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적한 이종필 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왼쪽)이 호주로 도피한 정황이 일요신문에 포착됐다. 사진=연합뉴스
라임자산운용을 획기적으로 성장시킨 인물은 이종필 전 부사장이다. 2019년 10월 라임자산운용이 환매중단 사태로 기자회견을 열 때만 해도 투자자들은 제도권 금융사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이 있었다. 충격을 준 건 이 전 부사장이 잠적하면서부터다. 코스닥 상장사 리드에서 벌어진 800억 원대 횡령 사건에 대해 법원의 영장실질심사가 이뤄질 예정이던 2019년 11월 15일, 이 전 부사장은 돌연 출석하지 않았다. 그 후 이 전 부사장의 잠적은 기정사실화됐다. 이 전 부사장과 라임 사태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인물들 역시 줄줄이 잠적했다.
금융권에서는 이 전 부사장의 잠적기간이 길어지자 해외도피설이 제기됐다. 부산을 통해 밀항을 했다는 루머까지 나돌았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이 전 부사장 잠적으로 남은 가족들이 걱정돼 연락을 취해보니 생각보다 안정을 찾고 평온했다고 들었다. 이 전 부사장이 도피 후 안정적으로 지내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 싶었다”고 말했다.
재력가로 알려진 이 전 부사장의 부친 이 아무개 씨는 아들의 잠적이 알려진 시기에 장기 해외여행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에서 연일 아들의 도주와 잠적 관련 내용이 보도되며 떠들썩했을 시기였다. 심지어 부친 이 씨는 SNS를 통해 자신의 호주 여행 소식을 알리며 여러 장의 사진까지 찍어 올렸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도주한 아들을 만나러 해외로 떠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
이 씨는 라임자산운용의 전환사채(CB) 관련 첩보에서도 등장한다. 라임자산운용이 보유한 파티게임즈 CB 400억 원어치를 장외 투자자가 액면가 그대로 인수했는데, 상장폐지 위기에 있던 CB를 인수한 건 비정상적이란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이와 관련해 ‘CB 인수자가 이 전 부사장의 가족’이라는 첩보가 여러 경로를 통해 금감원에 제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요신문은 이 씨를 만나기 위해 그의 사업장을 찾았지만 관계자들은 ‘대표님이 늘 출근하시지는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대신 한 직원으로부터 이 전 부사장의 행방을 추측할 수 있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직원은 “대표님이 최근 호주에 다녀오셨다. 호주에 아들이 있어서 가셨다”고 말했다. 이 전 부사장은 독자로 여동생이 한 명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가 실제로 아들을 만나기 위해 호주에 갔다면 이 전 부사장의 행방을 추측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더군다나 호주는 범죄인 인도에 보수적인 국가로 알려져 있다.
2019년 10월 14일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이사가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연기 관련 기자간담회를 진행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 전 부사장은 라임자산운용 사태는 물론 연루된 코스닥 기업들의 비리 의혹에서도 중심에 있다. 사태 해결을 위해서라도 이 전 부사장의 신병 확보가 시급하다. 리드의 800억 원 횡령 사건은 주범이 모두 도주한 가운데 공판이 진행되고 있다. 검찰은 이 전 부사장이 리드 횡령 과정에 개입했다고 보고 있다.
전직 신한금융투자 직원 심 아무개 씨는 사태를 키운 핵심 인물로 지목됐다. 이 전 부사장에게 코스닥 시장에서 꾼으로 불리는 세력을 소개한 것도 심 씨라고 알려졌다. 한국경제 보도에 따르면 심 씨는 이 전 부사장에서 코스닥 업계 큰손인 김 아무개 회장을 소개했고, 라임자산운용은 김 회장의 권유로 리드에 투자하게 됐다. 심 씨의 입사동기를 비롯한 지인들 역시 라임 사태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 전 부사장과 라임 사태에 연루된 시장 큰손은 김 회장과 이 아무개 회장이다. 둘은 유명 연예인의 전 남편이란 공통점이 있다. 또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종사했던 이들은 손대는 기업마다 주가 등락과 상장폐지를 몰고 다니며 관련 혐의로 전과가 여럿 있다. 이들 역시 해외로 도피하거나 잠적한 상태다. 검찰은 리드 사건과 관련해 도주한 이 전 부사장과 심 씨, 김 회장 등에게 지명수배를 내리고 계속 추적하고 있다.
라임자산운용이 투자 바구니에 담았던 코스닥 업체들의 CB 편법거래는 진상규명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통상 장외에서 거래되는 CB 특성상 손바뀜이 여러 차례 이뤄질 경우 주인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금감원에서도 인물과 계좌를 특정해야 조회가 가능해 마구잡이로 발행된 CB가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들어갔는지 알기 어렵다.
금감원은 경쟁사나 관계자들의 CB 편법거래 첩보를 받았음에도 해당 부분을 다 살펴보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CB는 공시가 되지 않는 장외거래인 데다 수사권이 없는 금감원이 CB 거래를 역추적 하기는 힘들다. 다만 몇몇 거래에 관련해서는 리베이트가 이뤄진 것을 당국이 포착했다”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