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직 7급 공무원 채용에 피셋이 도입되며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2018년 세종시 지방공무원 7급 임용 필기시험을 마친 응시생들이 귀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피셋은 5급 행정고시 수험생의 1차 시험으로 언어논리, 자료해석, 상황판단 등 세 가지 과목으로 구성된다. 2004년 행정고시에 도입돼 지금까지 활용됐다. 바뀌는 7급 공채는 기존의 국어와 한국사 과목이 없어지고 이를 피셋과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 대체한다. 7급 1차시험인 피셋은 언어논리·자료해석·상황판단 3개 영역 25문항씩(60분) 총 75문항(180분)으로 치러진다. 1차 피셋에서는 10배수로 합격자를 선발한다.
기존 수험생들은 강하게 불만을 토로한다. 성급하게 7급 공채에 피셋이 도입되며 혼란이 가중되는 점, 국가직과 지방직 7급 시험이 달라져 공부범위가 늘어나는 것 등의 문제다. 기존 언어 과목은 한자, 고전시가, 비문학, 문학, 문법 등 여러 파트로 구성됐다. 언어는 특히 암기를 요하는 부분이 제법 있었다. 기존 시험에 익숙한 수험생으로선 피셋이 낯설고 적응을 위해 필요한 시간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 국가직 7급 채용에만 피셋이 도입돼, 지방직 7급까지 지원하던 준비생들은 기존 유형과 피셋 모두 공부해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 최근 7급에 입직한 한 공무원은 “피셋 도입은 결국 수험생 입장에서 공부범위가 넓어져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 많은 수험생들은 피셋을 ‘공부해도 점수가 오르지 않는 시험’으로 인식해 더 불안감을 많이 느낀다. 수험생 사이에서 피셋은 공공연하게 ‘될놈될’ 시험으로 불린다. 피셋에 적합한 인재는 별다른 노력을 들이지 않고 손쉽게 합격하는 반면, 아무리 공부해도 성적이 제자리인 사람이 수두룩하다는 것.
일례로 대학에서 행시1차 합격자에게 장학금을 주자 의예과·약학과 학생들이 우르르 피셋을 보고 장학금을 타낸 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상위권 일부 대학에서 이공계나 의약계열 학생들이 ‘장학금 헌터’로 피셋을 악용하는 사례가 사회적인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었다.
7급 준비생들은 “5급 준비생의 하향 지원 및 머리가 타고난 명문대생 7급 유입이 상당할 거고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피셋은 안 맞으면 못 붙는 시험 같습니다. 저는 지식형 시험이 더 체질에 맞아 9급으로 돌렸습니다”는 반응을 내놨다.
인사혁신처가 7급 피셋 예시문제를 공개했다. 사진=사이버고시센터 캡처
인사혁신처는 2019년 12월 7급 피셋 예시문제를 공개하며 “7급 공무원이 직무 수행 과정에서 접하게 되는 소재와 자료를 활용해 5급 피셋과 차별화했다”고 밝혔다. 문제를 살펴보면 5급 피셋과 유형이 같은데 지문 형식이나 소재가 정부부처 보도자료, 민원인 응대사항 등으로 구성됐다. 입시 전문가들은 공개된 예시문제에 대해 ‘5급보다 훨씬 쉬운 피셋’이라고 평가했다.
예시문제 공개 후 7급 준비생들의 우려는 더 커졌다. 5급 준비생들이 상대적으로 쉬운 7급 시험에 상당수 유입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법률저널에 따르면 행정고시 2차 필기시험 합격자 424명 중 373명이 참여한 설문조사에서 과반수가 7급 공채 피셋 도입에 찬성했다.
수험생들은 수험 전략을 두고 고민 중이다. 시험유형이 바뀌는 초창기에는 정보가 부족해 경쟁이 덜하다며 2021년을 승부처로 삼자는 반응이 나온다. 반면 빠르게 9급으로 전향해 준비해온 수험지식을 활용해야 한다는 수험생도 있다.
전문가들은 수험 시장의 불안감이 과도하게 형성되었다고 지적한다. 한 공무원입시학원 관계자는 “5급 수험생이 이미 7급으로 대거 유입된 상황이다. 5급 준비생이 유리할 수는 있다. 공부 수준 자체가 달라 행시에 연거푸 떨어져도 단번에 7급에 붙는 사람이 많다”며 “기존 7급 준비생은 정신을 차리고 합격을 위해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 봐야 한다. 10배수로 뽑는 피셋은 합격이 어렵지 않다. 10배수 합격자를 변별하려면 결국 헌법과 경제학이 승패를 가르게 될 건데 정작 수험생들이 이를 간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사혁신처는 공무원 시험에만 매달리는 공시낭인과 사회적 비효율을 줄이기 위해 7급 피셋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특히 피셋과 민간시험의 호환성을 장점으로 들며 공무원 시험에 떨어져도 민간기업 취업에 대비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 현대차 등 사기업 입사시험 유형이 피셋과 겹치기 때문이다.
정부의 공무원 채용 방침에 대해서는 수험시장 전반에서 부정적 기류가 감지된다. 수험시장은 정부가 공직자 채용에 대한 철학이 부재하고, 사회적 합의나 충분한 고민 없이 곧바로 피셋을 도입한 게 부적절하다고 보고 있다. 삼성맨과 7급 공무원을 뽑는 시험이 비슷한 것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공무원 증원 기조에 수험생이 대거 몰리니 피셋으로 진입장벽을 높인 것이라는 의혹마저 제기됐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