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2일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형사2단독 재판부는 강원도 강릉에 엠페이스 지점을 내고 영업을 이어온 운영진 2명에게 사기와 방문판매법 등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며 각각 징역 2년과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엠페이스 운영진 2명이 모기업인 MBI인터내셔널(MBI) 회장 테디 토우가 기소돼 회사 운영이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피해자들에게 허위로 원금 보장과 투자 수익을 약속했고, 다단계 방문판매 업체 등록을 하지 않고 불법 영업했다고 판단했다. 엠페이스 운영진에게 사기 혐의가 인정된 첫 판결이다.
실형을 선고받은 운영진 2명 가운데 A 씨는 다단계 피라미드에서 5단계 레벨로, 2017년 9월에도 엠페이스 강릉 지점을 운영하다가 방문판매법 위반으로 1년 4월 실형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으며 집행유예 기간에도 불법 영업을 이어갔다. A 씨는 2015년 9월부터 2019년 4월까지 강릉 지점을 운영하면서 투자금 약 103억 원을 불법적으로 끌어들였다.
엠페이스는 일종의 국제 다단계다. 엠페이스가 국내에 처음 등장한 시기는 2012년 5월이다. 사기 총책과 운영진은 피해자들에게 엠페이스를 MBI라는 말레이시아 중견기업이 개발한 소셜미디어라고 소개하며 광고권을 파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엠페이스를 중화권 7억 5000만 명이 이용하는 세계적 소셜미디어라며 페이스북, 트위터에 빗대어 홍보했다고 전해진다.
사기 총책과 운영진은 세계적인 소셜미디어인 엠페이스의 광고권에 투자하면 안정적인 수익을 손에 쥘 수 있다고 설명해왔다. 광고권 가입비는 계좌당 최소 5000달러(한화 약 590만 원) 수준이었다. 피해자들의 투자 규모는 천차만별이었다. 주로 소셜미디어에 대한 이해가 낮은 50~60대 은퇴한 중장년층이 피해 대상이었다.
창원에 사는 60대 엠페이스 피해자 B 씨는 “엠페이스를 본 적은 없지만 돈을 벌었다는 지인들의 추천으로 투자했다. 모기업인 MBI가 말레이시아의 항공사 기내와 외부에 전면 광고를 했다고 하길래 믿었다”고 전했다.
2013년부터 사기 피해 주장이 나왔지만 엠페이스는 현재까지도 버젓이 회원을 모집하며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알려졌다. 그 사이 회원이 5만 명까지 늘어났다고 피해자 단체는 추정했다. 피해 금액은 최소 2조 원에 달한다고 봤다. 엠페이스 회원 2000명은 2019년 2월 전국 엠페이스 총책과 운영진을 사기와 방문판매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엠페이스 피해자들은 2019년 6월 28일 말레이시아 대사관을 찾아 불법다단계 엠페이스 모기업 MBI에 대한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
사기 총책과 운영진 상대로 한 수사와 고소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다만 같은 혐의를 두고 사법 당국의 판단이 일관되지 않아 그 효과는 크지 않았다. 2013년 3월 검찰은 엠페이스 운영진을 소환해 수사한 뒤 불법유사수신 혐의로 입건했다. 하지만 2년 2개월에 걸친 심리 끝에 대법원은 2015년 5월 운영진에게 무죄를 최종 선고했다. 법원은 피해자들에게 원금을 보장한 적이 없다는 운영진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곧바로 2015년 5월 경북 지역 운영진 불법행위가 포착됐다. 경찰은 대구에서 지점을 내고 20억 원이 넘는 무등록 불법 금융상품(앞서의 광고권)을 팔아온 일당을 검거했다. 울산지방법원은 이들에게 2015년 12월 방문판매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월을 선고했다. 혐의자가 달라지긴 했지만 같은 불법 행위를 두고 불과 몇 개월 만에 법원이 판결을 달리한 셈이다. 다만 이때도 사기 혐의는 인정되진 않았다.
이처럼 법원이 각기 다른 판단을 내리면서 피해를 키웠다는 주장도 나온다. 조성은 엠페이스피해자모임 대표는 “규모가 크다 보니까 사건이 지역 검찰과 법원에 분배됐다. 무죄가 나오거나 유죄가 나와도 사기 혐의는 인정되지 않고 방문판매법 위반 혐의만 적용됐다”며 “총책이나 운영진은 실수로 방문 판매업 등록을 하지 않아서 그렇다며 피해자들을 안심시켰고 피해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인터넷에선 엠페이스 운영진이 사기 혐의로 고소됐지만 대법원 최종 무죄 판결이 났다며 영업을 독려하는 글이 보이기도 한다.
피해 규모가 점차 커지자 경찰은 2016년 5월께 수원서부경찰서를 중심으로 전국 통합수사를 펼치며 엠페이스 일망타진에 나서기도 했다. 그 결과 2017년 9월 당시 600억 원 투자금을 받아 챙긴 1레벨과 2레벨에 해당하는 엠페이스 운영진 2명이 징역 5년 실형을 선고 받은 뒤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기도 했지만 이 또한 무허가 다단계 업체를 운영했다는 혐의에 그쳤다. 2019년 12월 5일 대구지방검찰청은 대구 운영진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투자를 권유한 것일 뿐 사기로 보기 어렵다는 검찰의 판단이었다.
조성은 엠페이스피해자모임 대표는 “검찰의 무혐의 처분과, 법원의 무죄 판결을 등에 업고 엠페이스 운영진은 더 기세등등해져서 피해자를 만들었다”며 “이번 강릉지원 판결을 시작으로 일관된 판결이 나와 더는 피해자가 나오질 않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처음으로 사기 혐의가 인정된 운영진 2명은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항소심과 엠페이스 사기사건 대부분의 변론을 맡은 이 아무개 변호사는 “1심 판결일 뿐 사기 혐의가 확정된 건 아니다. 엠페이스의 사기성은 논외로 하고, 현재 사기 혐의가 인정된 사람들도 일개 회원일 뿐”이라며 “자세한 변론은 법정에서 하겠다”고 전했다.
일요신문은 엠페이스 한국 대표로 알려진 인물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입장을 들을 순 없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