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야구인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는 이정후-이종범 부자는 대표팀에서 코치와 선수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근 이종범 전 코치는 일요신문과 만나 자신이 야구인 이종범이 아니라 ‘이정후 아버지’ 이종범으로 살고 있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정후가 프로 데뷔하기 전까지만 해도 ‘바람의 손자’에 머물렀다면 2017년 넥센(키움)의 1차 지명을 받고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은 후에는 매년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주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정후는 데뷔 첫 해 신인왕을 수상했고, 2년 연속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얼마 전에는 구단과 연봉 협상을 통해 지난 시즌 2억 3000만 원에서 1억 6000만 원(69.6%) 인상된 3억 9000만 원에 계약을 마쳤다. 이정후의 연봉 3억 9000만 원은 역대 KBO 리그 4년차 최고 연봉이다. 종전 기록인 류현진(2009시즌)의 4년차 연봉 2억 4000만 원을 넘어선 액수다.
‘야구인 2세’가 많지만 이정후처럼 빠른 시간에 팀의 중심 타자로 성장한 사례는 없었다. 이에 대해 아버지 이종범 전 코치는 “정후의 나이가 야구를 잘할 수밖에 없는 때”라고 설명한다.
“지금은 자신이 할 일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2~3년은 더 성장해 나갈 것이다. 커리어가 쌓이고, 후배들을 챙기고, 선배들을 존중하며 구단의 운영 방침 등을 살펴야 하는 시기가 되면 야구에 대한 집중도가 다소 떨어질 수 있다. 분명 그런 시기가 올 것이다. 지금의 모습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더 노력하고 미리 준비해두라고 이야기해주고 있다.”
이 전 코치는 아들에게 스윙 스피드를 빨리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해준 것 외에는 야구를 가르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정후가 속한 팀의 감독, 코치, 선배들이 있는 곳에서 야구를 배우는 게 중요했다.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노력해야 할 것이고, 참고 견뎌야 한다. 정후 스스로 그 과정을 혼자 힘으로 버텨내길 바랐다. 무엇보다 정후가 하고 있는 야구가 있는데 내가 개입해버리면 혼란을 느낄 것 같았다.”
이 전 코치는 이정후의 인기에 힘입어 야구팬들이 자신을 ‘이종범’이란 이름 대신 ‘이정후 아버지’라고 부르는 현실을 ‘쿨’하게 인정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마음도 들었지만 지금은 그 호칭이 훨씬 더 편하게 들린다는 말도 덧붙였다. 천상 야구인인 이 전 코치는 아들을 통해 자극을 받는다는 솔직한 이야기와 함께 “‘이정후 아버지’로 사는 것도 쉽지 않다”는 말을 털어 놓는다.
“자식이 성장하고, 아버지가 나이 들면 왜 흰머리가 나고 밥맛이 없어지는지 알았다. 정후가 어른이 될수록 아빠의 삶, 아빠의 야구를 이해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22년 만에 두산 베어스로 돌아간 김상진 투수 코치의 아들도 고교야구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인천고 3학년에 재학 중인 김웅은 야구팬들 사이에서 2021년 신인드래프트 1차지명 후보로 꼽히는 유망주다. 인천 동산중학교 출신인 김웅은 2017년 제64회 전국 중학야구선수권대회에서 동산중이 21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아버지와 같이 우완 투수인 김웅은 이 대회에서 우수 투수상을 수상했다. 김상진 코치는 아들이 중학교 때까지는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고등학교에서는 파워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한다.
“야구인 아버지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아들이 야구하는 걸 반대했다. 공부를 통해 나와 다른 길을 가기를 바랐는데 아들이 야구 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아들이 어렸을 때는 내가 어떻게 야구했는지 잘 몰랐다. 성장하면서 서서히 알게 됐는데 한 번은 아들이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아버지가 어떤 선수였는지 잘 몰랐는데 지금은 아버지의 존재감을 느낀다’라고.”
김웅은 자신의 롤 모델로 이정후를 꼽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 이유가 몹시 궁금했다.
“아들한테 이정후를 롤 모델로 꼽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봤더니 아버지가 이종범 대선배님이란 사실을 극복해낸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고 말하더라. 자신도 그렇게 하고 싶다면서. 아들의 이야기에 나도 한 마디 보탰다. ‘야구인 김상진은 크게 두려울 게 없는데 김웅 아버지 김상진은 신경 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 같다’라고 말이다.”
김 코치는 삼성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을 때 당시 선수였던 이승엽을 보고 느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말했다.
“슈퍼스타와 스타는 깻잎 한 장 차이라고 하는데 이승엽을 보면서 슈퍼스타는 실력만으로 인정받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모든 일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속으로 삭일 줄도 알고, 자신을 낮추는 선수가 이승엽이었다. 나는 승엽이처럼 그런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그래서 슈퍼스타가 될 수 없었다. 내 아들뿐 아니라 내가 지도하는 모든 선수가 스타 말고 슈퍼스타를 꿈꾸었으면 좋겠다. 실력 외에 더 많은 걸 채우는 그런 선수가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두산에서 오랜 백업 선수로 활약하다 2019시즌부터 두산의 안방마님으로 첫 풀타임을 소화한 박세혁. 그의 아버지는 해태(KIA) 타이거즈의 강타자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박철우 두산 퓨처스 감독이다. 박세혁은 2018년까지만 해도 같은 포지션에 양의지라는 큰 산이 존재했다. 그러나 양의지가 FA(자유계약)를 통해 NC 다이노스로 이적하면서 주전 포수 자리를 맡았다. 덕분에 그는 2019시즌 동안 137경기에 출전해 타율 0.279 4홈런 63타점을 올렸다. 공수에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친 덕분에 두산이 통합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다.
두산 포수 박세혁은 오랜 백업생활 끝에 2019시즌부터 성공한 야구인 2세 반열에 올라섰다. 사진=고성준 기자
덕분에 박세혁은 지난 연말 일구상 시상식에서 일구회 선배들로부터 ‘의지노력상’을 수상했다. 그는 시상식에서 첫 풀타임을 소화한 원동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잘 먹고, 아버지로부터 유전자를 잘 물려받은 것 같다”면서 “아버지! 이젠 걱정하지 마시고, 뒤에서 묵묵히 지켜봐주셨으면 좋겠다.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박세혁-박철우 부자의 사례가 특이한 건 야구 선후배라는 사실을 뛰어 넘어 아예 같은 유니폼을 입고 활약 중인 데다 박세혁이 2군에 있을 때는 아버지와 함께 한 팀에서 뛰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야구만 보고 접근한 두산 구단의 균형감 있는 시선과 두 부자의 남다른 노력이 더해져 올 시즌에도 박세혁은 팀의 주전 포수로, 아버지는 퓨처스팀 감독으로 계속 활약할 예정이다.
‘야구인 2세’의 아버지도 힘들지만 야구 시작하면서 ‘누구의 아들’이라는 수식어를 안고 사는 2세들도 어려운 길을 가는 건 마찬가지다. ‘야구인 2세’를 대표하는 이정후는 되도록 아버지의 그늘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한다.
“어렸을 때부터 ‘이종범 선수 아들’로 주목을 받았기 때문에 부담을 안고 야구했다. 프로 데뷔 후에는 누구의 아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엄청난 관심과 화제를 모았다. 내가 일어서지 못하면 나는 영원히 ‘이정후’란 이름보다 ‘이종범 선수 아들’로 기억될 것만 같았다. 아버지의 명성에 누가 될까봐 걱정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나만의 야구, 우리 팀 야구에 집중하면서 이정후라는 이름을 살려갈 수 있었다. 내가 아버지 아들로 많은 일들을 겪었듯이 아버지도 이정후 아버지로 그 길을 가보셔야 내 마음을 이해하실 것이다(웃음).”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