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공양을 마치면 스님은 늘 포행을 했다고 한다. 비 오는 날도, 눈 오는 날도 멈추는 법이 없었다니 그것은 산책이면서 수행이었으리라. 아마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포행에 나섰던 모양이다.
죽음은 삶을 닮는다. 포행하며 살다 포행하다 가셨으니 누구보다도 자연스러운 생(生)일 테지만 도대체 죽음을 끝으로만 인지하는 중생으로서는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스님은 어디로 가셨을까.
이주향 수원대 교수
젊은 날 스님은 어느 공간을 탐스럽게 지키고 있는 꽃을 보았단다. 꽃이 아름다워서 꽃을 향해 걸어가다가 문득, 발길을 멈춰버렸단다. 순간 알아챘다는 것이다. 꽃이 거기 없다는 사실을. 저게 무슨 얘기지, 호기심이 생겨 집중하며 듣고 있는데 스님이 말을 이어갔다. 자기가 아름다움에 취해서 걸어간 거기에 있었던 것은 꽃이 아니라 거울이었다는 것이다. 본래 우리의 마음은 바로 그 거울과 같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비추지만 비추는 어떤 것도 아닌 거울!
나는 그때 스님이 거기에 덧붙였던 한 말씀을 잊지 못한다. “한 번 속지, 두 번 속나요.”
한 번 속지, 두 번 속나요? 그렇게 되뇌었던 그 말씀에 움찔했던 이유가 있다. 아무 말 없이 앉아있었지만 나는 두 번 속고 세 번 속는 나를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내 마음에 내가 속고 속을 때마다 그 말씀이 생각났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중에라도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그때 그 사람이 잘못해서 우리가 미워한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기대가 그를 질책한 것일 때가 종종 있지 않았는지. 그 사람이 우리의 발목을 잡은 것이 아니라 그 사람 기대에 부응하느라 희생했던 우리의 행위가 발목을 잡은 것은 아닌지.
마음은 거울이다. 비추는 대로 드러나지만 거울이 드러내는 것은 거울 속에 있지 않다. 좋아 보인 것도 거기 없고, 나빠 보인 것도 거기 없다. 좋아 보인 것을 쫓아 잡으려 하면 만져지는 것은 좋아 보인 그 대상이 아니라 거울의 표면이다. 나빠 보인 것을 미워해 욕하다 보면 미워지는 것은 내 표정이다.
거울에 나타나는 것은 실체가 아니라 내 마음의 그림자다. 적명 스님이 말했다. 다른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라고. 다른 사람에 대해 내가 느끼고 인식하고 행동하는 그 양식이 바로 나 자신을 설명해준다는 뜻이리라. 세상이, 사람이 나를 자극할 때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은 자극한 그 대상에서 온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서 온 것이다. 그러니 쫓아가 집착하거나 미워할 일이 아니라 멈추고 살필 일이다.
집착하고 미워하다 나타나는 삶의 무늬가 있다. 사랑의 기쁨이나 이별의 슬픔, 질투의 분노나 시기의 분탕질 같은 것들! 나를 들뜨게도 하고 고통스럽게도 하는 그 모든 감정의 무늬는 대상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마음에서 온다.
그렇게 들끓는 감정들이 마음의 그림자임을 알아 멈춰서 살필 수 있다면! 마음을 고요하게 살필 수 있는 힘이 없으니 우리는 삶에 속고, 사랑에 속고, 사람에 속는 것이다. 사람이 속이고 사랑이 속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속는 것이다. 한 번 속고, 두 번 속고, 백 번 속는 것이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