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트리온 3형제 합병 가능성은 증권가의 해묵은 이슈다. 2017년 셀트리온헬스케어가 코스닥 시장에 상장되던 시기를 전후로 일감 몰아주기와 공매도 논란 등이 불거질 때마다 제기돼 왔다. 셀트리온은 그때마다 “당장 합병 계획은 없다”며 선을 그어왔다.
그런데 서정진 회장이 최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주주들이 원한다면 내년에라도 셀트리온 3형제를 합병하겠다”고 밝혔다. 서 회장은 지난해 1월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주주들만 동의하면 추진할 의사를 갖고 있다”고만 했는데, 이번에는 ‘내년’이라는 구체적인 시기까지 제시했다.
여기에 셀트리온 측도 서 회장의 발언 다음날 공시를 통해 “주주들의 찬성 비율이 높다는 전제하에 합병에 대한 내부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밝히면서 기존 ‘합병 불가’ 방침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올해 합병 논의가 구체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이 최근 “주주들이 원하면 셀트리온, 셀트리온헬스케어, 셀트리온제약을 합병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진=박정훈 기자
합병이 된다면 셀트리온이 나머지 두 회사를 흡수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이 경우 국내 증시 판도부터 크게 바뀐다. 코스닥 시장 대장주(시가총액 1위) 셀트리온헬스케어와 셀트리온제약(16위)가 셀트리온이 상장된 코스피 시장으로 한 번에 옮겨가기 때문이다. 현재 기준 이들의 시가총액 합은 약 32조 원(셀트리온 23조 원, 셀트리온헬스케어 7조 9000억 원, 셀트리온제약 1조 5000억 원)이다.
시장과 업계에선 최근 셀트리온 합병과 관련해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각종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합병을 낙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합병 비율 산정이 대표적인 난제다. 서정진 회장과 주주들의 이해관계가 대립하면서 생기는 문제다. 서 회장 입장에서는 자신이 최대주주(35.69%)로 있는 셀트리온헬스케어의 가치를 높게 인정받으면 그룹 지배력 강화에 유리하다. 반대로 셀트리온 주주들은 셀트리온헬스케어의 가치가 낮게 평가될수록 더 큰 이익을 볼 수 있다.
현재 셀트리온그룹의 지배구조는 최정점에 서 회장이 있고, 다시 두 갈래로 나뉜다. 한 갈래는 ‘서정진 회장→셀트리온→셀트리온제약’이다. 다른 한 갈래는 ‘서정진 회장→셀트리온헬스케어’다. 서 회장은 셀트리온그룹 지주사인 셀트리온홀딩스 지분 95.51%를 가진 최대주주고, 셀트리온헬스케어에서도 지분 35.69%를 보유해 최대주주로 올라있다. 셀트리온홀딩스는 셀트리온 지분 20.01%를, 셀트리온은 다시 셀트리온제약의 지분 54.99%를 가지고 있다.
셀트리온홀딩스는 서 회장이 지분 95% 이상을 들고 있는 만큼 사실상 본인 회사나 다름없다. 따라서 합병이 진행돼도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데에는 큰 변화가 없다. 합병 대상인 셀트리온 3형제는 모두 상장기업이어서 자본시장법에 따라 기준주가를 산정한 뒤 이를 바탕으로 합병비율을 산정하게 된다. 향후 셀트리온 3형제 주가가 한 쪽만 오르고 나머지는 내리는 식으로 변동되면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인천시 연수구 셀트리온 본사. 사진=이종현 기자
특히 이 과정에서 만약 셀트리온헬스케어 지분 가치가 높아지는 경우, 셀트리온 지분 가치는 상대적으로 낮아지게 된다. 이때 서 회장은 셀트리온헬스케어 지분으로 더 많은 합병법인의 지분을 갖게 되는 만큼 주주들의 불만은 물론, 자칫 서 회장이 개인 이익을 위해 합병을 추진한다는 오해도 살 수 있다. 업계에선 이를 서 회장이 “주주들이 동의하면”이라는 조건을 달았던 이유 가운데 하나로 해석하고 있다.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는 경우도 변수다. 각 회사들은 대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합병 시점에 주가가 행사가보다 낮다면 주식매수청구로 쏠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회사들의 시가총액이 수조 원에 달하고 있는 만큼 주식매수대금 조달 금액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셀트리온 측은 주주들에게 합병 이후 실적이 개선돼 주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설득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서 회장은 앞서의 JP모건 콘퍼런스에서 합병 후에도 수익률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50% 이상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 밖에 셀트리온의 고질적인 논란거리인 ‘공매도 폭탄’도 문제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셀트리온은 유가증권 시장 공매도 잔액이 2조 1000억 원대로 1위다. 합병을 전후로 공매도가 더 거세지면 주가 변동성이 커져 합병의 심각한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합병 실익이 없는 건 아니다. 성사되면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해소할 수 있다. 현재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직접적인 지분 관계가 없어 계열사가 아닌 별도 회사다.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셀트리온 바이오시밀러 수출 독점권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셀트리온 전체 매출의 80% 수준이 셀트리온헬스케어에 대한 바이오시밀러 판매에서 발생했다. 일감 몰아주기 논란과 동시에 ‘서정진 회장이 최대 수혜자’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이유다. 셀트리온이 셀트리온을 흡수·합병하게 되면 한 회사에서 생산과 판매가 모두 이뤄지는 만큼 논란과 지적은 해소된다.
다만 일각에선 합병을 제외하고도 일감 몰아주기 논란 해소를 위한 다른 방법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서 회장이 셀트리온헬스케어 지분을 30% 이하로 낮추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자산이 5조 원 이상인 기업집단은 총수 지분이 30%(상장 계열사)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오른다.
금융투자(IB)업계 관계자는 “합병으로 지배구조나 총수 지배력 변화는 거의 없고, 굳이 복잡한 일을 만들지 않고도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피할 방법이 있어서 나오는 주장”이라며 “다만 이 방식은 논란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건 아니다. 또 합병하면 사실상 생산과 판매를 한 번에 하는 다국적제약사들과 같은 사업구조가 된다. 시너지 효과는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 회장이 합병 언급과 함께 은퇴까지 선언한 만큼, 올해 최대 과제를 풀고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고 덧붙였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제약 주주 보상·국민연금과의 관계’ 셀트리온 합병 이후 숙제는? 셀트리온·셀트리온헬스케어·셀트리온제약, 셀트리온 3형제가 합병에 성공해도 꽃길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그룹 내 사업 모델의 변화는 물론 셀트리온제약 주주에 대한 보상 부담, 국민연금과의 관계 설정이 숙제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합병은 주주총회 특별결의 요건이다. 과반 이상 출석에 출석의결권 3분의 2 이상, 총발행주식의 3분의 1 동의가 필요하다. 셀트리온의 특수관계인 지분은 22.7%. 재무적투자자인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자회사 아이온인베스트먼트 지분 9.53%까지 합하면 3분의 1 확보는 가능하다. 문제는 합병 이후다. 우선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사업 모델을 손봐야 한다. 셀트리온헬스케어는 그동안 셀트리온에서 사온 제품을 재고로 보유했다가 원매자가 나타나면 파는 사업모델을 구축해왔다. 셀트리온은 일단 물건을 팔고 대금을 받아 양호한 현금흐름을 유지할 수 있었다. 대신 자금부담은 셀트리온헬스케어의 몫이었다. 앞서 셀트리온헬스케어는 2017년 상장을 통해 대규모 자본을 조달, 재무구조 악화를 피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줄곧 영업현금흐름은 적자를 기록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셀트리온이 셀트리온헬스케어를 흡수한다면 안정적인 매출 대금 확보가 어렵게 된다. 재고부담도 직접 져야 한다. 셀트리온제약 주주에 대한 보상도 부담이다. 셀트리온제약은 바이오가 아닌 화학 기반 의약품 생산이 주력인 업체이지만, 셀트리온이 만든 램시마와 트룩시마 등 바이오의약품 판매도 일부 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으로 자기자본 2751억 원에 매출액 1278억 원 규모다. 지난해 3분기 말까지 영업이익은 100억 원도 안 되지만, 시총은 무려 1조 4000억 원에 달한다. 바이오의약품 판권 덕분이다. 셀트리온이 55%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나머지 45%를 위해 6000억 원 넘는 값을 치러야 한다. 합병법인이 고스란히 짊어져야 할 몫이다. 합병이 될 경우, 국민연금과의 관계 설정도 풀어야 할 숙제다. 2018년부터 셀트리온 지분을 매입해오고 있는 국민연금의 현재 지분율은 8.1%. 셀트리온 주가는 2018년 3월 36만 7848원으로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이후 줄곧 하락, 현재는 17만 원선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투자 성과가 아직 없는 셈이다. 합병에 따른 부담이 셀트리온에게 집중된다는 점에서 합병 이후 국민연금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최열희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