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를 앞두고 배우 이성민이 주연을 맡은 영화가 동시에 개봉했다. 사진=리틀빅픽처스 제공
“사실 ‘미스터 주’가 제일 먼저 제작에 들어갔던 걸로 알고 있어요. 개봉이 늦어지다 보니 신선함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안타깝죠. ‘남산의 부장들’도 개봉일이 겹친 게 아쉽기도 하고 관객들에게 미안하고 또 민망해요. 저는 또 1월에 드라마에 나오잖아요(웃음). 그냥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여러 번 맞을 매 한 번 맞고 치우자. 이런 생각으로 제 멘탈을 잡고 있어요(웃음).”
1월 22일 동시 개봉한 이성민의 영화 ‘미스터 주’와 ‘남산의 부장들’은 그 타깃을 완벽하게 달리한다. 코미디를 겸비한 휴머니즘을 표방하는 ‘미스터 주’에서 이성민은 갑작스런 사고로 동물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국가정보국 에이스 요원 ‘주태주’로 분했다. 동물을 끔찍이 싫어하는 그가 사라져 버린 국가의 VIP를 찾기 위해 군견 ‘알리(목소리 역 신하균)’와 팀을 합쳐 세상에 다시 없을 색다른 합동 수사를 펼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남산의 부장들’은 엄청난 배우들과 같이 하는데, ‘미스터 주’에서 저는 셰퍼드랑 둘이 붙어야 하잖아요(웃음). 캐릭터가 그래도 덜 겹쳐서 좀 안심이에요. ‘남산의 부장들’을 보신 분들이 ‘미스터 주’를 보시면 또 다르게 느껴지시겠죠. 사실 ‘미스터 주’는 코미디를 메인으로 많이 홍보가 됐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그냥 코미디라기보다 가족들이 다 볼 수 있는 ‘가족 영화’, 휴먼 코미디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동물에 대한 거부감이 있던 이성민은 영화 ‘미스터 주’ 작업을 끝낸 후 동물을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사진=리틀빅픽처스 제공
“제가 사실 동물에 거부감 같은 게 있어요. 특히 고양이는 제가 좀 무서워하는데, 극 중에 고양이가 나오잖아요? 걔는 실제로 감독님이 집에서 키우고 계신 고양이예요. 집에 세 마리나 있더라고요(웃음). 옛날엔 고양이가 제 옆에만 와도 피하고 ‘저리 가!’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길에서 혼자 앉아 있는 길고양이 보면 불쌍하기도 하고 마음이 많이 변했어요. 알리와도 연기를 한 번 해보니까, 영화가 끝나고 나서 동물을 키워 보고 싶다는 생각도 갖게 됐죠. 딸도 키우고 싶어 하는데 집사람은 마당에서 키우자고 그래요. 요즘 누가 마당에서 개를 키워요, 작은 개를(웃음).”
동물을 멀리하고 싶어 했던 이성민의 본심과 다르게,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동물과 함께 한 작품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앞서 2018년 개봉한 ‘목격자’나 ‘공작’에서도 이성민은 자그마한 강아지들과 함께 했다.
“‘목격자’에선 가족사진을 찍어야 해서 강아지를 안고 있어야 했는데 제가 무서워서 못 찍겠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진경 씨가 안고 찍었어요. ‘공작’도, 저와 가까이에 있진 않았지만 강아지가 나오다 보니 되게 힘들게 찍었던 기억이 나요. 그나마 ‘공작’에서 강아지는 김정일이랑 붙어 있어서 다행이었죠, 저한텐(웃음)….”
알리와 ‘감독님의 고양이’를 제외한 모든 동물들을 CG로 처리하다 보니 제작진이 가장 신경을 써야 할 것은 이들의 연기가 아닌 목소리였다. 지금이야 쟁쟁한 배우들의 목소리 출연으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지만 캐스팅을 할 때는 난관에 난관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정말 쉽지 않았어요. 워낙 생소한 영화고, 동물이 말을 한다는 소재가 배우들에게 쉽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 같아요. 생각해 보세요, 갑자기 감독님이 전화 와서 ‘염소 (목소리) 할래요?’ 하시면…(웃음). 그래서 ‘알리’ 역을 하균이가 맡아 준다고 했을 때 너무 고마웠어요. 알리와 함께 벤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신에서 하균이의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너무 잘 어울리더라고요. 유인나 씨도 정말 사랑스럽게 잘 해주셨고, 이순재 선생님도 진짜 말도 안 되는 햄스터 역을 해주신 것이 너무 감사하고(웃음).”
앞서 2018년 ‘공작’에서도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 배우 이성민. 사진=리틀빅픽처스 제공
“‘남산의 부장들’에 출연하는 배우 중에 실존인물과 싱크로율이 제일 떨어지는 게 저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분장을 좀 더 하기로 했고, 그 분의 걸음걸이라든가 동작이라든가 그런 걸 유심히 관찰했죠. 그리고 실제로 그 당시에 그 분의 옷을 만드셨던 분이 제게 옷을 만들어 주셨는데 그때 그 핏을 기억하고 계시더라고요. 옷이 주는 이미지가 있어서 (박통과 닮아 보인다는) 착시도 있지 않았을까요? 원래는 살을 더 빼고 출연해야 했는데 그게 좀 아쉬워요. 그런데 제 옆에 (25kg를 증량한) 희준이가 있어서 걔 옆에 가면 제가 또 왜소해 보이더라고요(웃음).”
제작진은 정치적 메시지를 담지 않았다고 하지만, ‘남산의 부장들’은 개봉 전부터 의견이 분분했다. 보수적인 색채를 가진 대중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김재규를 미화한 영화”라며 평점 테러에 나서기도 했다. 실제 역사와 만들어진 신화 사이에 있는 그 인물을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걸 해도 되나?’라는 생각은 있었어요. 하지만 시나리오를 보니까 큰 걱정은 되지 않더라고요. 정치적인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기보다 또 다른 상상력을 가지고 만든 작품이니까. 아마 정서적으로 그 시대를 이해하실 수 있는 분들은 그 이해가 투영될수록, 베이스에 남아 있을수록 ‘남산의 부장들’을 보시는 데 훨씬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으실 거예요. 20일 VIP 시사회에서 보니까 관객 분들 가운데 나이 드신 분이 많으시더라고요. 그 분들께는 호기심이 가는 소재의 영화일 거라고 생각해요. 당시에 중앙정보부, 남산,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심장이 덜컥하고 내려 앉아 보신 분들은 굉장히 몰입해서 보실 거예요.”
2018년 ‘공작’에서 이성민을 기억하는 관객들은 ‘남산의 부장들’을 보며 남한과 북한 양측에서 상징적인 인물을 연기한 이성민의 연기력과 변신에 찬사를 보낼지 모른다.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가진 두 인물을 연기하면서도 완벽하게 구분될 수 있도록 그 농담을 절묘하게 조절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연기에 임하는 본인은 어땠을까.
영화 ‘미스터 주’ 스틸컷. 사진=리틀빅픽처스 제공
“‘공작’의 리처장 같은 경우엔 저에게 어떤 정보도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쪽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고, 어떤 정서를 가졌고, 또 어떤 의식이 있는지 모르니까 그 점이 가장 답답했죠. 반면 박통은 많은 데이터와 역사들이 있어서 참조할 수 있다는 게 수월한 지점이었어요. 또 ‘공작’ 같은 경우는 ‘구강 액션’, 입으로 말싸움을 하는 신이 많았는데 입으로 총을 쏘고 피하는 게 중요했죠. 반대로 ‘남산’은 대사가 많지 않은데, 대사가 없는 그 사이사이가 굉장히 중요한 영화예요. 다만 ‘남산’이 제게 어려웠던 건 제가 연기를 하면서 ‘이게 내 연기의 현명한 선택인가’ ‘과한가, 덜한가’ 이런 부분을 계속 고민해야 했다는 거죠. 그런 부분들은 그 당시 정서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 조금 더 너그럽게 봐주시지 않았나 싶어요.”
올해 신체 나이 52세, 배우 나이 35세를 맞이한 이성민은 여전히 숨죽지 않은 연기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2003년부터 2020년까지 단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스크린을 채워온 그에게 ‘지치다’라는 말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한결같은 열정으로 작품에 임할 수 있는 원동력에 대해 이성민은 “기준을 단순하게 잡기 때문”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했다.
“저는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큰 기준으로 삼는 것이 ‘내가 이 캐릭터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예요. 제가 그 캐릭터로서 ‘이 옷을 입을 수 있겠느냐’라고 묻는 거죠. 제가 봤을 때 저보다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 많이 떠오른다면 아무리 이야기가 재미있고 끌려도 거절합니다. 저는 제 부족함이나 약점을 잘 알고 있거든요. 그리고 그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제가 만일 어울리지 않는 역을 하면 고통스러울 것이라고도 예상되고, 또 그 상태에서 ‘저 사람이 하면 더 잘 어울릴 텐데’라고 생각하는 것도 겁이 나요. 제가 그래서 그런 역을 안 하죠(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