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를 코앞에 두고 어수선하던 지난 1월 21일, 여신협회 산하 여신금융연구소는 ‘간편결제 서비스의 등장과 카드업 영향분석’이란 보고서를 냈다. 여신협회는 이 보고서에서 “최근 지급결제시스템에 참가하는 간편결제 서비스 업자가 늘고 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이뤄지는 가운데 이들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법적인 측면에서 모호성이 대두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별것 아닌 말처럼 들리지만 이 보고서에는 의미심장한 표현들이 등장한다. 우선 “간편결제는 금융회사가 독자적으로 제공하거나 플랫폼 사업자와 핀테크업체 등이 전자금융업자로 등록한 후 금융회사와의 제휴를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나, 삼성전자 등 단말기 제조사는 전자금융업자로 등록하지 않고 금융회사와의 제휴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현재 국내에서는 지급결제 기능을 수행하는 지급결제수단·지급결제업무·지급결제업자·지급결제제도를 포괄하는 일반적인 규제 및 감독 법규가 존재하지 않고, 은행법·여신전문금융업법·전자금융거래법 등에서 분산적으로 규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업계 종사자가 아니면 좀처럼 알아듣기 힘든 말이지만, 쉽게 말해 삼성전자가 특혜를 받고 있다는 일종의 폭로인 셈이다. 예컨대 카카오페이를 서비스하는 카카오 같은 경우 서비스 유형에 따라 전자지급결제대행업자(PG업자), 전자금융보조업자, 선불전자지급업자로 분류한다. 또 네이버페이를 제공하는 네이버는 결제 유형에 따라 PG업자 또는 선불전자지급업자로 구분된다.
여신금융협회가 최근 ‘삼성페이’를 사실상 저격하는 보고서를 내 눈길을 끌고 있다. 그래픽=여신금융연구소
하지만 삼성페이를 제공하는 삼성전자와 같은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현행법상 전자금융업자도, 여신금융전문사도 아니다. 이들은 전자지급서비스를 간접적으로 제공하는 형태로 금융사와 제휴해 서비스를 중개하고 있다. 따라서 신용카드사들은 물론 카카오나 네이버가 받는 규제도 받지 않는다.
보고서를 이를 근거로 “간편결제 서비스업자가 지급결제 프로세스에 포함되어 있으나,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경우도 발생하면서 이들의 법적 성격 및 이들에 규율되는 법령의 범위 등 정비 필요성이 커졌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똑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왜 삼성전자에만 특혜를 줘 공정한 경쟁 환경을 해치냐는 불만인 셈이다.
여신협회가 이렇듯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은 페이 결제를 앞세운 기업들의 공세에 카드사들이 맥을 못 추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당국이 올해 후반기 이들의 후불 결제사업 허용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나오면서 카드업계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카드업계에선 “차별적 규제”라면서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체크카드 기능을 앞세운 ‘페이’의 등장은 이미 카드사들이 선점했던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전업 카드사와 은행계 카드사들의 분기별 체크카드 승인금액 증가율은 지난 2018년 2분기 이후 5분기째 줄어들고 있다. 2018년 2·4분기 체크카드 승인금액 증가율은 전년 동기대비 11.4%를 기록했지만 지난해 3분기에는 절반 수준인 6.0%로 떨어졌다. 체크카드 총 발급수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체크기능을 이용한 결제금액은 계속 늘고 있다. 체크카드가 아닌 페이를 통한 결제가 확산되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카카오페이 등을 통한 간편결제 확대도 카드사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하루 평균 간편결제 액수는 1628억 원에 달한다. 간편결제업체에 쌓인 선불 충전금만 지난해 상반기 기준 1조 5000억 원이다. 웬만한 저축은행 자산 규모와 맞먹는다.
마케팅 규제도 간편결제 업체와 카드사에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카카오페이와 토스 등 55개 간편결제 업체들은 지난해 마케팅 비용으로만 1000억 원 이상을 쏟아부었다. 공격적인 마케팅은 고객 유입의 절대적 무기다. 반면 카드사는 온라인으로 카드 발급 시 연회비의 100% 넘는 혜택을 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뿐만 아니다. 가맹점 수수료도 다르다. 카드사 가맹점 수수료는 정부가 소상공인 보호 목적으로 계속 낮추면서 현재 0.8~1.6%에 그치고 있는 반면, 간편결제업체는 가맹점 수수료 제한이 없다. 현재 간편결제업체 수수료는 평균 2.5%에 달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 하반기엔 이들에 대한 소액 후불 결제 허용이 예고돼 있다. 카드사 입장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그동안 자기자본을 200억 원 이상 확보한 기업들만 후불 결제를 할 수 있었는데, 간편결제 업체들에게 이를 열어주기로 했다. 허용될 후불 결제금액은 월 30만~60만 원 선으로 제한될 전망이지만 일단 시장에 진입하면 결제 한도가 늘어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 금융권의 시각이다.
카드업계는 결제시장에서 이미 막강한 위력을 갖게 된 이들 업체들이 후불 소액 결제까지 손댈 경우, 수익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금융권 한 고위 관계자는 “삼성페이와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등을 합친 고객 수는 우리나라 인구보다 훨씬 많은 약 70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면서 “2003년 이른바 ‘신용카드 사태’와 2012년 ‘고객정보 유출사건’ 이후 17년째 각종 규제에 묶여있는 카드사들은 그렇지 않아도 첨단기능과 혁신을 무기로 내세운 IT기업들의 경쟁상대가 되지 못하는 상황인데, 소액결제까지 이들 기업에 열어주면 신용카드 업계가 무너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영복 언론인