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주자가 지난 1975년 상장 이후 45년 만에 역대 최고가 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최근 연이어 52주 신고가를 경신하며 6만 2000원대까지 올라섰다. 최근 3개월 주가 상승률은 20.2%, 1년 전과 비교하면 50%를 넘어섰다. 삼성전자 주가 6만 원은 액면분할 전으로 환산하면 300만 원이다.
반도체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주가 상승을 이끌고 있다. 지난 1월 8일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잠정실적으로 매출 59조 원, 영업이익 7조 1000억 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당초 시장에선 영업이익을 6조 5000억 원으로 예상했는데 이를 크게 웃돌았다. 증권가에선 반도체 업황이 바닥을 찍고 올해 상승구간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을 내놓으며 목표가를 7만 원대까지 올려잡고 있다.
삼성전자 주가가 상장 이후 45년 만에 역대 최고가 행진을 지속하는 가운데, 경영권 승계와 그룹 지배구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박정훈 기자
그러나 삼성그룹 입장에서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전자 주가가 경영권 승계 문제와 그룹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대해서다.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0.7%로, 지배력은 낮다. 대신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을 통해 간접 지배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최대주주는 삼성생명이고, 삼성생명의 최대주주는 삼성물산이다. 삼성물산 주식이 한 주도 없었던 이 부회장은 지난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통해 물산을 지배하고, 이를 통해 삼성전자 지배력을 높였다.
대표 계열사의 지분이 1%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정당성을 희석시킬 수도 있다.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을 넘겨받으면 되지만 상황이 간단치가 않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 보통주 4.18%, 우선주 0.08%를 가지고 있다. 지분 가치는 현재 약 15조 원이다. 주가가 가파르게 오른 최근 한 달 사이 이 회장의 지분 가치는 2조 3000억 원이 올랐고, 범위를 1년으로 넓히면 5조 원으로 크게 늘었다. 앞으로 주가가 더 오르면 그 규모도 커진다.
국내 상속세율은 최고 50%다. 대주주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선 할증이 붙는데, 이 경우 세율은 65%까지 높아진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을 물려받기 위해 내야 하는 상속세는 약 9조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삼성생명 등 이건희 회장이 가진 다른 계열사 지분까지 물려받으면 상속세는 10조 원을 가뿐히 넘어선다.
현재 이재용 부회장이 가진 모든 삼성 계열사 지분 가치는 9조 원을 넘지 않는다. 이 회장의 삼성전자 및 계열사 지분을 넘겨받으려면 이 부회장은 사실상 가지고 있는 그룹 계열사 지분을 모두 팔거나, 담보로 내놓고 대출을 받아야 한다. 5년에 걸쳐 상속세를 연부연납해도 매년 내야 하는 세금은 2조 원 수준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과 이 부회장은 그동안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검찰 수사 및 재판을 받고 있고, 최근 준법감시위원회도 출범하면서 편법 등 ‘다른 방안’은 택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삼성전자 주가가 오르면 오를수록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약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주가 상승은 삼성이 2013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지배구조 개선 작업에도 큰 변수다. 앞서 삼성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삼성물산과 전자, SDI와 생명, 화재, 전기 등 6개 계열사가 얽힌 7개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고, 금산분리의 일환으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을 통해 삼성전자 주식 2700만 주(1조 3000억 원)를 처분했다. 현행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상 금융사의 비금융 계열사 보유 지분 한도는 10%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블록딜을 통해 보유 지분을 총 9.9%까지 낮췄다.
국회에 계류 중인 보험업법 개정안도 복병이다. 이는 상속세와 마찬가지로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력 약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보험업법 개정안은 보험사가 계열사 지분을 3%까지만 보유토록 규제하는 것이 골자다. 현행법은 취득가 기준이라 삼성이 규제를 받지 않고 있지만, 개정되면 시장가가 기준이 돼 규제대상에 오른다. 이 경우 삼성생명은 삼성 계열사 지분 총 26조 원, 삼성전자 지분만 19조 원 이상을 팔아야 한다. 결국 ‘이재용 부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박정훈 기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삼성물산 역할론’이 거론된다. 삼성도 한때 이를 유력하게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는 삼성물산이 실탄을 마련해,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을 인수하는 방안이다. 다만 현행 공정거래법을 보면, 지주회사는 상장사 자회사 지분을 20% 보유해야 한다. 삼성전자 지분 5%가량을 쥐고 있는 삼성물산이 추가로 지분을 취득하려면 현재 주가 기준으로 50조 원 이상을 쏟아 부어야 한다.
그러나 자본금 24조 원과 현금성 자산 2조 원을 가진 삼성물산 혼자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계열사를 총동원한다 해도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43.44%)을 삼성전자에 팔고 그 돈으로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 계열사 지분을 사는 방식도 거론되지만, 진행 중인 ‘분식 회계’ 검찰 수사와 재판 등 변수가 많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그동안 삼성은 물론 정부와 학계, 시민단체가 수년간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내놨지만,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처리와 관련해선 명쾌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삼성전자가 주가 상승으로 덩치가 커지면 커질수록 이 고민은 더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 밖에 주가 상승이 시장에 다른 방식으로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2019년 6월 처음 도입된 시가총액 비중 상한제도(CAP) 문제다. 이 제도는 매년 5월과 11월 마지막 매매 거래일 기준으로 직전 3개월 평균 코스피200 편입 비중이 30%를 초과하면 그 다음 달인 6월과 12월에 비중을 강제로 30%로 조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장이 특정 종목으로 과도하게 쏠리는 일을 완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제도 적용을 받으면 코스피200 지수를 기초로 하는 펀드는 관련 주식 비중을 최대 30%까지 낮춰야 한다.
삼성전자 시가총액비중은 이미 지난 1월 17일 종가 기준으로 코스피200의 33.17%를 차지했다. 만약 시가총액 비중 상한제도가 적용되면 거래소가 삼성전자 비중을 30%로 강제조정하게 되고, 이 경우 코스피200 지수를 따르는 펀드 등은 30% 초과분을 팔아야 한다. 시장이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현재 삼성전자 주가 흐름이 5월까지 계속 이어진다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만큼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