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추가 지원 여부를 두고 KDB산업은행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사진은 쌍용차 이사회 의장인 파완 고엔카 마힌드라 사장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DB산업은행 건물로 들어서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탈출구 못찾는 쌍용차, 불거진 마힌드라 역할론
방한한 인도 마힌드라그룹 파완 고엔카 사장은 지난 16일 이동걸 산업은행장을 만나 쌍용차에 대한 추가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쌍용차 지분 74.65%를 보유한 인도 마힌드라그룹이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쌍용차의 ‘경영 정상화’를 이유로 자금을 요청한 것. 마힌드라 측은 쌍용차의 정상화를 위해 3년간 5000억 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그 가운데 2300억 원을 직접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나머지 2700억 원은 산은과 우리 정부의 몫으로 남겨둔 셈이다.
쌍용차는 2009년 법정관리를 거쳐 2011년 3월 마힌드라그룹에 인수됐다. 이후 2016년 소형 SUV 티볼리의 선전으로 반짝 흑자를 기록한 이래 다시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마힌드라그룹은 2013년과 지난해 각각 800억 원과 500억 원 두 차례 유상증자를 실시한 바 있지만 그 외에 추가적인 지원은 하지 않았다.
지난해 실시된 유상증자는 인도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과 만난 뒤 이뤄졌다. 당시 마힌드라 회장은 “향후 3~4년 내 쌍용차에 1조 3000억 원을 추가 투자하겠다”고 언급했지만 현재까지 투자액은 앞서 밝힌 1300억 원이 전부다. 당시 쌍용차 측에서도 마힌드라 회장이 밝힌 1조 3000억 원에 대해 마힌드라 측의 일방적인 지원이 아닌 ‘자체조달’하는 투자금이라고 밝힌 바 있다. 판매수익이나 금융권 대출 등을 통해 투자금을 마련, 연구개발에 투자한다는 설명이다.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쌍용차는 2017년과 2018년 각각 1912억 원, 2016억 원을 연구개발비로 활용했다. 문제는 이 같은 투자가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쌍용차는 지난해에도 신차 개발 계획을 연기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마힌드라가 모기업으로서 쌍용차의 글로벌 시장 개척에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쌍용차 입장에서 수익성 개선을 위해서는 글로벌 시장 개척이 필수적이다. 실제 흑자를 봤던 2016년 쌍용차는 내수 10만 3554대, 수출로 5만 2290대를 판매했지만 2019년 내수 10만 7789대, 수출은 2만 7446대로 줄어들었다. 국내 시장 판매량 변화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수출이 급격하게 줄어든 셈이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지난해 쌍용차의 수출 판매량이 반토막났다. 내수 시장은 한계가 있는 만큼 해외에 수출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하는데, 인도 시장을 넓히는 등의 역할을 모기업인 마힌드라가 해줘야 한다. 마힌드라가 GM이나 르노 같은 세계적 기업이 아니라 어려움은 있겠지만, 책임을 갖고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마힌드라의 투자와 함께 정부 또한 R&D 세제 혜택 등 직간접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명분’ 찾는 산은의 깊어져가는 고민
추가 지원 요청과 관련해 마힌드라가 총선을 앞둔 국내의 정치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벌써 정치권에서는 쌍용차를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기도 평택이 지역구인 자유한국당 원유철 의원과 새로운보수당 유의동 의원은 지난 21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쌍용차에 대한 정부 지원을 요청했다. 두 의원은 “쌍용차에 대한 지원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식 묻지마 지원이 아니다. 단순히 기업 살리는 일 아니라 수만 명의 국민과 평택시를 살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두 의원은 같은 날 산은을 방문해 이동걸 산업은행장과 간담회를 갖고 산은의 쌍용차 지원을 요청했다.
또 마힌드라 경영진들은 이동걸 산업은행장과 만남을 가진 다음 날인 17일 이목희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과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정부 지원을 요청했다. 사실상 일자리를 볼모로 산은과 정치권을 압박한 셈이다. 다만 이 부위원장과 문 위원장 또한 이 산업은행장처럼 마힌드라에 ‘자구 노력’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마힌드라의 행보는 2018년 GM이 보인 행보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산은의 고민이 깊다. GM은 지방선거를 네 달 앞둔 2018년 2월 전북 군산 공장 폐쇄를 발표했고, 결국 산은은 선거를 목전에 둔 2018년 4월 GM에 8100억 원을 지원키로 결정했다.
재계에서는 산은이 명분을 챙기면서 쌍용차를 지원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쌍용차의 경우 타 기업과 달리 노사가 뭉쳐 경영쇄신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GM의 경우 산은이 정치권의 눈치를 보고 지원을 해줬던 만큼, 이번에도 정부가 나서서 산은의 투자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한 재계 관계자는 “산은이 정권이 바뀐 뒤 예전에 비해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면서 “정부가 압력을 행사하더라도 최소한의 명분을 요구하고, 대주주의 투자를 전제로 도움을 주려할 것”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마한드라 측에서 산업은행에 추가 금융지원 이외에도 대출 만기 연장 요구를 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쌍용차는 올해 산은에 900억 원의 대출금을 갚아야 하고, 이 가운데 700억 원이 오는 7월 만기가 돌아온다. 산은은 지난해에도 쌍용차의 요청에 의해 평택 공장을 담보로 1000억 원을 대출해주고, 지난 12월 만기였던 대출금 200억 원의 상환을 연기해준 바 있다.
이에 대해 산은은 마힌드라 경영진과의 만남이 의례적인 면담이었으며, 사업 계획 등을 받은 것이 없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산은 측은 “쌍용차가 충분하고도 합당한 수준의 실현 가능한 경영계획을 통해,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동참과 협조 하에 조속히 정상화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