함이 나를 울릴 정도”라고 말했다. 사진=국제배구연맹
―이번 대표팀에서도 김연경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연경이는 그냥 배구만 잘하는 선수가 아니다. 그냥 잘하는 선수가 아니라 코트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동료 선수들에게 큰 힘을 주고, 상대팀 선수들한테는 부담을 주는 카리스마의 소유자다. 국제대회를 치르다보면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을 경험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연경이가 앞에서 리드하며 후배들이 하나로 뭉치게 만들어준다. 연경이가 코트에서 버티면 다른 선수들도 버티는 것이고, 연경이가 할 수 있다고 외치면 선수들은 그 어려운 숙제들을 해내고 만다. 연경이는 선수들에게 이길 수 있다는 힘을 준다. 그건 어느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존재감이다.”
―세대교체를 표방했던 대표팀이 이번에는 30대 이상의 선수들을 대거 합류시켰다. 그로 인해 팀이 이전보다 더 단단해졌다는 평가도 받았는데.
“나를 비롯해 김해란, 김연경, 양효진, 김수지 등 30대 선수들은 ‘다음’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배구 인생에서 마지막 올림픽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더 간절한 마음을 갖고 코트에 나섰다. 특히 연경이의 간절함은 나를 울릴 정도였다.”
―김연경 선수가 복근이 찢어지는 부상을 안고 결승전에서 투혼을 발휘했다. 어느 정도의 부상이었나.
“일반적인 경기였다면 도저히 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진통제를 맞아가며 경기에 나선 것이다. 왜? 마지막 올림픽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마지막 올림픽 출전 티켓을 거머쥐기 위해 배를 부여잡고 뛰었다. 연경이뿐만 아니라 선수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재영이는 허리 통증으로 훈련에서 제외됐을 만큼 힘든 상태였다. (김)희진이도 종아리 파열로 굉장히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대회 기간이 길면 몸 관리를 하면서 경기 출전을 조절할 수 있지만 이번에는 결승전에서 이기지 못하면 ‘다음’이 없는 터라 무조건 이겨야만 했다. 그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얻은 (올림픽) 티켓이라 더 감동했고, 더 감격스러웠다.”
―태국과의 결승전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세터 이다영 선수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다.
“이제는 자신 있게 다영이를 향해 ‘한국 여자 배구를 대표하는 세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존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세터라고 말해주고 싶다. 소속팀에서 이도희 감독님의 지도를 잘 받았고 대표팀에서 라바리니 감독님의 지도력이 더해져 다영이의 재능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다. 짧은 시간 동안 다영이가 큰 성장을 이뤘다. 대표팀에서 재영, 다영 쌍둥이들의 활약은 단연 최고였다.”
―이재영-이다영 하니까 자매 선수인 한유미-한송이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어휴, 그들이 나와 언니가 갖고 있는 기량보다 한층 월등하다. 피지컬적으로나 멘탈면에서도 우리보다 앞서 있다. 특히 개인적으로 이재영을 높이 평가하는데 재영이는 기량도 뛰어나지만 코트에서 보이는 열정과 승부욕만큼은 어느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리그 상대팀 선수로 만났을 때 보다 대표팀에서 그의 승부욕이 얼마나 대단한지 직접 실감할 수 있었다. 대표팀에서 멘탈 강한 선수로 김연경, 이재영이 1, 2위를 다툴 것이다.”
―올림픽 예선은 유종의 미를 거두고 마무리됐지만 앞으로 큰 숙제가 남았다. 본선 무대에 어떤 선수가 대표팀에 합류하느냐의 여부다. 한송이 선수도 기대를 갖고 있지 않나.
“욕심 같아서는 함께 고생했던 선수들과 올림픽 무대에 다시 서고 싶지만 그것은 내가 결정할 수 없는 문제다. 지금은 리그 경기에 집중하면서 매 경기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대표팀에 있는 동안 내가 얼마나 부족한 점이 많은 선수인지를 깨달았다. 문제점들에 대한 해답을 안고 왔다는 점에서도 큰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 사람들은 자꾸 내 나이를 거론하지만 코트에서는 나이 의식하지 않고 경기에 나선다. 어느 때보다 몸 상태가 좋은 만큼 내 자리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게 당면한 숙제라고 생각한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